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툰 Jan 02. 2024

안녕하지 못하지만 복직합니다.

  01.


  어느덧 복직일이다.


  이 시간이 다가오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래서 가을이 짧은 것이 싫었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아서. 스타벅스에서 이른 시기에 캐럴을 트는 것도 싫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곧 복직이었기 때문이다. 



© lalu_varghese, 출처 Unsplash



그래도 나보다 
더 아쉬운 사람은 없을 걸?

  2023년 한 해가 가는 게 아쉽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마 정말 그렇지 않았을까?


  그렇게 어린아이가 주사실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마음과 같이 한껏 버티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 앞에서 장사가 있나? 별 수 없이 떠밀려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02.


  재출근(!)을 며칠 앞둔 나는 가슴이 뛰었다. 



© kpzhnv, 출처 Unsplash


  처음 입사를 했던 때와는 또 다른 심정으로 말이다. 신입사원일 때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것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었다.


  하지만 10여 년을 다니던 회사를 번아웃으로 휴직한 뒤에 복직하는 입장은 많이 달랐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불안감이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으로 <가슴이 뛰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심장은 정말 시시때때로 덜컹거렸다.



  이번엔 잘할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최근 들어서 꿨던 악몽들을 미루어 짐작해 봐도 그게 맞는 것 같다. 


  '또다시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올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그런 걱정이 가장 컸다. 10년 넘게 잘해오고도 한 번 삐끗한 것이 큰 상처로 남은 것이다. 축구 경기라고 하면 이제 막 전반전이 끝났을 뿐인데 말이다.




  03.


  - 약을 먹어가면서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에 서글퍼져요.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심리상담사에게 토로했던 말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척척 그럴 듯한 답을 내놓던 상담사도 여기에 대해서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딱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볼 뿐.


  - 그래도 해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당연한 말을 주고받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현실이었다.


  - 준비가 다 됐을 때 복직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원한다면 휴직을 연장하는 건 어때요?


  복직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진단서를 써줄 수 있으니 출근을 미루는 것도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볼까...?'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내게 의사의 말은 달콤하게 들렸다.


  


  04.


  그러나 고민 끝에 나는 복직하는 것을 선택했다. 


  분명히 회사의 압력이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디데이(!)가 다가오자 하루가 멀다 하고 내 계획에 변동이 없는지 체크했기 때문이다.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다며 굳이 문자가 아닌 전화를 해서 '안녕하세요. 일정대로 복직하시는 거 맞죠?'라고 물어보고, 조사해야 할 내용이 있다며 연락해 놓고 '잘 지내지? 이제 34일 남았네?' 라며 확인했다. 


  그 탓에 내 고민은 더 복잡해졌다. 


  내가 휴직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순전히 내 의지인지, 회사의 의지인지를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05. 


  넘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봐야 일어서기만 더 힘들어진다.


  결정적으로 내가 휴직 연장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었다. 막말로 복직을 미루고 싶다면 눈 딱 감고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면 그만일 일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숨 고르는 기간은 어느 정도 가졌으니 이제 실전에 들어가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완벽한 준비라는 것은 없는 거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도 있었다.



  까짓 거,
또 넘어지면 어때?

  그래, 또 넘어지면 어떤가. 아직 경기시간은 한참 더 남아있고, 나는 일어설 준비를 하면 그만인데 말이다.


  

© john_tuesday, 출처 Unsplash



  '안녕하세요. 다음 주부터 출근하시는 거 맞죠?'


  복직을 약 일주일 앞뒀을 때 사무실 총무로부터 또 문자가 왔다.



  아니요,
안녕하지 못하지만 복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