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좋은 말로 노년에 시간이 많으니 봉사활동이라도 하라고들 말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노년이라 시간이 남아돌지는 않는 것 같다. 봉사라는 게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라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봉사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남편에게 봉사활동을 너무 많이 한 관계로 내가 해야 할 봉사활동은 다 했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즐거운 어른(이옥선, 이야기장수)
나는 이옥선 작가가 이 말을 왜 하는지 내 나름이긴 하지만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나는 이제 봉사는 안 할 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봉사를 너무 많이 해서 내가 소모된 것 같아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나를 위해 살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 세세히 이야기하려면 내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그 이야기에서 또 시작해야 한다. 19살에 가족에게 봉사하기 위해 꿈을 버리고 나를 버렸다. 현실의 삶은 내버렸지만 마음은 내버려지지 않았다. 꿈을 향해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생각난다. 중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알싸하게 아팠던 기억이 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집안의 반대로 인해 더 사랑이 불타올랐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더 하고 싶어 안달한다. 어떤 이는 정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목숨을 걸기도 한다. 나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더 하고픈 욕망이 더 불타올랐던 것이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하다 보니. 생각보다 어려워서 포기할 수도 있다. 하다 보니, 원하는 게 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다 보니, 다른 게 눈에 보여 그것을 따라갈 수도 있다.
거의 40년 동안 남편과 함께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봉사해 왔다. 신념이 달라지고 나니, 그때 한 봉사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이 되었다.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를 했다면 죽기까지 의미가 있을 것인데. 우리가 봉사할 때 잘한다 칭찬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살면 안 되었다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고. 끝까지 견디지 못한 것은 잘못한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안 했으면, 아직도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나를 잃어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봉사를 안 할 거다."란 말을 한 지는 수년이 지나갔다. 그때는 나를 추슬러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추슬리며 살아오는 동안 차츰 다른 사람들의 희생과 봉사로 인해 내가 평화롭고 자유롭게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하자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있었고, 육이오 때는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죽어간 군인들이 있었다. 이후에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낀 것은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때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비통해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였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때 남은 가족들처럼 나라를 지키려다 죽어간 사람들의 남은 가족도 저리 슬프고 아팠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 사느라 바쁘다고 사회활동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40년 동안 봉사해왔지만 그걸 봉사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봉사를 안 할 거다." 란 말을 철회했다. 내가 이 말을 철회한 이유는 공짜로 살 수 없어서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갚아야 미안함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엄청난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노인복지관에서 한글강사로봉사하기로 했다. 내가 한글 교실에서 봉사활동 하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말했다. "이젠 봉사활동 안 한다더니."
한결같은 마음이 좋은 것인 줄 알았다. 이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마음도 좋다는 것을 알겠다.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으면 평생 같은 일만 하고 살 것이다. 우리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기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전에 자신이 한 말을 종이짝처럼 휙휙 뒤집어 보면 어떨까? 뒤집을 때마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재미 그럴싸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