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으로 태어나고 싶어

아이들의 상상력에 또 배웁니다.

by 트윈블루

라디오 듣다 피식 웃음이 나서 옮겨 적어 본다.


딸아이가 갑자기 자신은 다음에 태어나면 미역으로 태어나고 싶단다.


아니 왜 왜 미역이니?


딸이 대답한다.

그럼 바다에서 찰랑거리며 누워 있을 수 있잖아.


엄마는 말한다.

계속 찰랑거리고 찰랑거리고 있으면 힘들지 않을까?


그러자 딸아이는 대답했다.


괜찮아. 많이 힘들면 바위에 누워서 쉬면 되지.


하하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ㅋㅋ



...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을까?


재벌 3세? 재벌 2세?

아니면 스타트업에 성공한 사업의 창업주?

대기업의 CEO?


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해 보니

전부 다 성공과 관련된, 성공이란 키워드와 관련된 명사 형태인 것 같다.


미역과 같은 해조류 따위는 전혀 머릿속에 떠오르질 않는다.

성공 그것도 돈과 관련된 단어들만 떠오르다니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다시 생각을 바꿔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

돈과 성공을 빼고 골똘히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따뜻한 물에 몸을 씻을 겸, 리프레시도 하면서

난 혹시 뭐가 되고 싶을까라고 떠올려봤지만

결국 뭐가 되고 싶다는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


샤워하면서 든 생각은

돈 많은 백수는 어떨까? 였는데,


처음엔 그냥 백수가 떠오르다가

아니야. 그냥 백수는 내 취준생 시절과 제대 후

공백 기간을 떠올렸을 때 고달프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그렇다면 그냥 돈 많은 백수가 어떨까라고도 생각이 옮겨갔는데,


아, 그럼 내 삶에 일이 없다는 건데,

그건 내 삶의 가치관과도 맞지 않은 것 같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현재 나 자신,

내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모습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나는 그냥 내가 되고 싶어. 그냥 현재 그대로의 모습 , 나 말이야.



아 이거 너무 싱거운 결론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거울을 보다가 문득

수건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바보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미역보다는 현실적이지 않은가!!

사실 애초에 이런 생각 자체가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모나지도 않고 둥글둥글 부드럽기도 하고 감촉도 좋고

그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불편함을 매일 지근거리에서 해결해 주고 있으며

그런 주제에 티도 나지 않는 겸손함을 겸비했고,

잘 접어 놓으면 반듯하고 예쁘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그 나름의 핑거프린트와 같은 패턴도 있고 말이다.


녀석들이 욕실에 반듯하게 각을 잡고 캐비닛에 꽉 차게 들어있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만으로도 뭔가 안정감과 안도감이 들게 하는 존재기도 하니 말이다.


뭐 지저분하지 않으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탁 한번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의 마음같이 흔적이나 상처 따위는 남기지 않고,

새것 같이 깨끗해지는 데다가

건조기까지 들어갔다 나오면, 보송보송한 것이 원상 복구되는 녀석이니,


뭐, 수건 정도는 한 번쯤 되어보는 것도... 뭐 행복하겠다, 꼭 되고 싶어요 정도는 아니지만,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


근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팔자가 좋은 쪽은 역시 미역이 아닌가 싶다.


복잡한 생각 없이 흐르는 대로, 보내지는 대로, 물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삶.

지쳐서 정말 바위에 누워서 널브러져 있어도 , 그 모습 그대로도 자연스럽고 운치가 있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쑥쑥 잘 자라기도 하고,

많은 녀석들의 영양분이 되어주기도 하고,

피난처가 되어주기도 하고,

출산으로 고생한 어머니들의 위로와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


미역의 삶은 꽤 자유분방한 데다가 존재 자체가 유익한 삶이 아닌가?


..


미역이 되고 싶은 아이의 깊은 뜻에 오늘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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