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금융에서 국제개발, 한국에서 덴마크, 실무자에서 연구자로
5년 동안 일해왔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을 때, 나는 금융 분야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나의 첫 직장이었다.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경영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분야 중 하나인 금융 업계에 발을 들였다. 내 커리어는 특출 나게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제법 길을 내어갈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나는 국제개발(international development)이라는 금융과 접점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낯선 영역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앞으로 길이 잘 내어진 커리어 패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한 결정이었다. 사실 원체 계획적인 사람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는 국제개발분야에 업을 둔 지 정확히는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영국에서의 국제개발학 석사를 시작으로, 방콕에서의 국제기구 인턴, 국제개발분야 비영리싱크탱크 연구원, 한국 정부의 국제기구 파견 프로그램을 통한 네팔 카트만두 근무, 국제개발협력 공공기관 등 대략 5번의 퇴사와 6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 5년 차에 접어든 풀타임 박사과정생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1인 사업자 컨설턴트로 간간히 일을 하며 일에 대한 감각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여러 조직에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는 동안 놀랍게도 국제개발분야에도 큰 변화가 생겨났다.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 임팩트 투자, 임팩트 비즈니스 등 금융과 비즈니스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금융과 국제개발, 비즈니스와 NGO 간의 접점이 커지기 시작했다. 오래전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국제개발분야로 넘어올 때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금융과 국제개발 그 두 영역 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아니 그 경계의 모호함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확장될 것이다. 그 변화의 흐름에서 예상치 못한 기회들도 만나게 되었다.
경험이 전무한 영역에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새롭게 무언가를 쌓아야 한다는 마음이 버거웠다. 그러나, 부족함에 대한 갈망,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 그리고 내 업과 내가 추구하는 가치의 결을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매번 낯선 곳으로 이끌었다. 하나의 점을 찍고 그다음 점을 찍기 위해 발을 한 번 더 내디뎌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에는 항상 이 세 가지가 서로 맞물려 있었다.
<경계를 넘나들 수 있도록 나를 이끈 세 가지의 부표들>
1.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채우고자 하는 갈망
2. 더 알고 싶다는 탐구적 호기심
3. 내가 추구하는 목적과 가치에 결을 같이 하는 일
조금 더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이전까지는 경계를 오고 가며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막연한 생각이 내 마음을 더욱 뒤덮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분야의 변화와 내 경험의 축적이 어느 정도 쌓인 지금 시점에서 나만이 가진 역량은 무엇일까? 혹은 이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경계를 넘나들면 나만의 커리어가 생겨난다'. 분명, 나만이 가진 독특한 역량의 자산 혹은 오리지널리티가 있을 거라는 마음이 조금씩 스멀스멀 올라왔다. 또한, 이는 아마도 박사 과정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고 다음 점을 찍어야 하는 시점에서 자연스레 나에게 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일 듯하다.
아직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무엇인지 스스로 충분히 정리되고 정의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첫 번째 목적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그것을 찾는 것일 테고. 두 번째는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내 경험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데 조금의 단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이다. 귀차니즘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사이에서 쓸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이 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부디 너무 진지하지는 않되, 내 생각은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기를. 끝. 아니 시작!
이미지출처: Getty Images (https://www.inc.com/danny-iny/what-science-says-about-going-outside-your-comfort-zon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