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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블루 Sep 30. 2021

빼도 박도 못하게, 가을.

가을, 물든다는 것.

네?  가을이요?


가을이라는 단어는 

방금 전 까진 상당히 피상적으로 느껴졌던 단어라 그런지 몰라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냥 사전 속에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그런 뻔한 단어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완연한 가을임이 분명하다.


아까까지는 지금을 '계절, 가을'이라기보다는 

9월 그리고 추석 관련 준비 기간 또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9월 둘째 주로 생각하고 있었고, 

혹은 삼사분기 중으로 머릿속에 인지하고 있었으니, 참 감정도 메말랐다 싶다.


약간의 감정이 담긴 말로 지금의 계절을 표현하자면 

'아 엄청나게 뜨겁더니 이제야 좀 살겠네' 정도로 

지금 현재 계절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가을에 싫어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주변에 물어보면 통상적으로 가을은 무언가를 하기 참 좋은 계절이라고 답한다.


거의 클리셰 수준인데, 

가을은 독서하기도 좋기도 하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뻔한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나 밖에서 노는 게 더 좋은 계절이라 생각한다. 

바깥에서 야외 활동하기에도 날도 좋고 

심지어 하늘도 높아지고 푸르러지니 말이다.


나 또한 가을은 마냥 좋은 계절 이기만 했던 것 같다.

 걷기에 덥지 않은 온도, 

선선하게 부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새로 산 옷들을 입어 본다든지, 

야외에서 햇볕을 쫴도 더 이상 땀을 흘릴 부담이 없는 날씨기도 하고.


물론 요즘에는 자외선이나 미세먼지 이런 걸로 가을의 청명한 날씨가 더럽혀지긴 했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훨씬 더 가을의 이미지는 퇴색되어 버린 거 같아 아쉽긴 하다.


 가을에 떠오르는 추억이라고 한다면 몇 가지가 있지만, 

긍정적인 것만 이야기하자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건,  그 가을밤 그 거리가 떠올랐고, 

정확히는 그녀와 사귀기 전 함께 걸었던 가을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녀와 정식으로 교제하기 전, 

그러니까 여자 친구가 되기 전에 썸을 타고 있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때 그 유쾌한 가슴의 떨림과 

손끝에 살짝 스치는 손가락, 

그리고 여러 가지 배려와 호감이 잔뜩 묻어 있는 말과 단어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전 새로 산 카멜색 트렌치코트는 

새것이라 숨이 덜 죽어 빳빳한 채로 있었고, 

약간은 긴장했던 나는 꽤나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코트를 벗어서 들고 걸었던 것 같다.


 그것들은 가을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고 

그날 가을의 온도 또한 걷고 싶기 너무 좋은 그런 온도였던 것 같다.


보통은 걷는다는 건 목적지를 향하는 수단일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때는 그저 걷는 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 자체가 되기에 충분했던 그런 날씨였던 것 같다.


 날씨가 좋기에, 가을이니까 걸어가도 돼. 그런 느낌이랄까.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역시, 푸른 하늘이 떠오른다.

하늘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높고 푸른 하늘은 

가을 하늘만의 전매특허 같은 거라서, 

가을이 되어서야 진정한  빛을 발했던 것 같다.


 요즘에는 빌딩 숲들 때문에도 그렇고, 미세먼지나 외출 자제 등등 악재로 

최근에는 예전처럼 파란 가을 하늘을 보기가

문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 수준..까지 불가능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서울 하늘에서 별 '보기' 수준으로 어려워진 느낌.


음,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서는 높은 건물들이 없어서

고개를 굳이 들지 않아도 파란 하늘을 마음껏 보던 때도 있었고,

마당이 있는 집 앞 마루에 누워서 

짙푸른 가을 하늘과 하얀 양털 같은 구름이 뭉글뭉글 지나가는 모습을 


'눈이 시리도록' 봤던 때도 기억난다. 


요즘엔 미세먼지도 그렇고, 마루나 마당 있는 집도 없고..

현실적으로 애로사항이 많지만, 

그래도 고개를 들어서 보면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확률,  

높고 푸른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확률 정도는 

그래도 연평균 대비 높아진 편이라서 좋지 않나 싶다.


색깔의 변화 또한 볼만하다. 

하늘의 색깔이 짙푸른 색으로 물들어 간다면 

나무의 색깔은 짙푸른 색에서 미묘하게 짙은 색깔이 빠져가며 

그 들 고유의 색으로 물이 들어가는 것 같다.


과거의 가을밤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얼굴빛이 빨개졌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빨간 단풍잎처럼 말이다.


 가을 코스모스처럼 웃음꽃이 피고, 

빨갛게 노을빛을 닮아가는 단풍잎처럼 뺨은 붉게 물들어가고.




물든다는 것.


물 들어가는 것이다.


나무도, 


하늘도, 




그리고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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