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3 토요일 일기 - 내 방은 곧 나다
어젯밤에 친구랑 통화하면서 손이 심심해서 보이는 대로 치웠다. 먼지도 쓸고, 물건 배치도 조금 바꿔 봤다. 매일 쓰지 않는 물건이 손 닿는 위치에 있는 게 거슬려서 저 쪽으로 치우고, 묘하게 지저분했던 물건들을 적당한 곳에 수납했다. 뻥 뚫린 공간이 생기니 심적으로 안정이 되어 방에 있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내 방이 갖고 싶었다. 아무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나 혼자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애석하게도 이게 방의 정의라면 성인이 될 때까지 갖지 못했었다. 대학생이 되고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물론 다인실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내 방은 아니었지만, 지정된 내 침대, 내 책상에 한해서는 룸메이트들이 건드릴 일이 없으니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집에서 분리되기 전엔 몰랐던 것들이 보였다. 물건이 이렇게까지 많을 필요가 없고, 때론 버리거나 새로 살 필요가 있으며, 물건에도 자리가 필요하더라. 가족과 정리 습관이 맞지 않으면 힘들다는 걸 그쯤 알았다.
이후 휴학 시절, 기숙사가 아닌 집으로 다시 들어갔을 때 나는 이제는 정말 집을 떠날 때라고 느꼈다. 내가 어떤 물건을 새로 들였는지 말하지 않을 자유, 내 것을 함부로 누군가가 건드리지 않는 것, 방 문을 닫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고요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맨날 돈이 선택 기준이었건만, 이번엔 달랐다. 서울 자취라는, 달에 100만 원은 우습게 넘어버리는 큰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내 방은 지켜야겠더라.
가족들이 나쁜 의도로 내 공간을 보장해주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아주 작은 방으로 독립해 나오고, 그보단 훨씬 낫지만 조금 더 비싼 옆 방으로 이사 오는 동안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큰 불편은 없었다. 나의 방이라는 그 자체만이 중요했으니까.
그렇게 나온 지 2년쯤 흘렀다. 이젠 깔끔함과 장소가 주는 힘이 크다는 걸 느낀다. 지금 당장은 학생이니 어쩔 수 없지만 차차 물건들도, 장소도 내 취향인 것들로 옮겨갈 것이다. 집이 늘 호텔처럼 유지되도록 정리를 정말 잘하는 친구의 집에 간 후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필요 없는 물건들을 최대한 버리고 팔고 있다. 물건을 갖는 것에만 집중하던 내가 처음으로 버리는 것을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내 방에 싸구려 물건을 함부로 들이기가 싫어졌다. 아무리 새롭고 편리해 보여도 매일 쓸 자신이 없거나 방치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사지 않는다. 그렇게 내 방은 점차 정리되어 갔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은 것을 버렸고, 귀여운 물건에 대한 욕심이 줄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조금만 더 줄이고 더 적게 두고 살고 싶다. 가능한 한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다. 먼지를 치우고 물걸레질까지 한 상쾌한 바닥을 밟으며, 정해진 장소에 한 두 개의 물건을 제 자리에 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음이 편해지는 깔끔한 방이 보인다. 이런 삶을 너무나 바라고 꿈꿔왔으니, 지금 난 얼마나 행복한지.
내 방을 최대한 깨끗하게 하고 함부로 무언가를 들이지 않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그런 대접을 해줘야겠다. 지금 내가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필요한 물건을 잽싸게 찾아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내 머릿속도 깔끔하게 단정하게 정리해서 단순하고도 성실한 삶을 살아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