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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질문을 주고 받다 쓴 글.

퇴고는 AI가 했답니다.

by kolumnlist

나는 요즘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인간은 이렇게 살아왔을까.
왜 우리는 땅을 차지하고, 서로를 죽이며, 신을 만들고, 제도를 세우고, 또 그걸 지켜야만 하는지.

처음엔 땅에 주인이 없었다.
그저 사람이 정착하고, 애 낳고, 조금씩 늘어나고, 그러다 ‘여기 우리 땅’ 하고 말했을 뿐이다.
그 땅엔 샘이 있고, 짐승이 있고, 쓸모 있는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지키기 위해 전사가 생기고,
그걸 설명하고 빌기 위해 신이 생겼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신이라는 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걸 대상화한 게 아닐까?
비가 너무 무섭고, 번개가 너무 크고, 맹수의 이빨이 너무 날카로우니까,
그 힘을 이해하고 싶어서 신으로 만든 거다.
호랑이의 신, 불의 신, 전쟁의 신, 돼지의 신.
그것은 공포를 다루는 방식이자, 생존을 바라는 절박한 언어였다.

그리고 그 신을 관리하는 자가 제사장이 되었고,
그 제사장이 곧 지배자가 되었다.

제사장이 처음부터 지배자가 된 건 아니다.
오히려 제사장은 처음엔 귀찮은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곡식을 모으고, 분배하고, 달력을 보고, 비가 언제 오는지 추측해야 했다.
처음엔 ‘공공을 위한 일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일이 권력이 되었다.
곡식을 관리하면서 권한이 생기고, 신의 뜻을 해석한다며 존경을 받더니,
그 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주며 신성한 것처럼 포장했다.

공공의 것을 사유화한 것이다.
그냥 모두의 것이었던 자원을, 자기 일처럼 바꿔버린 거다.

생각해보면, 옛날 은행의 시작도 똑같다.
사람들 돈 맡아주는 곳이었는데,
슬슬 ‘얘네 돈 다 안 찾아가네’ 눈치 보더니,
그 돈으로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고, 결국 권력이 되었다.

나는 이게 모든 ‘권력 구조’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모두를 위한 자리였는데, 그게 자기 꺼가 되는 순간이 문제다.”

왕도 마찬가지다.
부족이 커지면 누군가는 나서서 조율해야 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게 지도자고, 그게 점점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왕은 “이 권력, 내 아들에게 줄게”라는 말 한마디로 신분 제도를 만들었다.

귀족은 또 어떤가.
처음엔 왕을 보좌하고, 지역을 책임지고, 행정을 맡는 사람들이었다.
근데 자기 땅, 자기 가문, 자기 법을 만들더니,
왕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또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왕은 칼을 들고,
귀족은 제단을 들었고,
백성은 곡괭이를 들었다.

그 구조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여성은 정말 억압받기만 했을까?
아니, 어쩌면 신처럼 집안에서 떠받들어졌던 건 아닐까?
남자는 밖에서 고생하고, 전쟁에 나가고, 목숨 걸고,
여자는 집에서 신성한 존재처럼 보호받은 건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권력이 없다는 말과 같다.
모셔진다는 건, 결정에서 배제된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남자든 여자든,
신이든 왕이든,
문제는 그 자리를 ‘자기 것처럼 굳히는 순간’에 생긴다.

우리는 왜 부족 간에 전쟁을 했을까?
단순하다.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굶어죽지 않으려면,
남의 샘을 빼앗고, 남의 들판을 차지해야 했다.
이건 잔혹함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싸웠고, 죽였고, 정당화했다.
“저쪽이 먼저 그랬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신의 뜻이다.”

나는 30대가 되고 나서야 이 구조를 조금씩 본다.
어릴 땐 도덕책이 말하던 대로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권력은 늘 공공에서 태어나서, 사유화되고, 구조화된다.

그리고 그걸 꿰뚫어보는 순간,
우리는 다시 ‘공공의 의미’를 되찾기 시작할 수 있다.
다시 ‘우리’를 위한 것을 ‘우리’의 손에 두려면.

그 첫 번째 질문은 이거다.

“이 권력, 원래 누구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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