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억이 첫째 동생이 태어난 날 것인지 둘째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추다!'라는 그 외침이 울려 퍼질 때마다 나는 점점 더 작은 방에 갇혔으니까.-
앞서 내가 쓴 글이다. ‘나는 점점 저 작은 방에 갇혔으니까.’란 이 문장을 쓰는데 한 꿈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지금 여러 번 반복해 꾼 그 꿈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집으로 가고 있었다. 익숙한 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이 낯설어졌다. 발밑의 흙 색깔이 바뀌면서 골목길 모양이 틀어졌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여기서 집을 못 찾을 리 없다. 잘못된 길로 들어설 까닭도 없다. 근데 “여긴 어디지?” 방향을 잡으려 몸을 돌렸지만, 내가 알던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불안이 목구멍을 죄었다. 집을 찾아 낯선 길을 헤매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골목을 살피는데, 우리 집이 보였다. “살았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급히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곳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코끝에 스치는 냄새가 달랐다. 쭈뼛, 등줄기에 냉기가 흘러내렸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벽지의 색도 가구도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밖으로 나가려고 뒤돌아서는 순간 벽이 갑자기 퍼덕—움직였다. 사방의 벽이 퍼덕- 퍼덕- 독수리 날갯짓을 하며 나를 덮쳐왔다. 내 몸이 저절로 죄어들었다. 발이 방바닥에 찰싹 붙어버렸다.
문도 독수리처럼 퍼덕-거렸다. 문은 한 번 퍼덕일 때마다 조금씩 작아지다가 끝내 사라져 버렸다. 심장이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사방의 벽이 내 어깨까지 다가왔다. 벽은 더욱 죄어와 목을 감싸고 얼굴을 감쌌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벽과 내 몸이 이가 딱 맞았다, 거푸집처럼. 벽은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나을 죄어와 콧구멍에 닿았다. 내가 헉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방안은 고요했다. 내 안에서는 여전히 벽이 퍼덕-거리고 있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심장이 뜀박질을 뛰었다. 숨은 거칠고도 뜨거웠다. 나는 할머니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푸우- 푸우-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할머니를 깨우는 대신 천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꿈은 나의 현실과 내면의 상황이 뒤섞인 복합적인 꿈이다. 꿈속에서 숨이 막혀 답답했던 것은 나의 현실, 바로 메주가 발효되면서 나는 쿰쿰한 냄새로 숨이 박혔던 바로 그것과 연결된다. 남동생들이 태어날 때마다 내가 거주하는 공간이 좁아졌고 또 가족 안에서 차지하는 내의 비중이 작아졌다. 이와 발맞춰 내 자아도 작아졌다.
울타리 안의 자유
나는 자유가 있었다. 나는 많은 시간 동안 꽃밭의 식물과 텃밭의 식물을 가지고 놀거나 관찰하며 놀았다. 장녀였지만,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없었다. 할머니가 방패가 되어 이 모든 일을 막아주었다. 나의 이 자유는 속박의 다른 이름이었다. 우리 안의 양처럼, 나는 할머니가 친 울타리 안에 갇혀 산 것이다.
이 울타리는 집 밖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에서 오는 사고나 고통을 막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게 하였고 가족 안에서 내가 운신할 폭이 좁아지게 했다. 즉 가족 일원으로 살지 못하게 했고 외딴섬에서 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립되었다.
꿈에서 나를 죄어온 벽은 바로 할머니가 나를 둘러친 그 울타리였고, 그 울타리 안에서 또 내가 스스로 만들어 들어간 푸른 방이었다. 꿈속에서 숨이 막혀 답답한 것은 방안의 메주 냄새 때문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집안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 가부장제와 남아선호 사상이란 거푸집에 갇혀 사는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푸른 방에 들어간 내가 느끼는 숨 막힘과 가족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던 상황과 첫째 남동생에게 밀려난 아픔까지, 내 현실의 숨 막힘이 모두 꿈에 나타나 것이다.
가정 내에 일어나는 일에 책임을 아무것도 지지 않는 존재는 '아기'이거나 '손님'이다. 나는 이 정체성을 둘 다 가지고 있었다. 책임을 지지 않고 그저 관찰한다는 점에서는 ‘손님'이었지만, 할머니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길 바라고 의존한다는 점에서는 영원한 아기'였다. 동생들과 놀아줄 줄도 몰랐고 밥 한 숟갈 먹여줄 줄도 몰랐다. 일곱 살이 되어도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도 내 안의 나는 세 살짜리 아가였다. 오십육십이 되어도 나는 마찬가지인 면이 있었다.
중학교 3년을 대구까지 기차를 타고 통학했다. 이때 학교 친구 오빠들이 내게 언니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맏딸이라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 언니 오빠들이 많을 것 같다면서. 이때 나는 책임이라곤 져 본 적이 없는, 그런 해맑은 아기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고등학교 3학년 때 뒷자리의 친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내게 못 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왜?”라고 물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넌 밝아. 근데 나는 너무 어두워. 네게 전염될까 봐.” 친구는 끝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친구에게 이야기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로부터 얼마 후 나의 이 밝음은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의 병이라는 현실이 울타리를 뚫고 나를 덮쳤다, 갑자기 폭우를 맞듯 나는 당하고 말았다. 할머니의 '울타리'는 집안의 사소한 책임은 막아주었지만, 집 밖에서 몰려오는 태풍은 막아주지 못했다. 이 일은 푸른 방에서 관찰하면서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이후 나는 긴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다. 멀리 희미한 빛이 스며드는 이 터널의 막바지에서 그 빛에 의지해 나는 “푸른 방에서 나온 그녀,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내가 이 책을 다 쓰는 그날, 할머니의 울타리에서, 내 삶의 터널에서 벗어나는 날이 되게 하려 나는 쓰고 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