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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Jun Oct 26. 2022

제3장: 존재에게 삶이란? (1)

순환으로 삶을 돌아보다.

‘나’의 삶이 시간과 공간이 순환할 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주와 자연(신체 포함)에서 알 수 있는 순환의 모습과 특징을 삶의 시간과 공간에 적용했을 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고 정확한 삶의 가치를 알게 되어 지금의 내가 찾고 있는, 내가 살 수 있는, 살고 싶은 나의 삶(원하는 삶)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작으로 순환의 모습에 대해 정의해 보면 기본적으로 서로 상반된 성질을 가진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서로의 힘을 지속적으로 상호보완하는 동그란 형태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그란 형태를 가진 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되는 것으로 시작과 끝없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원(순환)의 형태는 어떤 기준이 없기 때문에 양방향을 모두 담을 수 있으며 모든 부분이 상반된 개념이나 물질, 현상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순환의 모습이란 서로 상반된 두 개 이상의 존재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이며 원의 모든 곳에 순환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중첩된 채로 공존하는 형태인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확률과 실체의 중첩으로 이루어졌기에 삶 또한, 삶의 모든 순간들과 그 삶의 모든 가능성(삶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모습)이 하나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삶은 시간과 공간의 순환으로서 삶의 모든 부분이 시간이자 동시에 공간이라는 것이 됩니다. 시간을 이루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간과 함께 하나의 원으로 존재하며 움직이는 것으로 삶은 하나의 점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삶이 과거부터 지금을 거쳐 미래로 뻗어가는 실 같은 것이 아니라 삶(순환)이라는 도화지에서 매 순간마다 무수히 많은 점들을 찍어가는 것임을 뜻합니다. 삶을 인지하는 지금 이 공간과 시간이 바로 삶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순환인 것으로서 어떤 공간에서 글을 쓰고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공간과 내가 나의 존재를 인지하는 시간(과거, 현재, 미래)은 나의 삶 그 자체이기에 지금 이 순간은 바로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 삶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 것 같으면서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시간 상 지금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 지금이 삶 그 자체를 뜻하지는 않으며 지금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하는 삶에서 아주 작은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어디까지나 저의 표면적인 생각일 뿐, 우주와 자연의 모습은 보다 근본적으로 지금이 바로 삶 그 자체임을 의미하고 있기에 저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간과 함께 지금으로 (순환하여) 하나 되어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라는 건 지금이 과거이자, 미래라는 것이므로 내 마음대로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를 바꿀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하게도 불가능합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다가올 미래는 아무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바꾸지 못하는 과거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고 후회를 하며 알 수 없는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바꿀 수 없는 과거의 후회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면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과 함께 미래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살면서 필연적으로 계속 발생되고 축적되는 후회와 두려움은 자신에 대한 분노와 불안,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의심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불안과 분노, 의심은 계속해서 지금의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하시키고 시간을 낭비하게 합니다.


어떤 결정이나 생각을 시작하거나 계획하려고 할 때 느껴지는 불안과 의심은 ‘내가 할 수 있을까?’, ‘지금 이걸 한다고 의미가 있을까?’, ‘그때는 왜 안 했지?’, ‘좀 더 일찍 시작할걸..’, ‘좀 더 쉬운 길이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합니다. 이런 고민만 계속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맘을 잡고 시작하더라도 일을 하는 동안 계속 자신의 결정과 생각을 뒤돌아보면서 후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의심하고 고민하면서 시간을 지체하다가 스스로 지쳐 포기하게 됩니다. 각오를 다잡고 끝낸다고 해도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좀 더 해볼 걸 그랬나?’, ‘이건 하지 말 걸 그랬나?’, ‘그때 그랬으면 지금보다 훨씬 낫지 않았을까?’ 등과 같은 질문을 하면서 그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본인이 최선을 다했는지, 잘못한 것은 없는지 항상 의심하고 후회하게 만듭니다. 물론 이 질문들은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한번 지나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하거나 하고 있을 때 그 일과 생각이 정말 타당하고 맞는 것인지에 대해 의심과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은 분명 더 나은 생각과 결정으로 이어지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믿고 있는 어떤 기준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고민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의심을 의문으로 만들고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 함께 고민하면서 깨우침과 함께 답을 알아내서 결정하고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각을 하고 수많은 답을 생각하지만 무엇 하나 확신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고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자신감과 체력은 떨어지고 혼란과 스트레스만이 증폭됩니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무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고통스러운 밤을 지새우고, 피곤한 아침을 맞이하고, 밥 맛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채로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바꿀 수 없는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채 지금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후회스러운 과거와 두려운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지금의 나에게 집중해 보려 했습니다. 후회스러운 과거는 지금의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미래는 단순히 다가오는 것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부정하면서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당장은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아무런 후회와 두려움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상관하지 않고, 생각나더라도 애써 무시하면서 그저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얽혀 있는 나의 문제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생각과 결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에서 저의 모습은 아이처럼 생각 없고, 이기적이고, 어리석었습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미래를 무시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부터 지금까지 나와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은 과거를 계속해서 떠올리게 했으며 해야 할 일과 책임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것은 과거를 무시하려는 저에게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했고 끊임없이 과거를 떠올리면서도 과거를 부정하는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시간들이 늘어났습니다. 또한, 과거를 생각하려고 하지 않다 보니 과거의 잘못과 실수를 반복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문제에 대해 저는 책임지려고 하지 않은 채 회피하려고만 했습니다. 책임을 피하거나 떠넘기기 위해 거짓말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변명하면서 어영부영 넘어가기 바빴던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별생각 없이 그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살게 되었는데 미래로부터 그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은 저에게 있어서 예정되어 있거나 예정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일들 모두 귀찮고 피하고 싶은 것들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챙기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이렇게 살자 후회할 순간(과거)은 점점 늘어만 갔으며,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와 이중적이고 비겁한 태도에서 타인과의 마찰이 빚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실망했고 많은 조언과 언질이 있었지만 과거와 미래를 부정하는 저에게 이런 타인은 나를 방해하는 짜증 나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점점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게 되었고 과거를 떠올릴 일도, 예정된 약속도 점차 없어져 갔습니다. 그러자 점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타인에게 이야기할 시간이 줄어갔고 동시에 외로움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느껴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는데, 본인을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는 순수하고 소박한 존재로서 받아들였으며 주변의 사람들은 이런 자신을 몰라주거나, 싫어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이용해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 타인을 피하거나 무시하게 했고 상황에 상관없이 그저 원하는 것을 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주변 상황이 어떻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데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다시 상황과 남 탓을 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했습니다.


이런 생각과 태도는 점점 나의 언행을 뻔뻔하고 이기적으로 만들면서도 자신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사건들과 사람들이 어떻게 되건 별로 상관없게 느껴지도록 했습니다. 그저 자신을 귀찮게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으면 어찌 되든 별로 크게 상관없게 느껴졌으며 귀찮게 하는 존재는 빨리 인생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상은 축적되는 후회, 두려움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끊임없이 넓어졌고 결국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사람, 사건, 생각 등)을 지금의 나를 방해하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합리화를 위해 이 존재들을 부정적으로(적대적으로) 생각했으며 점점 차갑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이 와중에도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것에는 더욱 신경 쓰게 되었는데 스스로를 합리화할 때마다 자신이 하고 싶고 관심 있어하는 것에 점점 더 강한 의미/가치 부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과 행동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관심 있어하는 것에 대해 점점 과한 집착을 만들어 냈으며 별것 아닌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되어 있으면 보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하고 있거나 관심 있어하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 과할 정도로 분노하거나 무시하였으며 그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과 태도는 계속해서 사람들과 이 세상에 대한 오해를 만들었으며, 스스로 세상 사이의 거대한 벽을 만들어 점점 더 외롭고 작은 공간에 자신을 밀어 넣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외롭게 만든 저는 어느덧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게 되었을 때,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나를 보지 않고, 나를 피해 다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막기 버거운 우울감을 느꼈지만 과거와 미래를 부정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저는 의지할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믿기에는 너무나 이중적이고 비겁했으며 타인에게 의지하기에는 신뢰가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미 너무나도 높은 벽이 사방에 둘러싸여 있는 작고 외로운 공간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극도의 두려움과 우울함을 느낀 저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자신을 끊임없이 합리화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합리화의 대상은 과거와 미래였기에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합리화하는 과정은 자신의 생각 이외의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했고 쌓여만 가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결국 저를 허무주의로 빠뜨렸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던지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해 봤자 늦었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무엇을 하든 절대 바뀌지 않아’, ‘나와는 상관없어’, ‘모든 것이 부질없다’, ‘어차피 상황/사람은 변하지 않아’, ‘헛된 희망이야’, ‘곧 다시 나빠지겠지’, ‘역시 그럴 줄 알았어’와 같은 허무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혔고 모든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과거,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 타인과 상황을 끊임없이 부정하자 결국 지금 내가 하고자 했던 것과 하고 싶었던 것조차 부정되어 무의미해진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저는 무엇 하나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만으로 가득 찼고 그 의구심은 아무것도 안 하고 하기 싫은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와 합리화의 굴레 속에서 허무함과 무력함, 그리고 외로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삶 그 자체에서 의미를 알 수 없게 된 저는 스스로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자 커다란 슬픔과 절망을 느꼈고, 이런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다시 합리화할 것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에 대해 일말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 위해, 타인과 상황을 탓하기 위해 또다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과거와 미래를 부정하기로 결정했던 저는 결국 합리화를 위해 과거와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하다가 포기하거나, 어떤 확신 없이 시작한 일을 겨우 끝내면서 후회하는 시간을 만들어 간 것입니다. 후회를 낳는 후회의 시간에는 고통만이 존재했기에 이런 시간이 많아질수록 심해지는 고통과 후회 속에서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은 점점 없어졌으며 불편한 과거와 미래로부터 오는 책임과 부담을 견디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자신의 문제를 보기 어려워졌으며 타인과 상황을 탓하는 것에 급급해진 것입니다. 주체적으로 어떤 생각과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주어진 상황에 따라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스스로 합리화하여 다시 후회스러운 순간들을 만드는 고통스러운 악순환이 이어진 것입니다.


이 악순환 속에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었으며, 이를 인정받기 위한 주관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생각들은 스스로를 점점 더 깊은 악순환의 심연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끊임없는 고통은 계속해서 자신을 약하게 만들었고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합리화를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들은 더욱 극단적으로 변해갔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편견과 오해가 생겼으며 주변에 대해 무관심을 넘어 적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절망과 슬픔, 분노, 후회, 두려움 등이 결과적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것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동시에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계속해서 예민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아주 작고 추운, 알 수 없는 곳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넣었고 외로움과 허무함에 고통받은 것입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 자신에 대해 어떤 확신도 없었던 저는 허무한 죽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구하듯 과거와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를 거부하기로 한마음과 상충된 것으로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우유부단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은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저는 선택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받아들이고 조작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면서도 자신에 대해 어떤 확신도 없는 약한 존재지만 의지할 사람은 없는 외롭고 안타까운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즉, 과거와 미래를 부정한 저는 ‘나’를 알지 못하는 1장에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끝없는 절망으로 떨어지는 악순환의 삶에서 저를 꺼내 준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신의 목표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도왔으며 타인의 삶을 지키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한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강한 신념과 의지를 잃지 않은 채 끝까지 싸웠으며 결과적으로 현실을 바꾸어 나갔습니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상황,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 끔찍한 고통이나 죽음이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슬픔 속에서 이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결심과 끈기, 그리고 용기로 자신의 뜻과 목적을 굽히지 않고 지키면서 이뤄냈습니다. 그들 주변의 존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서 절망과 두려움으로 인해 포기하고 도망쳤음에도 그들은 자신이 믿고 따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저보다도 훨씬 절망적인 상황과 비참한 과거, 답이 보이지 않는 미래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확신과 끈기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면서 상황을 바꿔 나갔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과 여정은 과거와 미래로부터 도망치기 바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아름답고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항상 저의 심장을 벅차오르게 했으며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깊은 감동과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그들의 삶에 매료되었고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삶)에서 공통적인 특징들을 찾고 삶에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확신이 있어 보였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해야 하는 것,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이 잘하는 것 등에 대한 각자만의 뚜렷한 확신(신념, 철학)이 있었으며, 이런 자신의 생각과 기준에 따른 결정에 있어서 그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는지 찾아보았는데, 그들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후회스러운 과거가 있으면 이 과거를 다시 생각해 보면서 자신이 무슨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생각해 보고 앞으로 같은 후회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행복했던 과거, 슬펐던 과거, 지금까지 들었던 사람들의 조언과 언질, 때로는 욕과 비아냥을 통해서도 자신의 목표를 잡기도 했습니다. 즉, 그들은 공통적으로 과거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와 함께 목표를 결정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한 자신의 목표와 정체성은 시간이 흘러 더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거치게 되면서 더욱 단단한 신념으로 굳혀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 신념은 자신의 목표가 반드시 이뤄야 하는 것이라는 확신으로써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이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확신과 자신감을 통해 그들은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발생되는 문제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고 자신의 목표를 이뤄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점점 자신이 믿던 신념과 목표가 이뤄지고 현실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됨으로써 더욱 큰 자신감과 목표, 신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서 미래는 알 수 없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아갈 길이자 목표를 이루면서 변화시킬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는 자신의 신념과 목표가 맞다는 확신으로 작용되어 일종의 동기부여가 되는 것입니다. 덕분에 이들은 강한 신념(과거)과 자신감(미래)으로 두려움(미래)과 후회(과거)를 이겨내면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제가 생각한 이들의 공통적인 모습은 과거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짓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게 된 자신의 목표와 생각들을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고치고 수정하면서 더 크고 강한 목표와 생각(신념)을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인의 생각(신념)과 목표에 대한 확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 이뤄야 한다는 의지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와 미래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고, 이를 통해 미래를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시간의 방향에 맞춰 과거, 미래와 타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꾸지 못하는 과거를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나를 알아낸 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워서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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