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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Jun Oct 27. 2022

제4장: 삶에게 순환이란? (1)

자연과 삶의 순환이 가진 형태와 움직임

자연과 우주의 모습을 통해 삶이 시간과 공간의 순환으로서 과거, 현재, 미래, 공간이 ‘하나’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나와 타인이 이루고 있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타인과 함께 나의 삶이 과거, 현재, 미래, 공간이 하나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는 삶의 모습(형태와 움직임)을 의미하는 일상에서 ‘하나’의 의미(특징)가 순환에서의 ‘하나’와 일맥상통할 것이며, 순환의 형태와 움직임을 통해 삶의 절대적인 정의(형태와 움직임)를 알 수 있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연속된 일상으로 삶이 만들어지므로 모든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확인 가능하여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우주와 자연의 모습으로 삶의 정의와 방향을 안다면 나를 결정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하나’를 이루어 존재한다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같은 목적 아래에서 서로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아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이 상호작용은 끊임없이 하나의 목적 아래에서 서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하나’를 이루는 모든 존재들은 서로에게 필연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로 존재하는 만큼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성장에 성장하고 쇠퇴에 쇠퇴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를 이루는 모든 존재들이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존재함과 동시에 한 부분의 변화가 ‘하나’라는 전체적인 형태와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의 목적(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가)은 모든 존재들을 담아둘 수 있어야 하기에 그들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그들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면 ‘하나’를 이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만약 이 우주가 삶에게 무의미하다면, 그저 존재하는 현상이고 물체에 불과하다면 삶은 우주라는 시공간 안에서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으로 모순이 됨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삶이 이 우주를 설명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모순이 발생됨을 의미합니다. 모든 존재는 순환으로서 서로를 필연하고 있음으로 우주와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가 존재한다면 ‘하나’를 이루어 존재함에 따라 서로에게 필연적인 존재임은 물론, 같은 목적과 의미/가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주의 순환을 보면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상반된 움직임과 형태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상호작용하여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존재합니다. 이 시스템은 순환하기에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같이 움직이면서 전체를 아우르고 있으며, 각각의 구성요소들은 다른 요소들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어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서로 다름에도 하나의 필연적인 순환의 일부로서 평등하며, 서로가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주고받으면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요소가 전체와 하나 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하나의 요소와 그 요소가 갖는 힘(상호작용)은 순환의 모습을 통해 순환을 이루는 모든 요소와 힘(상호작용)을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시간과 공간(우주)을 이루는 모든 존재들은 순환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순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시공간이라는 ‘하나의 순환’인 것입니다. 순환 안에서는 그 어떤 현상도, 물질도, 개념도 순서나 상위 개념 없이 우주라는 ‘하나’ 아래에서 필연적인 가치를 가진 채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한, 끊임없는 변화를 이루는 순환에 따라 엔트로피의 발생에 최대로 저항해야 하는 (우주의 가장 큰 변화를 위해) 우주의 모든 존재(공간/형태)와 순간(시간/움직임)은 순환에 최적화된 형태/움직임과 함께 성장과 유지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순환의 모습을 보면 현재 전체의 형태와 움직임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적인 관측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우주와는 다르게(우주의 시간은 인류가 관찰하고 기록한 시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다.) 어떤 모습을 거쳐 유지되고 성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생명을 포함하는) 자연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들은 자연의 유지와 성장을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자연의 생명들은 자신이 이루고 있는 요소(나무, 풀, 동물 등)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형태와 움직임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자연이라는 전체의 성장과 유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더 강한 존재가 되기 위해 최대의 에너지를 받고, 저장하고, 사용하고, 배출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효율을 갖는 형태와 움직임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 모습이 자연스럽게 주변 환경과 함께 순환하는 형태와 움직임을 갖는 것입니다. 자연을 이루는 생물(동물/식물)은 언제나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이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연의 최대 성장과 유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자연이 기존의 형태와 움직임이 가진 한계에서 벗어나 더 크고 강력한 형태와 움직임을 가질 수 있다면 해당 환경에서 자연을 구성하는 생물들은 언제든지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쇠퇴이든, 성장이든 상관없이 자연이라는 순환의 성장에 따라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변화되고 자연은 더 크고 강한 순환의 형태와 움직임으로 성장합니다. 자연을 이루는 순환의 모습 중 일부가 변화하면 전체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변화도 결국 순환의 일부이자 순환(성장과 유지)을 위한 변화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자연과 모든 생물들은 순환으로 연결되어 존재하기에 주어진 환경에서 각자 자신의 성장과 유지를 위해 각자의 최선과 최대의 유지와 성장이 자연스럽게 자연이라는 전체의 최선/최대 유지와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을 구성하는 생물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좀 더 강한 자연을 이룰 수 있다면 기꺼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변화하여 더 큰 자연으로서 존재하는 모습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현재 이루고 있는 모습만을 유지/성장시키기 위해 싸우고 버티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성장)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하는 모습을 변화시키면서 자연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순환에 따라 끊임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의 유지/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에서 모든 동물과 식물들은 계속 변화되는 것으로서 하나의 자연으로 유지되고 성장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자연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은 자체적인 순환(유지와 성장)을 이루는 데 있어서 최적화되어 있음과 동시에 자연의 순환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최적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모습은 마치 모든 요소들이 서로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일단 사람 제외) 존재도 자신만의 안위(유지)와 욕망(성장)을 위해 주변과의 정보 공유를 차단한 채 공유하고 있는 것을 독점하거나, 일방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정보를 교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연이라는 거대하고 근본적인 존재의 성장을 위해 협력한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자연이 나에게 주는 이득이 있고, 내가 주어진 상황에서 고쳐가야 할 점이 있고, 내가 해야 할 행동이 있음으로써 만들어지는 목적과 이에 따른 변화는 모두 사실로부터 만들어지는 절대적인 믿음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러한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 다면 모든 존재는 자연과의 유지와 성장을 도모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자신을 정의하는 모든 형태와 움직임을 스스로가 납득(증명)하지 못하게 되어 성장과 유지를 위한 변화(목적)를 알지 못하여 스스로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동식물이 갑작스럽게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었을 때 유지와 성장이 아닌 쇠퇴하게 됩니다. 물론 주위의 환경과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따라 적응을 할 수도 있습니다.(대표적으로 바퀴벌레) 그러나 이 또한, 기존의 유지와 성장 기조를 기준으로 봤을 때 쇠퇴가 됩니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입장에서 자연의 움직임을 해석한 것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주관적으로 갖는 믿음과는 다릅니다. '이 사람은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지', '실망시키지 않겠지', '나를 도와주겠지', '내가 이렇게 했는데 상대방도 이렇게 해주겠지'와 같은 주관적 믿음이 아닌 서로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알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들(특징)들에 따른 절대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약육강식 같은, 지금 우리가 보면 마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가진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은 특징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데, 이 약육강식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모든 생명들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같은 생물로서 각자의 특징을 당연하게 납득할 수 있기에, 자연의 일부로서 나와 함께 다른 생명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앎)을 기반으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 어떤 망설임 없이 최선을 다해 유지와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은 주어진 환경과 함께 더 강하게 진화(형태와 움직임의 근본적인 변화) 될 수 있는 여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유지와 성장으로 존재하는 자연과 모든 생명들을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각각의 요소들의 이러한 믿음이 자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자연의 모든 요소들이 순환을 이루면서 평등하게 정보를 주고받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환을 이루는 모두가 서로에게 필연적인 존재로서 영향과 정보를 주고받기에, 이를 바탕으로 나를 통해 다른 존재를, 다른 존재를 통해 나를 알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보의 교환과 이에 따른 상호작용으로 하나의 순환을 이룬 것이 자연이기에 모든 생명들은 ‘하나’로 순환할 때 최대의 유지와 성장을 이루어 존재할 수 있으면서도, 분열될 때 쇠퇴하는 것입니다.



성장 과정을 보면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와 다양한 순환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다양한 움직임과 형태를 가지게 되면서 서로가 더 촘촘하고 단단하게 뭉쳐집니다. 동시에 끊임없이 정보를 순환하기에 촘촘하고 단단한 상황에서도 상황의 변화에 대해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어 더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순환의 형태와 움직임이 자연이라는 순환 안에서 만들어지고 서로 하나로 얽히게 되면서 단단함(유지)과 유연함(성장)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 자연을 이루고 있는 생명들도 과거보다 더욱 강한 존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순환으로 자연이 존재하기에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평등하고 지속적인 정보 공유에 의한 절대적인 믿음 아래에서 전체의 성장을 위해 자신의 최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량은 순환에 의한 정보 공유에 따라 자연의 유지/성장으로 이어졌기에 자연은 언제나 최대의 효율로서 더 강한 순환을 이루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이 만들어진 이유이자 순환의 특징으로서 최대의 변화를 위한 유지와 최대의 유지를 위한 변화(성장)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의 유지는 성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성장은 유지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연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유지되면서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외부 요인들에 더 강하게 저항하면서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힘은 다시 자연의 특징에 따라 더욱 자연을 강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되는 것이며, ‘하나’ 안에 속해 있는 생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는 자연의 일부이자 삶의 실체적 기반이 되는 신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혈액으로 순환하기에 모두가 신체의 유지와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에서 다 같이 하나로서 협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협력은 신체를 구성하는 요소뿐 아니라 주변 자연의 요소와 함께 이루어졌으며 신체 또한, 끊임없이 자연과 함께 유지되고 성장해 왔습니다. 덕분에 과거 굉장히 단순한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던 신체는 끊임없이 변화되는 자연환경과 순환하면서 더 강한 유지와 성장을 이루었고, 지금과 같은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섬세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항상 최대 효율과 효과로서 유지, 성장하고 있는 신체를 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순환으로 인간(신체)의 진화를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현재에 비해 훨씬 지능이 부족했던 인류의 신체는 다른 동물들 대비 생물학적으로 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연약한 신체는 생존을 위해 혹독한 날씨와 짐승들을 빠르게 피하거나 극복해야 했으며 주위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신체는 자연과의 순환을 통해 성장과 유지라는 존재론적인 (순환에 따른) 목적에 따라 처리했습니다. 신체가 본능(자연적 특징)에 따라 어떻게든 자신의 순환을 성장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으로서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변화하는 환경만큼 빠르게 변화될 수 없는 신체는 높은 곳을 쉽게 올라갈 수 있고, 먼 곳을 빠르게 내다볼 수 있고, 무리 지어 행동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상황을 보다 빠르게 인지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이 자연 속에서 자신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변화된 것으로, 당장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살아남을 수 있는 신체적 요건을 갖는 것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더 높은 확률을 위해 변화된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동물의 신체 대비 약했던 사람의 신체는 보다 빠르게 외부적 요인을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했는데, 이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을 관장하는 두뇌의 사용량이 높아지게 됩니다. 자연과 하나로서 존재하는 신체의 순환에서 두뇌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 것으로 신체는 이러한 변화에 맞춰서 순환(신체)의 형태와 움직임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발달된 두뇌는 곧 상상력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써 신체로 하여금 단순히 상황에 따른 본능적인 움직임이 아닌 상상력을 통한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 행동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상황을 인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호기심을 갖고 상황을 분석하여 규칙을 알아내고, 알아낸 규칙을 기반으로 미리 대비하거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곧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보다 훨씬 더 높은 생존 확률과 함께 신체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기본적으로 자연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팔과 손의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이는 과거 빠르게 도망치기 위해서 필요했던 4족 보행에서 팔의 자유도를 높여 도구를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직립보행으로 신체가 변화될 수 있게 했습니다. 두뇌가 발달되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직립보행을 통해 팔이 보다 자유롭게 도구를 활용할 수 있을 때가 4족 보행으로 빠르게 이동하거나 도망칠 수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높은 생존 확률을 보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뇌의 발달은 약한 신체로 인해 주로 무리를 지어 다녔던 초기 인류의 특징에도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혼자서 살아갈 때보다 무리를 지어 생존할 때 훨씬 더 많은 뇌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행동과 생각이 아닌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고려해야 하기에 두뇌의 사용량은 무리를 지어 살아갈 때 보다 활발하게 증가되었습니다. 이때 무리 안에서 사람들의 두뇌 발달은 무리 안에서도 자신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신체의 본능과 함께 서로 좀 더 복합적이고 섬세한 감정과 생각의 교류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리 안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정확하고도 명확한 자신의 생각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필연적으로 고려해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더욱 섬세하고 깊이 있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지속적으로 발생되면서 인류의 신체는 보다 빠르게 두뇌의 활용도가 증가되었습니다. 무리를 형성하고 도구를 사용할 때 훨씬 더 높은 생존 확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신체는 본능에 따른 강한 육체보다도 도구의 제작과 사용, 타인과의 협력을 원활하게 이끌어내는 상상력(이성적 능력)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신체는 점점 더 많아지는 뇌 사용량과 중요도에 따라 뇌의 크기를 키우고 동시에 제일 많은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게 신체를 변화되었습니다. 동시에 뇌는 효율적으로 칼로리를 사용하면서 최대한 복합적이고 깊은 상상(생각)을 할 수 있도록 (신체의 일부로서) 변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체적 변화와 함께 사람은 더욱 많은 수로 형성된 무리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다양한 도구와 함께 협업과 분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협업과 분업은 인류의 생존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했으며 사람들은 생존의 걱정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삶이 과거보다 확실하게 강해진 것으로 이러한 삶을 형성하는 무리와 도구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인 상상력은 인류의 삶에게 있어서 본능과도 같은 필연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리를 형성하고 성장시키면서 부족, 사회, 국가를 이루게 되고 사람이라는 신체는 삶과 함께 그 어떤 동물보다도 강한 순환(인간이라는 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동시에 무리가 커지고 성장함에 따라 생존 욕구에서 자유로워진 신체 즉, 인간의 삶은 생존의 목적이 아닌 더욱 다양한 목적과 함께 사람들과 생각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다 다양한 형태와 움직임으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기록하고,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신체의 상상력(두뇌, 이성적 능력)은 끊임없이 더욱 깊고 다양한 호기심과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이 신체의 본능과 하나로 순환하면서 끊임없이 더 근본적인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보다 더 거대하고 근본적인 존재를 알고 활용할 때 자신을 중심으로 더 많은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며, 이것을 상상력을 통해 신체(삶)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체는 신체적 본능보다 이성적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이 훨씬 더 크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분명한 사실로서 알 수 있었고 끊임없이 증명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지금의 신체는 일상에서 본능을 보다 쉽게 억누를 수 있는 상상력(이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어떤 상황에서도 더 깊이 있게 자신의 유지와 성장만이 아니라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무리의 유지와 성장을 같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신체가 상상력의 성장을 통해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인식하고, 이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으로써 지금 자신이 보고 느끼고 있는 어떤 존재(문제/현상 등)에 대해 근본적인 무엇인가를 스스로 인지하고, 고민하고,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신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주어진 상황에서 나의 무리/사회/국가가 더욱 성장하고 유지되면서 내가 성장하고 유지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즉, 뇌가 어느덧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시스템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며 그 시스템은 자연과 신체의 관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순환의 모습(순환을 정의하는 시간과 공간의 모습/우주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회/국가가 어떻게 순환의 형태와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지는 5장에서 자세히 설명)



*뇌와 우주의 모습


위의 내용에 따르면 뇌가 순환을 인지하고 이해하여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존재가 된 것인데, 이는 우주가 자연이라는 순환을 창조한 것과 같다. 뇌의 형태와 움직임이 순환을 이해하고 창조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된 것으로서, 순환은 우주의 모습과 뇌의 모습이 비슷한 점에 대한 이유를 제시한다.


출처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kSMXWxSnoA&t=656s


*위의 영상은 뇌와 우주의 모습이 갖은 이유에 대한 영상이다. 해당 영상은 우주의 모습이 수치상 데이터로 얼마나 뇌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와 움직임을 갖고 있는지를 알려주면서도 단세포로 이루어진 곰팡이가 어떻게 먹이가 놓여 있는 위치를 찾고 최단 경로로 자신의 모습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우주를 비롯한 모든 존재들은 항상 최단 경로, 최고의 가성비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모든 존재들이 이러한 방식으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순환으로 설명한다.



정리하면 순환으로 존재하는 신체로 인해 최대의 효율/효과로 신체 전체에 자연과 공존하면서 발생된 모든 정보를 저장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기 인류의 신체에서 발생된 정보는 사람이라는 생물이 독립적으로 빠르게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을 해서 즉각적으로 또는, 사전에 미리 대처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혹은 동물들)과 함께 무리를 이룰 때 생존과 성장 확률이 높다는 정보인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순환한 결과 사람의 신체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차 뇌가 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무리 지을 수 있게 변화된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성적 사고는 본능과 합쳐져 끊임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무리를 이룰 수 있도록 작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 신체로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순환은 다른 동물의 순환보다 더욱 빠르고 강력하게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더 거대한 무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생존 욕구의 감소와 함께 발생되는 다양한 호기심과 이해, 표현, 적용 있어서 순환을 인지/이해하고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인류는 자신의 삶과 사회, 국가에 대해 다양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으며,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더 크고 강력한 성장과 유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우주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이를 이해/분석하여 적용/활용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더 크고 강하게 사람들을 묶을 수 있는 토대로 작용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순환이 어떻게 작용되었는지는 5장 ‘삶과 사회’에서) 동시에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인과 관계에 크게 의존하지 않은 채 언제 어디서든 예측할 수 없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우리를 비롯한 모든 존재들은 순환하기에 ‘독립적인 하나의 존재인 것이며, 각각의 존재(‘하나’)들은 다른 존재와 ‘하나’의 순환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젊은 신체와 늙은 신체에서 단순히 혈액만 서로 바꾸는 것만으로 신체 전반적인 노화의 진행이 변화될 수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혈액은 신체의 순환에 매개체로서 신체의 모든 정보들을 운반하고 있는데, 이는 혈액이 곧 자신이 이루고 있는 순환(신체)의 정보들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혈액이 다른 신체에 옮겨진다면 이 혈액은 자신이 원래 이루고 있던 신체의 정보대로 움직일 것이다. 이 혈액은 모든 장기들을 거치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대로 행동할 것이며 (혈액으로 존재하는) 장기들은 이 정보대로 변화될 것이다. 즉, 정보는 순환하며 이 정보에 따라 순환은 변화되는 것이다. 혈액은 순환으로 존재하기에 이 혈액에 따라 신체는 순환으로서 변화된 것이다.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2255-022-006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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