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나름대로 연구 중이지만 쉽지 않다. 어제는 거의 3시가 다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주 오랜만에 맞이하는 여유로운 주말 때문인지, 긴장이 풀린 건 좋았으나 숨 막히는 외로움이 올라왔다. 그에게서 다시는 연락이 오지도, 내 연락을 받지도 않을 거라는 것이 너무 충격이었다. 난 진짜 이상한 것 같다. 이별을 했다면 그건 당연한 일인데. 5개월이나 지났으면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됐는데 말이다. 마지막에 그렇게 못 할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내가 무슨 연락을 해도 받았다가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 더 의외여서 충격이 컸나 보다. 어떻게든 좋게 생각해보려 하지만 솔직히 쉽지 않다. 생각 정리는 끝났지만 그건 그거고 충격인 건 충격인 거다.
늦잠을 자고 눈을 뜨니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가 너무 고민됐다. 3주 연속 본가를 다녀왔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조카를 오늘도 보러 가고 싶었다. 동시에 피곤했고, 할 일도 있었고, 읽고 싶은 책들도 많았던 데다가 서점이나 도서관도 가고 싶었다. 이렇게 선택지가 많을 때 결정을 못하고 고민이 너무 길어지는 게 습관이다. 본의 아니게 멍 때리며 한 시간쯤 보내다 어디든 나가보자며 가방에 책들과 새 노트를 넣고 스벅을 향했다.
어제 한 새로운 결심 때문에 마음이 들떴다. 진짜 내가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보통은 반반의 마음으로 그만둘 각오로 하는 결심이 더 많다. 흐들흐들 유약한 나의 이전과 달리 이번엔 정말 확고하다. 준비할 게 많다. 올해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 무슨 결심인지는 다른 글로 쓰려고 한다. 아마 새로운 브런치북을 발행할지도 모르겠다.
자유.
내게 제일 중요한 가치다. 하다못해 다이어리 하나도 템플릿이 너무 지독하게 정해져 있거나, 용도가 확실히 구분되지 않은 채 뒤섞이면 안 써버린다. 까먹거나 귀찮은 게 아니라 혼란스러워서 그렇다. 마치 아까 한 시간을 고민만 하다 보낸 것처럼. 그래서 아예 새 노트를 꺼내온 것이다. 아무거나 마음대로 적으려고. 작년, 헤어졌다 다시 만난 마지막 사이클(?) 때 쓰던 노트가 내겐 큰 힘이었던 게 기억이 났다. 늘 정해진 템플릿에만 썼던 걸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 생각 정리도 하고, 일정도 쓰고 일기도 쓰고. 그 안엔 이별을 준비하는 내용이 담겼었다.
이것저것, 새로운 결심과 아이디어를 적었다. 그렇다고 아주 신나진 않았다. 친구가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로움을 어느 순간 내 신체의 일부처럼, 항상성을 유지해야 하는 하나의 기관처럼 받아들였기에 짐짓 모른척하고 할 일을 했다. 책을 읽었다. 공부도 잠깐 하고 딴짓으로 또 책을 읽었다.
집에 들러서는 가방을 비우고 합정역을 향했다. 알라딘을 들렀다. 종이 사전을 살까 해서 온 것인데 이상한 체기가 느껴졌다. 진짜 속이 아픈 게 아니라, 수많은 책들 중 읽을 수 있는 책이 없는 듯한 아득한 느낌, 활자 때문에 체한 것 같은 느낌이 가끔 든다. 읽고 싶은 게 많은데, 이렇게 책이 많은데. 이 앞에 선 나는 뭐지? 누군가의 손때 묻은 책들이 다음 주인을 기다리며 책장에 죽 늘어서 있었다. 할 일을 외면하고 와서 그러나, 광활한 종이 밭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에 구역질이 났다. 보통은 그쯤 발걸음을 돌려서 집에 가고는 책을 한 데 치우는데 오늘은 그냥, 쭉 있어봤다.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좋아하는 책 구경 하는데 왜 체기가 나지? 체기가 아니라 들뜬 건가?'
책을 결제하고 나오며 생각했다. 다정히 책을 고르던 사람들이 있었다. 마주 보는 눈에 사랑이 가득했다. 나도 저런 사랑을 원했었다. 같은 책장을 바라보고, 각자 가장 좋아하는 장르의 책 코너에서 서로 사주려고 안달하고 싶었다. 체한 게 아니었구나. 순간 수많은 중고책, 철 지난 책들, 싫어하는 책들, 디자인이 이상한, 제목이 자극적인, 별의별 책들과 눈을 피하며 빨리 걸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니 갑자기 나를 부르는 듯한 책 한 권을 만났다. 홀린 듯이 책을 샀다.
짐을 늘리면 안 되는데, 내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려면. 그러면서도 발길은 교보문고를 향했다. 읽고 싶던 책이 있어 앞 몇 장을 읽고 바로 빠져들었다. 늘 대출 중인 책이니 이 정도는 괜찮다며 결제했다. 당분간 책은 안 사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자고 생각했다. 안 지킬 결심일 걸 알았다.
목이 말랐다. 집에 도착해 물을 잔뜩 마시고는 글자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말이 넘쳐흐른다. 생각이 이곳저곳으로 튄다. 지금이 조증 상태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뭐부터 쓰지? 어떻게 쓰지? 혼자 바쁘기에 심심하진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아까 산 책의 주인공 폴의 외로움이 와락 느껴졌다. 나는 침대에 홀로 누워 텅 빈 팔베개를 뻗는 대신 노트북을 펼쳤다. 글을 왕창 쏟아내고 나니 허기가 진다. 나는 도피하듯 글을 읽는다. 차오르는 말들이 감당하기 힘들어 말을 쏟아낸다. 지금 내겐, 활자만이 가장 큰 위로다. 꾹꾹 밀도 높게 눌러 담은 이 팔딱거리는 말들을 조금씩 조금씩 연습하며 다듬어내는 숙제를 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