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루 Aug 03. 2022

세계 경제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시련에도 영광에도 끝이 있다

  이 문장을 읽게 된 이가 30대 이하의 연령대라면, 아마도 그는 태어난 이후 뉴스에서 '지금이 호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이 고도성장을 이룬 다음 성장 곡선이 꺾일 때쯤에 세상에 나와, 폭발적으로 넓어지는 현실과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사회를 체감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 반열에 드는 국가들은 이미 어느 정도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그런 국민들의 마음을 충족하려면 국가가 계속 성장을 해야 하나, 아무래도 예전만큼 거침없이 몸집을 키우는 것은 무리다. 시험에서 60점을 70점으로 만드는 노력보다 90점에서 100점으로 만드는 노력의 요구량이 훨씬 더 큰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의 산물이 흔히 파이에 비유되곤 한다. 파이의 크기가 빠르게 커지던 시기에는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 있었지만, 파이가 커지는 속도가 느려지면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욕심을 채울 수 있게 된다.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국 이기주의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것을 침탈하는 출혈 경쟁에도 언젠가는 끝이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물이라도 역사의 거대한 흐을 거부할 수는 없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변수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만 작용하고 있는 암울한 상황이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들은 폭풍우를 견뎌내고 살아남아 또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 갈 것이다. 물론 시련과 영광이 언제 교대를 할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수천 년간 인간의 성공 이력을 되짚어본다면 해피 엔딩 스토리를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 취임 후의 통치스타일을 보면, 국가 핵심이익을 지켜내겠다는 강력한 지도자상이 돋보인다.  … 캐머런 영 총리는 2012년 5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을 위해 런던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를 공식 접견했다. … 이로 인해 그해 가을로 예정됐던 영국 총리의 방중 취소, 2013년 초로 계획된 리커창 총리의 방영 연기, 중국의 투자 중단 등의 외교·경제적 보복을 당했다.
(문유근 著 『시진핑의 차이나 드림』, 북스타, p.422~423)

 

  미국이 중동에 들이던 전략적 여력을 동아시아에 쏟아부어 중국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공급망 재편과 기술 발전 지원 정책에도,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중국의 미래 시장 점유를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두 경제 거인의 충돌로 인한 파편은 두 나라의 국민에게 튀어 물가 상승과 교역량 감소라는 상처를 남기고 있다.


  미국은 신흥 강자인 중국의 부상을 막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주의 진영의 유대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그간 도광양회의 자세로 물밑에서 조용히 세계 각지에 자본을 투하하여, 다양한 형태의 연결고리를 형성해 왔다는 것을 눈치챈 국가들이 이제 중국을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도를 바탕으로 유사한 방식으로 판을 깔았으며, 심지어 전쟁을 벌이기까지 한 러시아도 많은 국가의 반감을 유발한 상황이다.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과 국방군 창설을 꾀하고 있다. … 그런 흐름 속에서 적 기지 공격론도 나왔을 것이다. 문제는 일본의 안전보장을 생각하면, 자위대가 '적 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하는 자체가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마치 일본의 방위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미국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마고사키 우케루 著 『보수의 공모자들』, 메디치미디어, p.171~172)


  각국 정치는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위험하리만치 교활해지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대규모 난민이 유럽에 유입되어 발생한 문제는 난민에 대한 배척과 타문화에 대한 배타주의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좀처럼 경제가 불황을 타개하지 못하자, 정치인들은 인기가 없을 게 뻔한 경제의 구조적 개혁보다 국민의 분노를 외국에 돌리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곤 했다.


  배타주의, 국수주의는 진영 분리와 탈세계화 기조에 불을 붙였다. 다른 나라에 대한 신뢰도가 뚝 떨어지면서 모든 나라가 주력 산업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부르짖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믿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중국과 러시아를 배제한 공급망 확충에 진력하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화, 개방의 덕을 보며 먹고살았던 국가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직간접으로 미국이 관리하고 미국이 보호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미국이 과거에 구축했고 현재 관리하고 있는 체제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스스로 이를 대체할 체제를 마련할 역량이 부족하다. 현재 미국이 관리하고 보호하는 체제를 제거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경제와 안보를 지킬 방법을 잃어버리게 된다.
(피터 자이한 著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김앤김북스, p.172~173)


  세계 곳곳에서 손을 털고 나올 준비를 하던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를 물렸고, 전장이 되어버린 우크라이나에도 무기를 지원하는 선에서 머무르며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꺼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군이 주둔한 동맹 국가에 공격적인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이제 확실한 대가 없이 '세계 경찰'의 명예직을 유지할 동기를 강하게 느끼지 않고 있다.


  미국과 주요 동맹국이 적성국과 가장 강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 동유럽과 동아시아 해역이다. 미국은 다른 곳에 투입하던 자원을 이제 이 두 지역에 집중하고 있으며, 상대 진영의 압박이 강해진 것을 느낀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도 나날이 격앙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는 극단적 위협을 가하고, 낸시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 선언에 시진핑이 도발적인 경고를 날리는 것에서 또렷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이론적으로 경제 자립이 가능한 국가다. GDP의 70%를 내수가 차지하고 있어 교역이 원천 차단당해도 경제의 붕괴 없이 존속이 가능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 지정학적 위기를 자력으로 돌파할 역량을 가지고 있다. 만약 미국의 수장이 동아시아와 동유럽의 방위는 '수지가 너무 맞지 않는다'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그들은 자국 군인들의 희생을 감수하기보다 안보를 동맹 각국의 몫으로 남기는 선택을 내릴 것이다.


  이전보다 국제 질서 관여에 미국이 소극적으로 나서고, 중국과 러시아가 발톱을 드러낸다면 이전보다 훨씬 각국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세계가 전개될 것이다. 각국은 각자도생을 모색하거나 지역 강국을 새로운 파트너로 삼아야 할 것이며, 그들에 유리한 조건의 협상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균형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탈세계화가 이대로 계속 진행되어 정말 이러한 다극 체제, 반목과 불신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찾아오게 될 것인가?



버블 시기에 벌어진 빈부 격차는 불황기에 힘들어하는 소외 계층의 분노를 일으키기 쉽다. 부자와 빈자가 정부 예산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경기를 맞게 되면 경제적·정치적으로 갈등이 빚어진다. … 오늘날 미국에는 불평등과 포퓰리즘이 떠오르고 있는데, 이는 1930년대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두 시기를 살펴보면 상위 0.1%의 순자산은 하위 90%의 자산을 모두 합친 금액과 거의 같았다.
(레이 달리오 著 『레이 달리오의 금융위기 템플릿(e북)』, 한빛비즈, 챕터 '불황' 중에서)


  이미 세계 경제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발생한 유가와 곡물가의 폭등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체험했다.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집착이 무력 충돌로 비화한다면, 세계 교역량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해역의 혼란은 지금보다 더 큰 충격을 유발할 것이 자명하다. 무역에 타격을 가하는 유혈 사태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는 각국의 살림살이에 언제든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다.


  미루고 미룬 끝에 시작한 통화 긴축과 구조적인 문제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이미 세계 경제를 둔화와 침체의 늪에 빠뜨렸다. 얽히고설킨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난해한 에너지원 전환 문제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한다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연쇄 부진으로 인한 장기 침체를 피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또한 그것이 세계화 시기에 커진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 갈등의 심화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의 원인이 될 개연성이 짙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지난 40년간 유의미한 실질임금 성장을 이루지 못했으며, 이미 커져버린 경제 규모로 인해 이전만큼의 경제성장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의 유의미한 생산성 향상을 이뤄줄 혁신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진영 논리와 각국의 반목으로 인한 효율적인 공급망의 붕괴로, 경제적인 퇴보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정치적 수사, 혹은 근시안적 경제정책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급망이 훼손되어 비용상 비효율적인 독립 공급망을 구축하고, 줄어든 교역량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행위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한다면 정부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지며, 국민이 어려움을 감수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모두가 다른 길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전 세계를 향한 개방성: 이것은 국력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역사에는 자신의 고유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고립주의를 선택한 국가(*괄호 안 문구 생략)들도 있었고, 자연재해나 내란 때문에 쇄국정책을 선택한 국가들도 있었다. 어느 경우든 신기술 습득에 낙오하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사실 제국이나 왕조가 망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고립주의 때문이다.
(레이 달리오 著 『변화하는 세계 질서(e북)』, 한빛비즈, 챕터 '결정 요인' 중에서)


  역사는 고립주의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실패로 귀결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배타주의로 타지의 것을 거부하는 마인드는 배움으로 창출되는 잠재적 가치를 없애버림으로써 성장 가능성을 스스로 깎아내는 것이며, 적당한 선에서 국제적인 마찰을 끊어내지 못한 나라는 장기적으로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각국이 한순간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국민에 부담을 지우는 행위를 반복한다면 그 끝은 공멸일 수밖에 없다.


  탈세계화 기조가 영속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세계를 이어주는 긴밀한 교량을 끊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탈세계화의 세상에서 모든 소비자는 이전보다 비싼 가격표를 받아들여야 하며, 각국의 기업들은 예전에 설계해 놓은 가장 효율적인 유통망을 포기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논리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두 주역이 불만을 가진 구조가 과연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더 효율적인 것, 비용이 더 낮은 것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에
정면충돌하는 기조가 오래 이어지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인류가 역사 시대를 연 뒤 늘 같은 속도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어떤 거대한 역사적 분기점을 지나친 후 이전보다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는 것을 반복한 것이 오늘날 문명의 모습이다. 그 분기점의 중심에는 늘 산업의 비용을 줄여주는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이나 문화적 변혁이 있기 마련이었다. 역사의 흐름을 고려해보아도, 통합과 개방의 혜택과 상충하는 탈세계화가 언젠가 다시 그 반대의 기조로 대체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탈세계화가 '뉴노멀'이 되는 미래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야심에 가득 찬 중국과 패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미국의 대립이 끝날 줄을 모르고 있으며, 자국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각국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댕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세계화를 뉴노멀로 취급하는 세상의 불행을 체험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금세 이전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모여서 다시 한번 세계가 바뀌게 될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은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많다. 청산해야 할 짐은 가계부채, 정부부채, 금융시장의 과도한 레버리지만으로 충분하다. 정치인들이 서로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다툼을 진행할수록,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만 커질 뿐이다. 새로운 판에서 져야 할 짐이 감당하기 어려워질 정도로 커지는 때에 도달한다면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0억 인구를 위해서 그러한 세상은 바뀌어야만 한다.


  비록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려워지고 전망이 어둡더라도 모두가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주 말썽을 일으키지만, 결국 역사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발전적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할 것이니 말이다.

이전 11화 연방준비은행의 미션 임파서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