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앨 Sep 05. 2021

네덜란드에서 시간은 왜 금일까?

네덜란드에 와서 여러 외국인들이 자주 문화적 차이로 이야기하는 게,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약속을 미리 잡아서 기분 따라 그날 그날 가볍게 만날 수 없다는 거야. 


- 예를 들어, 2년 후 여행 계획이며 비행기 표가 미리 잡혀있고, 같이 커피 한잔하거나 맥주라도 마시려면  최소 2주 전에는 언제 시간이 있는지 물어봐야 해. 

- 같이 저녁을 먹거나 생일파티 같은 것에 초대할 때 너무 늦게 초대하면 무례하게 봐.

- 약속 잡자고 하면 "Agenda kijken..."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을 텐데 "스케줄 보고 있어..."라는 뜻이야. 


나는 이제 너무 적응이 되어서 네덜란드 사람들처럼 미리미리 약속을 잡아 한 달간 주말 계획이 다 채워져 있는 게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돈처럼, 시간도 자원이라는 마음가짐이 있는 것 같아. 이게 개인면이나 사회면에서 보이는데, 간단히 관찰한 걸 적어볼게.


1. 체계적 혹은 효율적인 개인의 시간 관리

- 예를 들어 집에 퇴근 일찍 하려고 일하면서 밥 먹는 습관. 

- 달력에 일정을 적어 더블 부킹 하지 않는 것, 무슨 일이 언제 다가올지 미리 알아두는 것 등.


2. 깔끔한 상호 간 시간 관리

- 앞서 말한 것처럼 미리 계획하는 것. 

- 약속 시간이 6시면 딱 6시에 맞춰 오는 게 예의에 맞아. 

- 직설적인 언어습관도 상대방의 저의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서 낭비가 적지.


3. 기능적인 사회적 시간 관리 

-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덜 관료적이고, 응대하는 사람들도 솔직, 간단하게 대답하는 편이야. 

- 웹사이트들도 기능 위주로 구성되어서 아주 단순해. 

- 인터넷 뱅킹이나 공인인증도 이만큼 간단한 나라는 경험하지 못한 것 같아.


4. 상대를 위한 시간분배 - 이게 가장 흥미로워. 예를 들어 가족이나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가끔 한식 요리에 꽂혀서 레시피 영상을 찾으면 요새는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많은 것 같아. 그러다가 가끔, 호기심에 ‘정통’ 레시피를(혹은 전통) 찾아보면 기겁하게 되지. 예를 들어 ‘기름기 없이 만드는 갈비찜’의 기름 거르는 법을 보고 정말 놀라기까지 했어. 기름 제거만 반나절이더라고. 모든 과정에 손이 많이 가고, 어쩐지 손이 많이 가도록 레시피가 개발된 것 같다는 의구심까지 들어. 누군가를 위해 요리한다는 마음도 예쁘게, 재료를 다듬는 것도 곱게, 모양도 정갈하고 아름답게 하고 싶은 정성에서 나온 걸까? 오래 걸리고 불편하고 주방에서 ‘일해야 하는’ 시간은 길어져도, 거기에 들어가는 노력은 우리 정서에는 의미가 있지. 그 마음이 전달된다고 믿으니까. 

(대추를 돌려 깎고 꽃을 만드는 것, 잣 꼭지를 떼는 것, 도시락 바닥에 상추를 까는 것, 조개를 하나씩 꼼꼼하게 씻는 것, 김치를 한 포기 한 포기 들어 절이는 것, 그런 것?)


그런데 이건 네덜란드에는 없는  정서인 것 같아냉동실에 슈퍼에서 산 빵을 넣어두고 하나씩 아침에 꺼내서 (해동이 미처 안 돼) 반쯤 언 채로 먹는 가족들이 많아. 설거지도 비누칠 한 후에 헹구지 않아. 물도 아끼고 비누 칠을 하면 깨끗하다고 생각해. 할 말 다 했지, 뭐.  


베이킹이나 점심 도시락 정도는 애들이 직접 하기도 해. 사진출처: Unsplash, Annie Spratt

다시 말해, 상대를 위한 시간 분배는 딱 필요한 만큼만. 혹은 음식 같은 것에 있어서는 최악이 아니면 된 달까? 그래서 우리가 쏟아붓는 타인, 무려 가족 구성원의 밥을 위한 무한대의 정성이나 성의는 느끼기 힘들어. 그게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랑은 다른 방식의 정성이나 성의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지. 우선순위가 다르달까.


하지만 우리나라도 '시간은 금'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시간관리는 철저하지? 사실 네덜란드에 비해 다른 면으로 더 철저하다고 봐. 


- 나는 어릴 때 초등학교 때부터 둥근 원을 그려서 시간 계획표를 그려 짜 하루 계획을 하라고 배웠는데. 이런 건 네덜란드에 없다고 하더라고. 

- 그리고 '빨리빨리' 문화는 시간을 아끼려는 마음가짐을 반영하는 거지.

- 많은 사람들이 자투리 시간에 투잡을 뛰거나, 언어 공부를 하거나, 뭔가를 항상 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


그러니 생각하게 되더라. 두 나라에서 모두 시간은 자원인데, 그렇게 시간을 잘 써서 각 나라는 궁극적으로 뭘 하려는 걸까? 


네덜란드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유 시간인 것 같아그냥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남겨두려는 거지. 원하는 책을 읽거나, 가족과 같이 밥을 먹거나, 취미 활동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애들하고 같이 요리하거나, 그냥 …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얻는 것은 마음의 여유 같아.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시간을 관리하는 이유는 '더 성취하기 위해서'인 것 같아. 경쟁이 심한 사회이니, 토플 공부도 해야 하고, 투잡도 뛰어야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하고, 상사 눈 밖에 안 나려면 회사에 늦게까지 붙어있어야 하고. (그래서 얻는 것은 피곤함과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는 마음?)


사실 네덜란드에서도 그렇게 '치열하게' 살면 더 많은 것을 쟁취(?)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세금으로 버는 돈의 반이 나가고, 이자율도 마이너스고, 하다 못해 현금 없이도 집을 살 수 있는데, 뭐 하러?

그냥 남는 시간, 인생을 즐기는 거 아닐까. 

이전 02화 더치니까 더치페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