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유독 예뻐했던 고모가 있다. 고모는 "첫정이라 내게 홀딱 빠졌다"라고 말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전쟁으로 오빠(나의 삼촌)마저 잃었던 고모에게, 갓 태어난 나는 슬픔을 잊게 해 줄 '살아 있는 작은 인형'이었을 것이다.
고모는 내가 너무 예뻐서 나를 업고 나가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나는 고모에게 업혀 고모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던 기억이 난다. 고모도, 고모 친구들도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길게 땋은, 앳된 모습이었다.
언젠가 고모는 "그때 왜 너를 업고 그 멀리까지 놀러 다녔는지 모르겠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고모는 조카를 업고 걸었던 것이 아니다. 고모는 잃어버린 두 남자—아버지와 오라비—의 빈자리에 나를 들여다 놓았을 것이다. 내가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존재였다면 차라리 괜찮았을 것이다. 그 빈자리를 채울 어떤 대체물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모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는 조카로 대해야 했다.
곡비(哭婢) 놀음
어느 날 고모가 내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네댓 살 무렵의 나는, 고모가 자기 뜻대로 내 마음을 조종하기 위해 빌려온 옛이야기라는 형식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귀를 쫑긋하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고모는 슬픈 대목에 이르자, 지난번 이야기보다 더 슬프게 꾸며내다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고모가 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고모의 우는 모습에서 어떤 낌새를 눈치챘다. 울음소리는 슬펐지만, 그 얼굴에는 슬픔과는 다른 무언가가 떠올랐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고모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따라 울지 않자, 고모는 울음을 멈추더니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더 큰 소리로, 더 슬프게 훌쩍거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눈치챈 그 낌새가 옳다는 것을. 고모는 슬퍼서 우는 게 아니었다. '일부러' 울고 있다는 것을.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으며, 내가 번번이 그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는 것까지도. 고모가 아무리 슬피 울어도 내가 울지 않자, 고모는 작전을 바꿨다."정희 운다, 정희 운다!"마치 축구선수가 공을 골대로 몰아가듯, 고모는 나를 '울음'이라는 골대 안으로 몰아넣었다.
그 순간, 마음의 둑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전보다 훨씬 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부당한 놀이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입을 꾹 다물고 눈에 힘까지 주던 저항은 허무하게 끝났다.
나의 울음은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엔 나를 이렇게 몰아붙인 고모가 야속해서 울었다. 그다음엔 끝까지 참지 못하고 울어버린 나 자신이 속상해서 울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줄 믿었던 고모가 나의 믿음을 깨뜨린 배신감과 울음을 참지 못한 내가 한심해서 목이 터지게 울었다. 울음이 가슴속에서 고장 난 분수처럼 위로 치받치고 올라왔다. 울음이 숨을 몰아쉴 때마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고모는 나를 보며 매우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었다. "아이고, 우리 정희."고모는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고모를 밀쳐내며 더 크게 울었다. 아마도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크고, 가장 서럽게 울었던 순간일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정희 운다"라는 그 외침은 고모가 실은 자기 자신에게 하던 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잃고 오빠를 잃고도, 제대로 울지 못하고 삼켜야 했던 그 울음을, 고모는 내가 울게 했다.
이 일은 나 몰래 고모가 내게 준 외주 업무, 곡비 역할이었다. 나는 곡비가 된 줄도 모르고. 가짜 울음을 우는 고모의 장단에 맞춰 내 진짜 눈물을 쏟아낸 적이 몇 번인가! 내가 큰 소리로 울수록, 고모의 만족도는 높아졌고 얼굴은 더 환해졌다. 내가 곡비 노릇을 한 대가를 고모는 우리 정희"라는 포옹 한번 해주는 것으로 끝냈다.
이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제때 흘러가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던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고모는 가족 중에 가장 연약한 나를 선택해 마구잡이로 흘려보낸 사건이다. 고모는 이 일로 내가 어디로 떠내려갔는지 내 삶에 어떤 균열을 냈는지 전혀 모른다. 자신이 나를 끔찍이도 사랑해서 무지 잘해 준 줄 알고 있다.
남동생의 백일사진이 '가문의 질서' 속에서 나를 제단 아래 푸른 세상으로 밀어냈다면, 고모의 '곡비 놀음'은 '사랑'이라는 믿음 속에서 내 감정을 조종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진실이 아닌 '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남동생의 백일사진으로 이미 금이 갔던 나의 세계에, 고모는 '배신'이라는 해머를 내리쳤다. 그날, 나는 고모의 사랑에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내 세계의 균열을 막기 위해 푸른 방의 빗장을 더 단단히 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