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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Jun Oct 28. 2022

제4장: '삶'이라는 하나, '우리'라는 하나 (2)

타인과 나로 이루어진 '하나'의 삶과 행복/사랑에 관하여 

다음으로 일상에서 ‘하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사람들이 일상에서 주로 쓰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말의 뜻을 해석해 보면 보통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소속감을 느끼고 같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 힘을 내자는 의미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같이 힘을 낸다는 건 서로 의지한다는 것이고, 의지한다는 것은 서로 일정 부분을 보완하면서 생각과 결과를 공유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결과를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를 믿는다는 것이며, 이 믿음은 서로가 ‘하나’로서 ‘하나’의 유지와 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나’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의 목표가 자신의 목표에 부합될 때 시작됩니다. 만약 ‘하나’의 목표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하나’를 구성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개개인의 목표는 ‘하나’의 목표를 통해 자신의 더욱 강한 유지와 성장이 됩니다. 이는 ‘하나’를 구성한다는 것은 ‘하나’를 통해 ‘하나’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유지와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자신의 목표가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납득은 단 한 번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와 그 과정이 ‘하나’를 이룰 사람들의 유지/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의 목표에 대한 납득이 단 한 번에 끝나거나 주기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의심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끊임없이 서로를 증명하는 순환(‘하나’)에 부합되는 것으로, 항상 최대로 성장/유지하는 생물의 순환을 고려한다면 일상에서 ‘하나’의 목적은 지속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때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목적이 점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를 이루고 싶어 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에 동참할 때, ‘하나’는 끊임없이 유지되고 성장할 여지를 얻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존재의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지와 성장으로서 존재하는 당위성은 ‘하나’를 구성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의 성장이 곧 자신의 성장이며, 이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써 작용되어 ‘하나’는 더욱 단단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를 이루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동시에 더욱 강해지는 믿음으로 뭉칠수록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하나’는 더욱 강해지게 됩니다.(역사의 증명은 5장 '삶과 사회'에서 자세히) ‘하나’는 과거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를 구성하는 개개인 또한, ‘하나’와 함께 강한 존재가 되어 훨씬 더 많은 재원을 누리는 것은 물론 더 다양한 경험과 생각, 결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순환적 특징을 가진 ‘하나’는 (순환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목표를 잡고 움직이게 됩니다. 이는 일상에서 사람들이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자연의 모습과 같이) 각각의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을 분담하게 되고, 각자가 맡은 역할을 주어진 환경에서 수행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만약 모두가 불필요하게 한 가지 일에 매달린다면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서 효율적이지 못한 것으로 (자연에 따른) 순환(적) 본능을 가진 사람들은 납득할 수 없게 되고, 다른 ‘하나’에 비해 목표를 달성하는 속도가 늦어져 빠르게 도태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구성하는 시스템 또한, 순환의 모습을 가짐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이루는 ‘하나’의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납득할 수 있는 분업과 함께 상호 간 신뢰할 수 있는 협력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목표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에 더해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맡은 바(=각자가 납득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하나’로 협력하고 있다는 지속적인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같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한다는 점에 대해 서로의 믿음이 부족해진다면, 그동안의 결과와 과정에 대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됩니다. 구성원들은 맡은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상대방을 의심/감시하게 되고 사람들은 ‘하나’ 안에서 분열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분열은 서로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이루어지고 '하나'와 타인에 대한 불신을 기반하는 만큼 소통의 단절로 이어져 수많은 갈등과 오해가 발생됩니다.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보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서로 신뢰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에 대해 서로 책임을 회피하게 됩니다. 이는 정보의 부제(혹은 거짓말)로 인해 발생된 불신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책임지고 싶지 않은 채로 편해지고 싶은) 본능에 따른 것으로 서로를 탓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파편적인 과거를 들추면서 주관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타인과 상황을 탓하게 됩니다. 본능에 따른 주관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정보의 부재, 거짓말에 따른 불신에 의해 ‘하나’를 이루고 있는 모두가 그 어떤 정보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쉽게 서로를 오해하고, 시기하게 되면서 신뢰는 빠르게 약화됩니다. 그리고 낮은 신뢰는 신뢰를 기반하는 ‘하나’의 약화로서 시간이 흘러 이 ‘하나’는 보다 작은 문제에 있어서도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하나’를 이룬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믿지 못하게 됨은 물론 오해와 상처들이 쌓이게 되면서 더욱 극단적으로 서로를 탓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지와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 ‘하나’가 분열과 쇠퇴만을 이루는 것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커지는 불신과 불만, 오해 속에서 상처받고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로서 구성원들과 삶을 공유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은 쇠퇴와 분열이 반복되는 악순환('하나')에서 삶의 존재론적 가치를 잃게 됩니다. 삶의 유지/성장이라는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존재 이유를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확실하지 않으면서도 파편적이고 주관적인 정보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시간은 삶의 존재 가치로서 아무 의미 없는(=존재하지 않은) 시간으로서 시공간의 순환(특징)에 따라 삶의 존재는 부정되고 끊임없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런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갖는 ‘하나’는 당위성을 잃게 됩니다. 이 ‘하나’도 분명 사람(삶)들이 모여 이룬 존재로서 시간과 공간의 순환적 특징을 가져야 하지만 그렇지 못함으로써 삶과 함께 그 존재가 부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하나’를 구성했던 사람은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상처받은 만큼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편견을 갖게 되고 스스로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약해지게 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를 이루어 같이 순환하는 삶인 만큼 이 믿음이 무너지면 ‘하나’와 함께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유지와 성장을 위한 목표는 점점 미뤄지면서 흐릿해지고 서로에 대한 불신은 불만/스트레스와 함께 끊임없이 증가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의 목표의 달성과는 (거의) 상관없이 구성원들로부터 유지와 성장에 관한 근본적인 신뢰를 잃은 ‘하나’는 분열과 쇠퇴를 통한 주관적인 편견만을 남긴 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없어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된 주관적인 편견은 뒤에 형성될 ‘하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순환에 따라 ‘하나’는 또 다른 ‘하나’와 연결되어 존재하므로 연쇄적인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여지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협력한다는 믿음이 강력한 ‘하나’는 서로에 대한 의심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해야 할 일에 자신의 능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시간(경험)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믿음은 점점 강해지게 되고 더 오래, 더 강력하게 ‘하나’의 목표 아래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과 노력이 사람들 사이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하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이로써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더 빠르고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되고 이런 과정과 성과 속에서 ‘하나’는 내부적, 외부적으로 끊임없이 더 강해지게 됩니다. 완벽하게 순환을 이루면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강력한 믿음을 만들 수 있을까요? 사람은 어떤 조건 없이 서로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주체적인(원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확률적으로 알게 된다.) 물론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을 표현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지만, 이조차 주관적인 정보로서 믿음이 부족하다면 결국 의심하게 됩니다. 때문에 서로가 믿음으로써 협력(의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가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음과 동시에 정보가 맞는지 검증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 모든 과정에 대해 어떤 제한 없이 쉽게 서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두가 ‘하나’로서 협력해야 하는 만큼 각자의 정보가 전체와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하나’ 안에서 발생되는 정보에 대해 아는 것은 물론 ‘하나’를 이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견은 구성원 모두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타당한지 아닌지 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의견에 대한 정보를 전체가 공유하지 않거나 서로 간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상호작용이 발생되지 않은 채로 한 사람이나 집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견과 함께 ‘하나’가 좌지우지된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타인에 의해 자신의 성장과 유지가(자신의 존재가)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과 같은 것입니다. 분명 ‘하나’의 목적 아래에서 맡은 역할이 있고 이를 위해 노력하지만 독립적으로 성장과 유지를 추구하는 ‘하나’로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순환에 따라 필연적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답답함과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성장으로 나의 성장을 이루고자 했지만 그 주체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지금 내가 나의 삶을 온전히 결정짓지 못하며 상황과 타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금 나의 삶이 (3장에서의) 분리된 과거에 대한 주관적인 타인과 나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끊임없는 무력함과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의 삶과 분리된 과거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만큼 구성원으로 하여금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정보와 함께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 안에서 존재하는 내가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하는지, 이 정보에 대한 내 의견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지만 확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걸 한다고 의미가 있을까?’, ‘아무런 의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나?’, ‘해야 했었나?’,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나?’, ‘지금이 이걸 할 상황이 맞는 건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 안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피해를 받거나,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잘못한 게 맞나?’,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상황이 이래서, 타인이 그래서 이렇게 된 것 아닌가?’, ‘내가 말한 대로 했으면 됐을 텐데’ 등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정보들을 뒤적거리면서 자연스럽게 주관을 더해 책임으로부터 오는 불편함을 피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자신을 제외한 ‘하나’를 탓하는 것으로 ‘하나’ 속에서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믿을 수 있는 정보와 그 정보가 가진 영향이 순환하지 않는 ‘하나’의 구성원들은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결정짓지 못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책임을 확실히 알지 못한 채 전가할 여지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확실함 속에서 이뤄지는 책임 전가는 불편함을 최소화하려는 본능과 주관이 개입하게 되고 수많은 오해와 갈등, 불만과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하나’로서 ‘더 나은 유지와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확실성을 의미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의문과 두려움에 따라 ‘하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발생됨을 의미합니다. 분리된 미래와 같은 것으로서 지금의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정보/기준으로 확정 짓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과 결정에 따른 미래를 계속 의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안에서 자신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면 자신에게 ‘하나’는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정보가 있다 한들 내가 나를 결정짓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알고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모든 정보들을 무의미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끊임없이 존재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를 ‘하나’ 안에서 찾으려 방황하게 되고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해결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지친 자신은 끊임없는 포기, 위로, 절망, 후회, 두려움, 합리화 속에서 ‘하나’의 존재와 함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타인과 상황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성장과 유지에 관한 생각과 결정’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하나’로서 존재하는 모든 삶은 결국 쇠퇴/분열되는 것입니다. 서로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하나’의 정보가 ‘하나’ 안에서 분열된다는 것은(전체로 순환하지 않는다면) 다른 삶과 ‘하나’의 삶을 이루면서 과거, 현재, 미래, 공간을 지금으로 담아내는 사람에게 지금의 자신을 기준으로 공간, 과거, 미래를 분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끊임없는 불확실함과 함께 발생되는 주관적인 생각과 결정으로 지금을 결정짓게 되는 것으로서 끊임없는 고민과 의심 그리고, 후회와 두려움 속에서 ‘하나’는 약해지고 고통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일상에서의 ‘하나’는 끊임없이 유지와 성장을 이루면서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는 (온전한) 하나의 순환을 이룰 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하나’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이 끊임없는 정보교류(상호작용)를 하면서 ‘하나’로 유지되고 성장할 때 모든 삶은 타인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 공간이 지금이라는 ‘하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어진 상황에서 항상 최대의 효율과 효과로 순환을 이루고, 순환을 정의하는 자연/우주의 모습에 따라 일상에서의 ‘하나’는 각자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정해진 역할과 지위가 있으면서도 객관적인 정보를 공유함에 있어서는 모두 평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보가 순환을 통해 전체와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구성원 모두는 정보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정보)을 표출하고, 이 의견이 민주적으로 결정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이나 집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를 이루는 사람들과 함께 객관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한 정보 공유와 합리적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대표적으로 투표) 통해 서로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삶은 순환이고 순환은 삶이기에 이러한 ‘하나’를 이루어 존재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하나’로서 소속감과 타당성을 인지하게 되고 ‘하나’는 존재에 대한 당위성을 얻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의 성장/유지에서 자신의 성장/유지를 찾을 수 있게 되어 ‘하나’와 타인을 믿고 의지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정보의 순환을 기반하는 전체 구성원들의 생각과 결정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에서 만이 구성원들은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주관에 따라 흔들리고, 방황하고, 오해하고, 시기하는데 쓰는 것이 아닌 ‘하나의 유지와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하나’를 분열시키면서 약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문제들과 ‘하나’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확실한 여지를 볼 수 있게 되고, 이를 해결하고 이뤄내면서 ‘하나’는 진정 의미 있는 유지와 성장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난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더 단단하게 연결됨과 동시에 유지와 성장을 이루면서 더 강해진 ‘하나’는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게 되어 더욱 다양한 형태와 움직임을 갖게 됩니다. 이는 자연의 성장과 같은 것으로 ‘하나’는 다가오는 변화와 위협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하나’에서 더 안전하게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더 높은 성장을 향해 갈 동력과 명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가장 근본적인 특징인 순환에 따라 끊임없이 더 유지되고 성장하고픈 사람은 ‘하나’와 함께 어떤 한계 없이 끊임없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해지는 삶은 오랫동안 풍족하게 자신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서 자신의 생각과 결정을 가로막는 한계를 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최대한 자유롭고 편하게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고 유지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삶이 사랑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강한 삶이란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형태와 움직임으로 깊이 있게 사랑을 표현하고 받을 수 있음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사랑은 믿음과 의지를 기반하고 또, 의미하기에 다른 삶과 ‘하나’로서 존재하는 삶은 더욱 강한 사랑과 함께 ‘하나’를 이룰 수 있을 때 온전한 순환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의지, 그리고 사랑


나는 의자를 사랑한다. 의자는 내가 앉았을 때 편안함을 제공해 준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의자에 나의 신체와 정신을 쉽게 의지한다. 많이 걷거나 오래 일어서 있을 때 나는 의자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의자를 부쉈다면 스스로를 후회한다. 이는 동물적 본능에 따라 스스로의 책임과 스트레스를 최대한 피하려는 특징을 거스르는 것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의자는 사랑하는 사람과는 다르게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항상 내 주변에 존재하고 쉽게 구하고 만들 수 있기에 느끼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사랑한다고 했을 때 확실하게 결정지을 수 없는 믿음과 의지에 따라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을 의자의 존재 특성상 느끼지 못할 뿐인 것이다. 즉, 믿음과 의지 없는 사랑은 존재가 성립되지 않으며 사랑 없는 믿음과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일상에서 ‘하나’를 이룰 때 자신이 맡은 역할과 타인에 대해 어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일정 부분(정도의 차이는 존재)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 주변에 당연히 존재하는 모든 것들 또한,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다른 존재)과 ‘하나’를 이룸으로써 존재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인 것이며, 때문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슬퍼한다면 슬퍼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누구나 원하는 삶으로서 이런 삶을 유지하면서도 성장하는 삶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순환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는 만약 삶의 강함이 더 크고 다양한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삶의 모순이 발생되는 것으로 강함은 무의미해지고 끊임없는 불행과 고통을 받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순환(삶)에 반했던 ‘하나’(국가, 기업, 단체, 무리, 가족, 삶)는 모두 쇠퇴와 분열을 통해 고통받았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5장의 ‘삶과 사회’에서) 즉, 삶은 시간과 공간의 순환이기 때문에 온전히 순환하는 삶을 살 때 사람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느끼면서 사랑하고, 행복하고,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일상에서의 ‘하나’는 성장과 유지를 향한 목적과 함께 강력한 믿음이 뒷받침될 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강력한 믿음은 ‘하나’에서 평등한 정보 공유 함께 구성원 모두가 ‘하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나와 타인이 ‘하나’되어 삶을 이루는 사람이 타인과 함께 믿음을 기반으로 삶이라는 ‘하나’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의 공유가 필요한데, 이는 평등하면서도 지속적인 정보 공유와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정을 필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두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닌 주관적인 정보로만 생각하고, 결정하고, 소통한다면 결과적으로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주관적인 각자의 생각은 객관적인 정보에 대한 상호 소통과는 다르게 서로에게 일방적으로 이해해 달라는 의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양방향으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순환의 규칙에 위배됩니다. 즉, 자신이 ‘하나’이자 ‘하나’가 자신 그 자체가 될 때 삶은 ‘하나’와 함께 온전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는 자연/우주의 순환에 완벽하게 부합됩니다. 나와 ‘하나’가 순환할 때, 나와 타인이 순환할 때, 타인과 ‘하나’가 순환할 때 모두가 자연과 우주처럼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들은 일상에서 ‘하나’는 자연과 우주를 통한 삶의 정의에 부합되면서도 자연과 우주의 ‘하나’와 같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우리 일상도 자연의 일부인만큼 순환에 의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태어날 때부터 타인과 삶을 공유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타인과 ‘하나’를 이루어 자연, 우주와 같이 순환을 이루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인 과거, 현재, 미래가 타인과 함께 순환한다는 것은 타인과 내가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순환하여 삶이 존재한다는 것이기에 항상 최대, 최상의 유지와 성장을 이루는 자연의 순환과 비슷한 ‘하나’일수록 일상에서 더 강력한 믿음으로 ‘하나’를 구성하고 목적을 달성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과 이 우주가 경이롭고 아름답듯이 이 ‘하나’와 함께 존재하는 삶도 그러한 것입니다. 또한, 순환에 따라 자신과 자신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나는 사회라는, 자연이라는, 우주라는 ‘하나’의 일부이자 동시에 지금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들(지금의 ‘나’를 만든 우주와 자연과 삶들)의 ‘하나’가 됩니다.


그렇기에 나의 삶은 자연과 우주의 객관적인 사실이 뒷받침되는 믿음으로 나와 지금이 순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들과 순환하면서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삶과 삶의 가치를 한 치의 의심 없이 이해하고 느끼면서 성장과 유지를 이루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나의 삶에게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인 것은 당연한 사실이며, 이를 삶을 순환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의 삶은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을 모두 포괄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삶(’나’를 결정하는 ‘나’의 삶, 나의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삶)을 알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삶’라는 ‘하나’의 주체로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라는 것을 일상과 자연의 ‘하나’에 적용할 때 부합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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