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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Jun 25. 2021

기대하지 않고 잘 사는 방법

우리나라는 정이 많은 문화같아. 챙겨주고, 자상하고, 기억해주고, 얘기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차려 주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직장 사람들이 있다면, 그 보다 더 마음과 삶이 풍족해지지 않을 이유도 없겠지. 그래서 받는 사람은 고맙고, 더 잘해주고 싶고, 서로 서로 돕다보면 다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런데 만약에 이런다면 어떨 것 같아?


- 식사 후 계산은 소숫점까지 맞춰 공평히 나누기 

- 가까운 사람과 같이 간 여행비는 여행 후 영수증과 함께 정산하기

- 누가 저녁에 갑자기 초대하면, 너무 갑자기니까 일정이 없어도 가지 않기

- 누가 저녁에 초대해서 아주 푸짐하게 잘 먹었어도, 그건 그거고, 다시 초대해야한다는 생각하지 않기

- 커피나 차로 초대를 받아서 시간이 지나 저녁 때가 지나도 초대한 사람이랑 밥을 같이 먹는 생각은 하지 않기

- 생일에는 내가 직접 내 생일 케이크를 회사나 학교에 가져가서 사람들과 나눠먹기

- 생일에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바에 가면 내가 계산하기

- 생일에 갖고 싶은 게 있으면 20유로 미만 아이템으로 리스트를 작성해서 가족들에게 이메일로 공유하기

- 자식들이나 부모님께 용돈 안 주기

- 결혼식 비용은 자식들이 알아서 하기

- 부모님이 연세가 드셔서 독립 생활하기 힘드시면 요양원 알아봐드리기


네덜란드식 인생관이 들어나는 행동들이야. 이게 나는 처음에 낯설었었어. 우리 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정 떨어지고, 무례하고, 더 나아가 "아니 어쩌면 그렇게 개인적"이지, 이렇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살다보니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마음을 편하게 하는지도 알겠더라. 기대를 덜하니 감정적인 소모도 적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받는 기대도 적고. 예를 들어,


- 정산이나 계산을 나눠서 하니 마음의 빚이 없어. 그리고 내가 더 냈다는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심보가 생기지도 않지.

일상의 규칙과 리듬이 갑작스러운 초대나 사교만큼 중요하면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지.

내 기대에 다른 사람이 부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지.

내가 설령 인기가 없어도 생일날 케잌은 항상 마련되지, 그리고 내가 가져간 케잌으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지.

- 선물 가격이 비싸지 않으니 부담가지 않고, 내가 필요한 것을 받을 수 있으니 합리적이지.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인생관은 일반적으로 서양사회 문화.  


Photo by Laura Thonne on Unsplash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덜 사랑하거나 정이 없는 것은 아니야. 그냥 그 방법이 다른 것 같아. 내가 네덜란드 회사에서 일하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느낀, 마음이 '예쁜' 습관은 이런 거였어.


- 기념일이나 생일에 손수 그 날에 맞는 카드를 골라 사서, 정성스럽게 카드를 적기.

- 꽃다발은 누구나 기쁘게 해. (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부케도 아무리 비싸도 35유로면 사고.)

- 화장실에 주변 지인의 생일이 표시된 달력을 걸어두고 외우는 사람들도 있다네. 기념일을 잘 챙겨줘.

- 가격보다는 의미가 중요한 선물을 하기.

- 사진을 찍고 사진으로 즐거웠던 시간을 공유하기.  

생일 날 받은 카드를 진열해두고 느끼는 행복은 나만 느끼는 건 아니라더라고...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좀 더 소박하고, 정성과 마음이 있는 챙김아닐까? 선물을 하거나 받을 때 가격을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 정 떨어지는 일은 없을 텐데.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정' 문화도 물질주의와 맞물려 변질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없이도 행복하고, 기대하지 않아서 행복하다는 말이 어쩐지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도 어울리는 것 같아. 


외국인 친구들과 이런 저런 네덜란드의 요상한 습관을 이야기 할 때, 꼭 나오는 얘기가 "차 한 잔에 쿠키 한 개"라는 표현이야. 초대받아 가서 차를 마실 때 같이 쿠키가 나왔다면, 딱 하나만 먹어야지, 하나 더 먹으면 욕심쟁이처럼 보인다나. 네덜란드 사람들의 얄짤없고 전무한 대접문화를 꼬집으려면 이 만한 표현도 없지. 사실 이건 믿거나 말거나 인 것 같지만 (적어도 암스테르담같은 도시에서는) 나는 경험하지 않았다고 하면, 내가 벌써 욕심쟁이로 보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 (...)


네덜란드에서 살면서, 카드는 없으면 섭섭하고, 꽃은 그냥 집 분위기를 위해서도 자주 사고, 더치페이는 당연해지고, 내 생일이면 케잌과 리스트를 준비하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내 돈으로 저녁 차려 사람들 모아 파티하거나 대접하는 걸 좋아해. 요리하는 게 좋기도 하고, 우리 집이 풍요로워지는 게 즐겁거든. 하지만 사람을 골라서 하는 게 내 방식이라면 방식이야. 아무리 그래도, 가는 초대가 있는데 오는 초대가 없으면 아쉽더라고.


그래서 너만의 방식을 생각해보되, 네덜란드 사람들이 얄짤없이 느껴지거나, 너무 합리적이라고 느껴진다면. 마음을 열고 그들의 방식에 숨어있는 그들만의 "정"을 느껴보렴. 네덜란드 친구나 인맥을 만드는 것을 떠나, 우리 사회와 마음을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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