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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Mar 12. 2024

복직 스트레스의 무게는 5kg

  01.


  반년이 채 안 되는 휴직기간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 말이 딱 맞았다.



© drewcoffman, 출처 Unsplash


  더 쉬다 오지
왜 벌써 들어왔어?
남자가 휴직 내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다시 돌아온 나를 보고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누군들 이렇게 빨리 들어오고 싶었겠나. 휴직을 더 연장하자니 아무래도 사무실 눈치가 보였다.


  <상담사 말대로 오로지 내 입장만 생각하고 결정해야지. 그게 나를 사랑하는 길이니까.>


  그렇게 수 차례 다짐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게 하루아침에 될 만큼 쉬운 일이었다면 애초에 왜 휴직까지 나갔겠는가. 그러나 휴직 연장을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휴직 초창기의 의욕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지부진한 하루하루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출근해서 돈이나 벌자.




  02.


  나는 복직을 하자마자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났다.


  뜻하지 않은 이동이라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낯선 환경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을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 anakin1814, 출처 Unsplash


  그래도 나를 <번아웃>이라는 구렁텅이에 빠뜨린 부서에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은 출근한 지 약 3일 만에 깨달을 수 있었다.




  03.


  십 수년의 커리어가 리셋된 기분이었다.


  업무도 새로웠던 데다가 전임자가 급히 퇴직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인수인계서라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 미안해요. 내가 제대로 해놓은 게 없어서...


  전임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A4지 3장으로 된 인수인계서를 내밀었고, 그걸 받아 든 나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에게 뭔가를 바라선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gary_at_unsplash, 출처 Unsplash

  인수인계서랍시고 굳이 프린트한 종이가 아까운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난도 높은 일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 서툰 과장, 급한 보고니까 내일까지 초안 작성해서 가져오도록 하세요.


  부서장의 지시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내가 이제 막 업무 파악 중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그는 눈 코 뜰 새 없이 움직이는 내 모습에는 아랑곳 없이 나와 눈만 마주치면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느라 바빴다.




  04.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다른 부서원들이 기피하여 붕 뜬 업무들이 모두 내 몫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어느 정도의 궂은일을 떠맡게 될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었다. 새로운 부서로 발령 나면 의례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정도가 심했다. 부서원들조차 <이건 아닌 것 같다>라고 하는 일조차 부서장이 직접 내게 지시를 하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으니 말이다.


© dylandgillis, 출처 Unsplash


  - 정해진 업무라는 건 없어요. 서툰 과장은 우리 부서 업무 총괄 담당이라고 생각하세요. 과장이니까 당연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죠?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하자 돌아온 부서장의 대답이었다.




  05.


  과장님,
과장님은 담당 업무가 뭐예요...?


  하루는 옆자리에 있던 대리가 그렇게 물어왔다.


  -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말 그랬다. 어느 날은 이 쪽 파트 일로 회의에 참석하고, 어느 날은 저 쪽 파트 일로 출장을 가느라 바빴다.


  내일은 부서장이 또
무슨 일을 시킬까?

  불안해서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불면의 밤을 채우는 것은 다름 아닌 <음식>이었다.




  06.


  그렇다. 나의 불안감은 곧 저녁의 폭식으로 이어졌다.


© labunsky, 출처 Unsplash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술은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날부턴가 평소 잘 입던 바지를 입기가 불편해졌다. 그래서 간만에 몸무게를 재봤더니 맙소사. 복직한 직후보다 5kg이 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아마도 시나브로 몸이 불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작년엔 눈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쌓여서 번아웃이 왔다면?


  이번엔 확연히 체감되는 것이었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의 무게와 질감이 이토록 현실적으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이 <스트레스의 무게>를 줄여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지금 시각은 밤 9시 30분.


  그래, 잘 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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