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소는 과거를 지우고, 무산소는 미래를 그리게 한다.

러닝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한 것들.

by 양양이

요즘 유튜브에 푹 빠져있는데, 제일 많이 보는 유튜버는 구독자 300만 명을 앞두고 있는 침착맨이다. 침착맨은 정말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아주 가벼운 주제들로 늘 떠드는 유튜버인데 이상하게도 그게 그렇게 재밌다. 쓸데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거나, 밥 먹을 때 무심코 틀어놓기 좋은데 거기에 궤도라는 과학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자주 나온다. 스스로 과학커뮤티케이터 라고 하면서 아주 사소한 일상의 모든 것을 과학으로 풀어 설명해 준다. 과학과 우주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가 아무리 길게 이야기를 해도 참 재밌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침착맨과 궤도가 같이 나오는 방송은 두배로 더 재밌게 느껴졌다.


하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고, 어떤 편에서 말했는지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콱 박힌 말이 있었는데, 유산소라는 운동은 과거를 지워주고, 무산소는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이며, 어떤 호르몬 물질(세로토닌이었던 것 같다)이 몸에서 분비되면서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래서 러닝을 할 때 과거의 슬픈 일과 스트레스받는 일들을 잊게 만들어 주어서 러닝을 하기 전에 힘들었던 생각들이 러닝 후에는 말끔히 해소되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리고 무산소를 할 때도 어떤 물질(도파민이나 아드레날린 같은)이 분비되면서 근육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집중하게 되고, 미래의 근육이 붙은 나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도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했을 때, 삶이 힘들어 잡생각으로 가득 찼을 때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뛰곤 했었는데, 뛰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종종 한 번씩 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산소는 즐기지 않지만 온전히 그 순간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고 운동이 다 끝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면서 이를 악 물고 하게 되지 않는가!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러닝을 하러 종종 공원에 나갈 때마다 러닝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러닝을 한다기보다 거의 산책에 가까운 속도로 공원에서 걸어 다니곤 했는데, 러닝 열풍이 분 탓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서 지나간다. 그때마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문득 이 사람은 어떤 과거를 지우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뛰고 있을까. 단순히 오늘 하루 일터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과거 어떤 깊은 트라우마에서 극복하기를 원할지도 모르며, 이별과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제 나의 힘들었던 일들을 지우며, 내일의 새로운 나로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체력이 필요해서 시작한 운동이겠지만, 저마다 달리며 많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10km 마라톤을 나가기 시작했던 것은 7,8년 전 예전 남자친구와 이별을 하고 나서였다. 위에 언급 한 것처럼 그를 잊기 위해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밖에 나가 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하루 이틀 쌓이면서 10km 정도 마라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실력이 늘어있었다. 처음은 어려웠지만 완주를 목표로 꾸준히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었다. 그때는 마라톤이 유행이기도 했고, 나이키나 뉴발란스에서 주최하는 마라톤은 젊은이의 도전적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첫 10km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서 정말 까맣게 그 남자친구를 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활력을 얻어서 그 이후로도 종종 마라톤을 나가곤 했었다. 마지막 결승지점에 다다랗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신 안 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이내 또 새로운 마라톤을 신청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나는 다시 달리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날씨는 서서히 가을로 돌아섰고,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조금은 지나가고, 다시 달려 볼만한 정신적, 신체적인 체력이 회복되었다고 느낀다. 아침에 한 시간 정도만 더 일찍 일어나서, 아니면 저녁에 해가지고 나서 한 번씩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들었던 과거를 지우며 앞으로의 미래로 한걸음 더 내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다 달리고 난 뒤 결승점에서 내가 어떤 생각에 닿아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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