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6 화요일 일기 - 망원 산책
나랑 언니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나는 옷에 관심도 많고 예쁜 문구류나 소품샵 구경 다니는 걸 좋아한다. 돌아다니거나 운동하는 것보단 카페에 앉아 수다 떠는 걸 좋아하고, 비싸더라도 갖고 싶고 충분히 잘 쓸 것 같으면 돈을 투자하는 편이다. 놀러 갈 곳 검색하는 걸 귀찮아해서 정보를 알아보다 마는 바람에 어딜 가도 헤매고 길을 잃는 일이 다반사다. 은근히 본전 뽑는 걸 잘 못한다. 헬스장이나 강의를 결제하면 생각보다 열심히 안 한다. 체력이 약해서 금방 지쳐버린다.
그에 반해 언니는 팔 근육이 우락부락(과장이 아니다)해질 때까지 크로스핏으로 몸을 단련할 정도로 운동 중독이다. 화장이나 꾸미는 걸 귀찮아하고 관심이 하나도 없다. 예쁜 카페도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그보다는 많이 걷고 무언가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비싼 물건에 그다지 관심이 없이 절약을 더 좋아하고, 개발자답게 꼼꼼히 정보를 찾는 편이라 어딜 가도 차질 없이 완벽하게 정보를 찾아두는 편이다. 본전을 뽑고도 남을 정도로 지혜롭게 활용을 잘한다.
엄마와 언니 셋이서 놀러 가면 계속 떠들면서 적당히 놀아서 우리 둘이 이렇게 다른 게 티가 잘 안 나는데, 엄마를 끼고 한 명씩 놀러 가면 이 차이가 극명하다. 엄마가 지난 몇 주간 언니와 놀고 돌아다니다가 오늘은 연휴 마지막일 겸 내가 사는 서울 쪽으로 놀러 오셨는데, 뭔가 정신이 없다고 하면서도 굉장히 재밌어하셨다.
굿윌스토어나 아름다운 가게, 빈티지 샵 구경을 좋아한다. 새것을 구경하고 싶을 때도 종종 있지만 많은 물건들 중에서 보물찾기 하듯 값지고도 싼 물건을 찾아내는 그 희열이란! 오늘의 굿윌스토어에는 딱히 살 물건이 없었지만 길 가다 우연히 들어간 무인 빈티지샵에서 꽤 오래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은근히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 라코스테나 폴로 랄프로렌, 빈 폴 등 무난한 듯 꽤 값이 나가면서도 품질이 좋은 의류를 좋아하는데, 새 옷을 사기엔 아직 학생이라 부담되고 이런 중고 샵에 가면 브랜드 위주로 따져가며 본다. 사실 그냥 때깔 고운 옷 집어 들면 브랜드 옷이더라. 중고 샵 n년차, 명품 감별사마냥 뭐든 예뻐서 집어 들면 제일 비싼 옷이 되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전시된 한 가게에서 계속 옷을 입어보고 대보고 가격 대비 어떤지 생각해 가며 한 시간 넘게 머물렀다. 아마 엄마가 언니와 갔다면 이렇게 오래 있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와 언니는 최근에 박물관이나 창경궁, 경복궁 같은 곳을 놀러 다녔다.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막상 가려고 하면 너무 오래 걸을 게 힘들 것 같고 귀찮아서 나는 안 꼈다. 오늘도 원래는 엄마가 전쟁 기념관에 가자고 하셨는데 연휴 마지막 날 차라리 좀 쉬거나 재밌는 걸 하고 싶어서 안 간다고 했다. 엄마는 처음에 살짝 삐치시며 혼자 가겠다고 하셨다.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나는 전쟁 기념관 갈 거야. 넌 안 갈 거지?"
"엉."
"지금이라도 준비해서 오지. 나 이제 출발하는데."
"귀찮아."
"나쁜넘아 같이 놀지도 않고"
"전쟁기념관 안 갈 거야. 나랑 놀고 싶으면 전쟁 기념관을 포기하던지~."
반 장난으로 말했는데 전쟁 기념관은 이따가 갈 수도 있으니 일단 망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분위기 좋은 카페로 목적지를 정해서 자리에 앉은 나에게, 엄마는 오늘 이렇게 노는 김에, 언니는 재미없어하는 옷 구경 좀 하자고 했다. 뭔가 기분이 좋았다. 내 특성을 인정받은 것만 같아서. (아, 놀다 보니 당연히 전쟁 기념관은 물 건너갔다.)
뭐든 적극적인 언니와 다르게 나는 좀 많이 걸었다 싶거나 배고파지면 축 쳐져서 힘들어한다. 어딜 여행 가면 이런 나 때문에 걸리적거린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고 언니의 철저한 계획에 따라 극기훈련처럼 하루 3만보를 걷다가 반쯤 죽어가기도 했다. 나는 쇼핑이 하고 싶은데 엄마와 언니는 별로 안 좋아하니, 나 하나 때문에 계속 머무를 수가 없어서 내가 원하는 코스로 가자고 더 주장하지 못했었다. 오늘은 엄마와 나 둘 뿐이었다. 귀찮아서 밥집도 미리 찾지 않고 끌리는 걸 대강 검색하다가 우연히 맛있는 파스타집에 들어갔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가는 길에 과일 가게에서 청포도를 샀다. 길 가다가 이쁜 무언가가 보이기만 하면 들어가자고 했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해도 나름대로 재밌다는 걸 엄마도 이제 아시는 것 같다. 예전엔 몰랐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서 이전보단 우리의 다름을 더 이해하게 된 건 아닌지. 엄마의 마음을 내가 온전히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조금 정신없고 체력도 모자라긴 하지만 나랑 노는 것도 충분히 재밌지,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