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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Jul 14. 2022

중국의 도약, 미국의 전략

지정학에서 패권 전쟁의 막이 오르다

  상황에 따라 승부에서 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지는 것을 이기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친구와의 가벼운 내기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내심 이기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며, 흥미 본위의 스포츠 게임에서라도 일반적으로 참가자들이 힘써서 이길 것을 먼저 생각하지 자신이 패배하는 미래를 먼저 그리지는 않는다. 인간에게는 승리를 추구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승부에서 승리를 노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계의 일부인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하며, 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을 통해 진화한 존재로서 생존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본능적 압박이 승리에 대한 갈망으로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한 사회인의 노력, 팀의 1승을 위해 전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스포츠 선수들이 살아가는 힘의 근원도 승리에 대한 보상에서 나온다.


  내면에 발현되는 승리에 대한 열망이 쌓이면 그 사람의 인생 바다. 하물며 개인 단위에서의 효과가 이럴진대, 그 단위가 사회와 국가로 커진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문명사를 일신하는 진보 혹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집단적 광기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방향성을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게임의 판이 커질수록 보상도 커지며, 보상의 확대가 과감한 수를 두는 것에 대한 유인을 키운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미중 패권 다툼이라 부르는 마찰 역시 이런 친숙한 근원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국제기구 테이블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한 나라가 꼭 한 세대 만에 꼭대기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도약했다. … 2008년 이후로 2년마다 중국이 이룬 GDP 증가량은 인도 전체의 경제 규모보다 더 컸다. 2015년에는 성장률이 다소 둔화되었음에도 중국 경제는 16주 만에 그리스를 그리고 25주 만에 이스라엘을 하나씩 만들어낼 정도로 성장했다.
(그레이엄 앨리슨 著 『예정된 전쟁』, 세종서적, p.32)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으로 압축되는 경제 개혁과 함께 늦게서야 기지개를 켠 중국은, 때마침 미국의 주도 하에 일어나고 있었던 세계화의 기류에 몸을 싣고 날아올랐다. 산업화의 최후발 주자 그룹에 속했던 중국은 한국과 유사한 방식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산업을 진흥하며 시장을 관리하면서, 압도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운 저부가가치 공업부터 승부를 건 것이었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세계화의 논리로 글로벌 기업들이 비용 최소화를 위해 중국에 진입했다. 적극적인 외자 유치 기조를 가진 정부와 낮은 인건비에 이끌린 기업들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하게 했다. 외국 자본은 저렴한 비용으로 인구 대국의 시장을 개척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렸고, 중국 정부는 폭발적인 경제 성장과 순차적인 공업 고도화에 매우 흡족했다. 미국의 소비자들도 중국에서 넘어온 저렴한 상품들에 익숙해졌다.


  경제 성장의 최후발 주자 그룹에 속한 중국이 가장 늦게까지 고도성장으로 질주한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10% 전후의 경제성장률을 몇 년이고 보여준 그들은 어느새 인구 10억 이상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나 있었다. 거침없이 이어진 성장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엄청난 경제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국이 몸집이 커질수록 G1 미국의 심기는 점점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경쟁의 치열성은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지만 강대국들은 언제나 서로를 두려워하고, 권력을 더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강대국들의 최우선 목표는 세계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힘의 비율을 더 높이려는 것이며 이는 결국 상대방의 힘의 비율을 낮춰야만 가능한 것이다. … 강대국들의 궁극적 목표는 패권국 ─즉, 국제체제에서의 유일한 강대국─ 이 되는 것이다.
(존 J. 미어셰이머 著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김앤김북스, p.35)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줄곧 최강국의 지위를 누려왔다. 한때 소련이 강력한 맞수 역할을 했지만, 너무나도 뚜렷한 경제적 한계와 내부 체제의 모순을 담고 있었던 그들은 21세기를 맞이하기 전에 파멸하며 분해되어 버렸다. 냉전 종식 이후 단극 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 미국이 전도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세상 사람들이 미국이 발행한 달러로 거래하며, 영어로 소통하는 지구촌은 미국의 이상이 구현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발생한 2008년의 금융위기는 그러한 이상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세계 GDP 성장곡선을 좀 더 보기 좋게 만들고 있었던 신자유주의가 이면에서 무절제한 금융 체제와 자산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각국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덮친 대형 경제 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되었으며, 이는 곧 그것을 설파한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들에 관대한 구제책을 내놓고, 무제한 화폐 증발이라는 임시방편을 써놓고도 경제 침체에 허덕인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성장률 차이가 벌어지자 견제 카드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가 리더십의 위기로 전염되는 현실, 그리고 중국이 최대 경제권으로 도약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미국에 닥쳐왔기 때문이다. 늘 제로섬 게임인 패권 싸움에서 추격자를 찍어 눌러야 할 때가 왔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셰일 천연가스 덕분에 미국에서는 전기 값이 저렴해졌고 그 기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정부 보조금 없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전력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산업들, 특히 식품가공업, 식수 처리와 유통과 같이 인간이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산업들도 가장 중요한 투입재로 손꼽히는 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수준에서 요지부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피터 자이한 著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김앤김북스, p.89)


  전략적 행동 개시에 돌입하려던 미국에 마침 좋은 뉴스가 도착했다. 2010년대 초반 들어 셰일 오일과 셰일 가스를 채굴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자국의 지하에 매우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에너지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유정 개발의 손익분기점을 낮춰주었고, 셰일 오일과 가스의 유입으로 미국은 새로운 엔진을 부착하게 되었다. 낮아진 에너지 단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자명하다. 기업의 생산비 부담이 낮아지면서 소비자 물가를 진정시키는 기능을 하며, 자체적으로 에너지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은 유사시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새로운 석유 공급원을 국내에 확보해, 중동에 기울이던 관심을 동아시아로 옮길 수 있었다.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중동에서 정세 불안정이 이어질 때마다 군사 개입도 마다하지 않았던 미국이었지만, 중동에 대한 자원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그곳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 이전보다 시선을 집중하게 된 미국과 G2로 뛰어오른 중국의 대립은 필연으로 굳어졌다.



중국은 산호초 위에 수백만 톤의 돌과 모래를 쏟아부어 인공 섬들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런 인공 섬들은 기존에 있던 육지를 넓혀 새로운 섬으로 만든 것이기에 완전한 인공 구조물이 아닌 실제 '섬'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현재 그곳에선 해군 함선이 정박하고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군사용 기지들이 건설되고, 전략 폭격기들을 운용할 수 있는 활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대니얼 예긴 著 『뉴 맵(NEW MAP)』, 리더스북, p.216~217)

  

  중국이 덩치를 키울수록 동아시아의 이웃들의 반응이 점점 예민해졌다. 특히 같은 동북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은 중국처럼 제조업이 주력인 국가로 이해관계에 충돌이 있는 사이이며, 중국의 공업이 고도화함에 따라 그 마찰은 점점 격해졌다. 한편으로 중국의 경제력과 함께 크게 신장한 군사력은 공식적으로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있는 일본, 그리고 좁은 황해를 사이에 둔 이웃인 한국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몸집과 파워를 키운 중국은 서서히 대륙의 틀을 깨고 동남쪽으로 열려 있는 바다를 향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충돌에서 희토류 수출 제한이라는 카드로 상대를 압박해 양보를 이끌어냈던 것이 시작이었다. 중국에 맞먹는 체급인 일본이 체면을 구기자, 인근의 동남아 국가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다음 마찰이 일어날 곳이 남중국해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야심만만한 리더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중국이 더 대담하게 나섰고, 대륙의 틀을 깨고 해양으로 손을 뻗으려는 거인을 막기 위해 다른 나라들이 동시에 뛰어들었다. 남중국해는 막대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해역이며, 전 세계 해상 교역량의 30%가 이곳을 경유한다. 남중국해 장악에 따른 메리트를 얻기 위해 베트남이 군대를 출정시키고, 중국이 모래를 부어 산호초를 확장시키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미국은 중국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손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도전자를 압박했다. 중국에 대항하려는 이웃들의 편에 섬으로써 미국은 자연스럽게 해양에서 중국을 포위하는 포석을 깔았다. 어느새 사방으로 적을 두게 되었지만, 해양으로 나갈 곳이 남동쪽밖에 없는 나라에 대안은 없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묶이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는 입장에서 그들은 정면돌파, 즉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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