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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Mar 13. 2024

기록은 깨라고 있는 것

2학년 8과. 1학년 말에 배운 한자를 빠르게 복습하고 "우리말 속담을 아는 대로 말해 보세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여러 학생이 선배들 기록 훌쩍 넘어 52개를 말했습니다.

"2019년 이후 5년만에 기록 깼습니다. 축하합니다. 박수!!!"


다음 반. 이번에는 속담부터 먼저 물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이런 진심! 몇몇 학생이 국어교과서까지 찾아보며 100개를 맞췄습니다. 평소에 조용하던 학생이 속담 많이 알아 "ㅇㅇ이 잘한다" 속담 장인으로 두둥!

"ㅇㅇ샘(담임선생님)께 자랑해 주세요."

"네~"

교실 칠판 오른쪽에 '賞(상 상)' 쓴 트로피를 그렸습니다.


다음날 1교시. 학생들이 115개 맞춰 어제 7교시 기록이 하루만에 깨졌습니다. 그 다음 반 83개, 그 다음 반 140개! 장난기 많던 ㅇㅇ이가 국어책 부록까지 찾아 가며 집중해 놀랐고, ㅇㅇ이 "배가 많으면 사공이 산으로 간다(원판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에 저도 아이들도 깔깔깔.


100개 넘어가니 슬슬 피곤해 보이지만 "다섯 셀 동안 안 하면 넘어갑니다. 5, 4, 3, 2"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우리 130 가 보자"

138까지 가니 "우리 2개만 더 하자"

드디어 140개. "선생님, 우리 1등 맞아요?"

"응!"

칠판에 트로피 그리니 "선생님, <파묘> 같아요."

"누가 그려 볼래요?"

ㅇㅇ이가 칠판에 실사판 트로피를 그립니다. 받침대에 '140'을 썼습니다.


그 다음 반 가니 "선생님, 우리는 속담 안 해요?"

"하죠. 아는 대로 말해 보세요."

처음엔 쭈빗쭈빗하던 학생들이 점차 달아올라 2학년 2학기 국어책까지 찾아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ㅇㅇ 잘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그건 서양 속담이고. 우리말 속담만 해 주세요."

"100개만 하자" "140개 넘자" 하다 151... 152... "더 하자" 155개!

"저희 1등이에요?"

"네~"


다음다음날 실사판 트로피 그린 반에 갔습니다.

"어? 트로피가 없네요?"

"기록이 깨졌잖아요."

"(속담) 1등한 반 몇 개예요?"

"155개."

"어느 반이에요?"

"비밀!"


"사실 뒤에 한 반이 더 유리한 면도 있어요. 앞 반에서 많이 했기 때문에 이만큼 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죠. 여러분 반이 140개 했기 때문에 뒷반에서 155개 할 수 있었어요. 우리말 속담 수업하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집단 지성의 힘, 숨은 속담 장인, 여러분이 힘을 합쳐 "우와~" 하면서 다같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는 걸 보니 참 반갑고 좋았습니다."

칠판에 그린 트로피 중 그나마 괜찮은 그림입니다. 학생들이 "원숭이 귀예요?" "컵이에요?" 하면서도 은근히 즐거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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