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평생 실험실 산 침팬지,
28년 만에 본 하늘
© freegraphictoday, 출처 Unsplash
어느 날, 휴대폰을 만지다가 우연히 보게 된 인터넷 기사 제목이다. 대체 이게 무슨 얘긴가 하여 호기심에 링크를 클릭하여 들어가니 기막힌 사연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용인 즉, '바닐라'라는 이름을 가진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침팬지 '바닐라'는 자그마치 28년간을 실험실 우리 안에서 살았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을 기간이다. 이른 경우에는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바닐라는 태어난 직후 엄마와 분리돼 뉴욕의 영장류 실험 연구소의 좁은 철장에서 지내다가 28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미국 동물단체를 통해 구조된 것이다.
02.
신문기사에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바닐라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바닐라가 실험실을 나온 것도, 하늘을 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바닐라는 28년 만에 '하늘'이라는 존재를 최초로 인식한 것이다. 그 순간에 포착된 바닐라의 표정이 마치 감격스러워하는 듯했기에 이 영상은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철장이 좁다.'
과연 바닐라는 그렇게 느낀 적이 있었을까? 다소 뜬금없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추측건대 아마 그런 욕구조차 없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 chesterfordhouse, 출처 Unsplash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모르긴 해도 바닐라에게는 그랬을 것이다.
03.
나도 그랬다.
월급쟁이, 회사원
먹고살기 위한 방법은 세상에 그것밖에 없는 줄 알았다. 부모님과 같은 회사원이 되거나, 혹은 부모님이 당신들처럼 살진 말라며 꼭 되라고 하신 회사원이 되거나. 모로 가도 '회사원'만 되면 되는 것이다.
말끔한 재킷과 바지, 와이셔츠를 입고 서류들이 올려진 책상 앞에 앉아 펜과 키보드를 다루는 사람 말이다. 추울 때 따뜻하고, 더울 때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 야근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있지만 그조차 자부심으로 승화시키는 사람, 지칠 땐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에 시름을 씻어보기도 하는.
그것이 내가 어릴 적부터 상상해 왔던 회사원이었고, 내가 가야 할 단 하나의 미래였다. 부모님 또한 내가 그런 어엿한 직장인이 되길 바라셨었다. 부모님이 바라는 직장인이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되었다.
04.
입사 후 16년 간 그 '회사원'이라는 것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잠시 멈춰 서서 회사로부터 한 발 물러나 보려 한다.
© imclyde, 출처 Unsplash
'그러고 나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어떨까?'
물론 나는 침팬지 바닐라보다는 사정이 훨씬 괜찮다. 태어나자마자 평생을 실험실에 갇혀 살았던 적도 없고, 그렇기에 하늘이 뭔 지조차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자유의 몸으로 하늘을 봤을 때에는 어떤 느낌일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부서에서는 조금 더 편한 자리로 보내주겠다는 제안도 있었고, 어떤 동료는 이 참에 업무부담이 적은 부서로 이동신청을 해보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었다. 여러가지 리스크를 감수하고 휴직을 낼 바에 속칭 '땡보직'으로 가라는 것이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잠시 해보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인생이
너무 뻔해지잖아.
업무가 바뀌고, 부서가 바뀐다 한들 나아지는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짓을 하든 회사 안에서는 내 미래가 너무도 뚜렷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박스권*에 갇힌 인생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건 간에 내 머릿속엔 1년 뒤, 5년 뒤의 오늘 내가 뭘 하고 있을지도 그려졌다. 만약 월요일이라면 출근하자마자 있을 주간회의 브리핑 자료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건 아마 5년 뒤든, 10년 뒤든 마찬가지겠지.
* 박스권 : 주가가 일정한 폭에서만 등락을 거듭할 때 이를 가리켜 박스권이라 한다. (출처 : 두산백과)
05.
영상 속에서 28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바닐라는 풀려난 곳에 있던 동료 침팬지와 포옹을 했다. 그러고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이내 잔디밭을 향해 뛰어 나갔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가 자기 삶의 터전이었다는 듯이 말이다.
만약 휴직을 낸다면 앞으로의 내 삶은 어떻게 될까?
바닐라처럼 여기가 원래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며 새로운 세계를 향에 뛰어나갈까, 아니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그래도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가 좋았다며 돌아오게 될까?
그에 대한 답은 현재 알 수 없음. 즉, '미지(未知)'이다.
통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잠시나마 그런 미지의 세계에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었다. 박스권에 갇힌 것이 아닌 상방(위쪽)이 열린 세계 말이다. 그것이 내가 고민 끝에 땡보직을 마다하고 휴직을 선택한 이유였다.
28년 만에 처음 하늘을 본 바닐라 / 출처 : 세이브 더 침팬지(Save the Chim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