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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Apr 04. 2024

욕설 예방 수업

2학년 8과 "來言不美(내언불미)어늘 去言何美(거언하미)리오?"로 한문 속담 활용 논술 수행평가를 보았습니다. 속담의 음과 풀이를 쓰고 속담에 대한 경험과 관점을 논술하게 했는데, 학생들 답안 읽으니 오는 말과 가는 말 다 좋았던 경험이 10%, 그렇지 않았던 경험이 90% 정도 나왔습니다. 수행평가 점수 확인하는 날 학생들이 많이 쓴 내용을 요약해서 말하고 채점하면서 느낀 점도 덧붙였습니다. 친구와 비속어나 언짢은 말 때문에 싸웠다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 좋은 말이라도 말투가 안 좋으면 듣기 불편하다는 것.


학기 초에 찾아 놓은 욕설 예방 교육 영상을 같이 보았습니다.

"오늘은 저보다 설명 더 잘하시는 선생님을 모셔 왔습니다. 여기 학생들 몇 학년 정도 되어 보여요?"

"초등학교 5학년요" "4학년요"

"정답! 왜 초등학교 4학년 수업 영상을 가져왔을까요?"

ㅇㅇ이가 "우리가 잼ㅇㅇ(초등학생을 비하하는 단어)여서요."

"그건 아니고, 수업 전에 여러 영상 찾아봤는데 이 영상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제일 잘 나와 있었어요."

영상 초반 초등학생 욕설 부분(단어는 '삐~'로 처리)에 "국어시간에도 봤어요!"

"나머지 부분도 봤어요?" "거기만요."


영상 중반 욕설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 영화 관련 질문에 잠시 화면을 멈추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오징어 게임> 본 사람?"

서로서로 눈치 주며 큭큭큭.

"지난 겨울방학에 <더 글로리> 본 사람?"

몇몇이 특정 학생 보면서 "에이~~~"

"<오징어 게임>과 <더 글로리>의 공통점은?"

"청불(청소년 관람불가)이요."

"맞아요. 둘 다 욕이 많이 나오죠. 가족들이랑 같이 봤을 수도 있겠지만, 계속 욕을 듣다 보면 욕에 익숙해져요."


영상 후반 "근데 혹시라도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저는요, 친구랑 진짜 친한 친군데요. 저는 그 친구가 욕하는 건 정말 괜찮고요, 저도 그 친구한테 욕했을 때도 괜찮았대요."에 잠시 멈추고 "여기에 동의하시나요?"

여러 학생이 "네~"

"물론 친할 때는 별 문제 없을 수도 있죠. 어떤 친구들은 애정표현 차원에서 가벼운 욕설을 하니까요. 하지만 어떤 일로 싸우거나 수틀려 멀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전에 다른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말싸움하다 주먹을 휘둘렀는데 눈을 맞은 일이 있었어요. 그렇게 크게 다치면 예전에 했던 욕, 비속어, 그밖의 말들이 한꺼번에 소환됩니다."

기대 이상으로 진지하게 영상 보던 학생들 눈빛을 오래 담았습니다.


"이번에는 비속어를 고운 말로 바꿔 봅시다. 고운 말 기준은 3층 교무실에서 해도 혼나지 않을 수준입니다. 예를 들면 ㄲㅈ는 '저리 가', ㅈㄴ는 '매우'로 바꾸시면 됩니다. 비속어/욕설/혐오표현은 초성만 쓰세요."

"ㄴㄱㅁ(패드립 : 남의 부모님 욕)는요?"

"부모님 소환하는 욕은 아예 안 하는게 좋죠. 점 찍으세요."

"ㄴㄱ(흑인 비하하는 표현)는요?"

"흑인 정도로 쓰면 되겠지요. 자세히 보면 비속어나 욕설, 혐오표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표현이 많습니다. 사람 뒤에 '~~충' 붙이는 것도 그렇고요. 여러분에게 ㄱㅅ충이라고 하면 기분 나쁘잖아요."

학생들 답 보니 ㄷㅊ는 '그만해', ㅈㄹ은 '이상한 짓', ㅆㅂ은 '이런' '싫어'. ㅇㅇ가 ㄲㅈ를 '황야로 떠나라'고 써서 순간 뿜!


쉬는 시간에 몇몇 학생 말.

"거봐. 진작에 욕하지 말아야지."

"나 욕 안 해."

"먼저 욕하면 젤리 사."

"욕하면 한 대 맞는 거 어때?"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 수업 때 활용한 영상입니다. '고쌤의 수업스케치'에서 가져왔고 11분 분량입니다.

학생들에게는 0:35부터 보여 주고 영상 보면서 느낀 점을 학습지에 쓰게 했습니다.

https://youtu.be/bIPl6ShC7cU?si=_Qyp8LpWsWBO-hz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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