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횡행이 불러온 세계적 금융 위기
미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지속해 왔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2004년까지 총 13여 차례에 걸쳐서 5.5%포인트나 정책금리를 내렸다. 1~2%대의 낮은 금리가 지속되자 대출이 급격히 늘어났고, 그 결과로 주택 가격은 거품을 형성했다.
(소영일·고종문 著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제성장종말』, 지구문화사, p.67)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뉴딜 시대에 탄생한 구태의연한 30년짜리 고정금리 모기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은 변동금리 모기지였다. … 대부분은 초기 티저금리 기간도 제공했다. 처음 2~3년간 주어지는 이 기간 동안 대출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연기되었고 금리는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되었다. … 거의 모두가 재융자 대출이었고, 이를 통해 대출자는 주택을 마치 현금 인출기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外 12명 著 『눈먼 자들의 경제』, 한빛비즈, p.133)
빈센트가 맨해튼에서 신참 회계사로 일하며 처음 맡은 임무는 살로먼브라더스를 감사하는 일이었다. 그 일을 맡자마자 빈센트는 투자은행의 장부가 얼마나 불투명한지 알아차렸다. 동료 회계사들 가운데 누구도 트레이더들이 왜 그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마이클 루이스 著 『빅 숏 : 패닉 이후, 시장의 승리자들은 무엇을 보는가』, 비즈니스맵, p.31)
부동산시장이 붕괴됨에 따라 리먼브라더스는 부동산관련 투자로 큰 손해를 보았다. … 몇 달 전만 해도 당당하게 큰소리치던 리먼브라더스가 2008년 2분기 적자를 발표한 것이다. 마이너스 28억 달러였다. … 리먼브라더스는 그들의 알토란 같은 퇴직자금을 밑천으로 40배의 도박을 했고 그들의 돈을 가지고 왕자처럼 살았던 것이다.
(『눈먼 자들의 경제』, p.90)
"우리가 '누가 그 따위 쓰레기 같은 채권을 사나요?' 하고 물어볼 때마다 리프만은 '뒤셀도르프 사람들이요'라고만 대답했어요." 빈센트가 말했다. 뒤셀도르프 사람들이 실제 현물에 기초한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을 사는지, 아니면 그와 동일한 모기지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왑을 파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상승세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빅 숏』, p.114~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