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러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하.. 이 나이는 제가 처음 살아봐서요.
50이 넘으신 분이 내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무척이나 기분이 묘했다.
이런 말을 하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겸손하신 것일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것이
살아온 세월에 비례해 어려워지기 마련인데,
스스럼없이 이야기하시는 그 순수함에,
나는 그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어른이 되면 정말 척' 하고 살아야 하는데,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법이라고
생각해왔던 내게는
꽤 여운이 남는 오늘의 대사이지 않을까 싶다.
집에서 퇴근하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군 시절 적었던 일기장에서 보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추억과 먼지가 함께 담긴 박스를 찾다가
아버지의 이력서를 발견했다.
수십 년 전 기록한 것이다.
수기로 또박또박 본인의 학력사항과 나이와 자격 사항들을 적으신 건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아버지께서 이력서를 적으셨던 시점의 나이와
지금 나의 나이가 같다.
...
이력서를 가만히 보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작성하신 이력서고.
이때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대학교에 편입학하셔서
이력서를 작성하신 시점은
졸업하신 직후 작성하신 것으로 보였다.
아,
나도 여러 고민 끝에 학업을 다시 시작해
올해 2월 졸업을 했는데,
나와 같은 나이였던 그때의
젊었던 아버지께서 또박또박 적었던 이력서를 보니
지금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셨던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든다.
아버지 졸업식 날 택시를 타고
가족들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가서
함께 축하했던, 내 머릿속에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기억 조각과,
몇 개월 전 내 졸업식 날
가족들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축하하며 사진을 찍던 순간이 오버랩되면서
조금은,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이다.
그때 당시
내 눈에 아버지는 만능이었고, 척척이신 아버지셨는데,
지금 시점에 나의 아이들에게도
내가 그렇게 비칠까? 란 생각이 든다.
내가 이 나이의 삶을 처음 살아보기에 느끼는 그 감정들을
아버지도 같은 감정으로 느끼셨겠지?
내가 이 나이를 처음 살아보기에
서툴게, 여전히 부딪히면서
까만 동굴 속을
까만 손으로 더듬대며 방향을 찾아 나가듯 말이다.
살아온 세월을 숫자로 보면
누가 봐도 '어른'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지만,
역시 나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한 '어른이'일 뿐이며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어떻게 짊어질 것인지
고민하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