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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Mar 27. 2024

뽑기의 미학

새로 나온 한문 부교재 나누어 주면서 묻습니다.
"다음 시간에 안 가져오면 뽑기 한다? 안 한다?"
다같이 "뽑기요!"
복도에서, 급식실에서 장난치다 걸린 학생에게 "교무실로 와. 뽑기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와~~~~~"
어떤 날은 아이들이 먼저 묻습니다.
"샘, 누구누구 비속어 썼어요. 뽑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작년 이맘때 『평생 써먹는 놀이수업 280』 읽다 '사춘기를 위한 벌칙 아이디어'(189~196쪽)에 눈이 번쩍! 책에서 본 수업 벌칙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할 만한 활동 붙여 한문 수업 뽑기를 만들었습니다. 가로 5칸 세로 7칸 35칸 표에 벌칙 쓰고 작게 잘라 2번 접어서 종이가방에 넣어 "책 안 가져오면 바로 뽑기, 떠들거나 비속어 쓰면 1차 주의, 2차 뽑기, 3차 교무실 상담입니다." 처음에 '뭐야뭐야' 눈빛이던 학생들이 몇 번 보니 "샘~ 오늘 ㅇㅇ이 책 안 가져왔어요!"

뽑기할 일 늘면서 반응 좋은 건 계속 가고 1학기 수업평가 때 학생들 아이디어 받아 2학기에 '시즌 2'를 만들었습니다. '교가 부르기' 걸린 학생이 "가사 몰라요." "여기 악보! 음원도 있어." '신진 샹송가수의 신춘 샹송쇼 5번 읽기' 같은 잰말놀이*는 앉은 학생들이 깔깔깔 킥킥킥. '칠판에 학교 이름 한자로 5번 쓰기' 걸린 학생이 Ctrl + C*, Ctrl + V* 5번 쓴 날 "다시 써!" 웃음 참기 왜 그리 어렵던지요. '포스트잇 얼굴에 붙이고 손 안 대고 떼기' 걸린 학생이 머리, 몸 흔들어도 안 떨어져 공기청정기 바람까지 동원해서 18분만에 뗀 건 2학기 내내 전설(?)이 되었습니다.

"자리 바꾸지 않기. 무조건 걸리고 심하면 뽑기까지 할 수도 있다."
"비속어 쓰지 마라. 비속어 썼으면 최대한 빨리 바꿔라. 안 바꾸면 뽑기한다."
"수업 전에 꼭! 학습지 준비하고 수업 시간에 자거나 떠들지 않기! (뽑기하기 때문ㅎㅎ)"
부교재 나눠 주 한문수업 설명서 다시 보니 '뽑기' 두 글자가 참 많습니다. 뽑기할 일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1년 동안 뽑기하면서 아슬아슬한 순간을 기분좋게 받아 준 학생들 덕분에 수업이 더 밝아졌습니다. (모두 고마워!)

* 잰말놀이 : 빠른 말 놀이. 발음하기 어려운 문장을 빠르게 읽는 놀이입니다.
* Ctrl + C : 한글 프로그램에서 '복사' 단축키입니다.
* Ctrl + V : 한글 프로그램에서 '붙여넣기' 단축키입니다.

뽑기 가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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