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대교에서 희망을 바란다는 것.
책을 좋아한다고 묻는다면, 선뜻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긴 쉽지 않은 시대다.
어렸을 적에 책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자면,
교회 주일학교에 다니던 시절,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주일학교 선생님께서 내가 생일이라고, 좋아하는 것을 말하면 선물로 주겠다고 물어봤었고
나는 책이요!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내 의미는 만화책을 말한 것 같았는데,
책을 받고서는 아..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는데..라는 표정을 지었던 느낌이 있다.
선생님이 선물로 주신 책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었다.
물론 삽화도 있었다. 큼직하게.
내가 원하던 유쾌한 명랑 만화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화가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꽤 철학적인 내용이 있다는 사실은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 책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으면서,
어렴풋이 인생의 목표에 대한 퀘스천 마크 정도를
그때 당시 조금이나마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하면
기억이 가물가물한 과거랍시고 너무 미화한 것일까?
출근을 하는데 자동차 유리 앞에
송충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아니 집 근처에 나무도 없고 숲이나 공원 같은 게 있긴 있지만
거기서 집 앞 차 유리까지 오긴 꽤 먼 거리인데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뭐 아무튼 이런 징그러운 게 요즘의 도심에서도 발견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자동차에 탑승한 상태인 데다가
치우기도 뭔가 징그럽고 해서
그냥 송충이를 태운 채로 자동차를 움직여 출근을 하기로 한다.
뭐 금방 떨어지겠지 생각했는데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와이퍼로 밀어 버릴까 하다가
워셔액으로 죽이는 건 너무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너 어디까지 가는지 잘 한번 붙어 있어 보던지 알아서 해라
라는 마음으로 그냥 차를 운전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송충이 녀석이 20킬로가 넘게 가는데도 잘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창문 유리에 자동차 앞 유리에 붙어 있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붙어 있어 주는 녀석을 보니
왠지 모르게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 버리고 말았다.
마치 이 송충이는 내가 초등학교 때 감명 깊게 읽었던,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에 나오는
그 까만색 송충이 와도 너무 닮아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서 까만색 작은 몸뚱이에
하얗게 난 털이 반짝반짝 빛이 났으며,
미끄러운 유리창을 잘도 붙잡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니,
탑을 쌓아서 올라가려 노력을 하는
그 송충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애잔하여 그냥 이 녀석을 끝까지 데리고
최대한 가까운, 최대한 나무와 가까운 주차장에 주차해서
놓아 주리라 라고 마음을 먹고 조심스레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빠른 고속 주행 중에도 무서웠는지 유리를 꽉 붙잡고 있던 녀석은
아침의 서울 도로가 대부분 그렇듯 교통정체가 시작되자
차가 느려지고 차가 정차하는 일이 더 많아지자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몇 번 미끄러지기도 하고
다시 꼭 붙잡기도 하고 녀석 나름대로의 생의 사투를 하는 듯싶더니
자동차 앞유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어느새 나도 녀석을 응원하는 마음에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최대한 도로의 가장자리로 운행하면서
나무와 가까운 곳에 떨어지기를 응원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언제나 삶이 그렇듯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고.
안타깝게도 송충이 녀석은 성수대교와 영동대교를 분기로 하는 샛길까진 잘 버티더니
영동대로에서 그만 내리고 말았다.
송충이와의 불편한 탑승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마음속으로만 하고 있던 응원이
순간 밖으로 튀어나와
앗 아 안 돼!라고 차 안에서 소리치고 말았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란 책의 마지막 내용처럼
이 녀석도 영동대교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남아
멋진 나비의 인생을 살아가게 응원하는 것은 욕심이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