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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지옥이
천국으로 바뀌어 있습니까?
그때 나는 답답한 마음에 아버지께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사춘기 소년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그것은 울분이기도 했고, 서러움이기도 했다.
작년 여름, 휴직을 하고 처음 부모님을 뵈러 간 자리에서 그간의 사정과 심경을 털어놓았었다.
당시 부모님은 나에 대한 걱정보다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치기 어린 대학교 2학년 때, 학사 경고를 받아온 이후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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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섣부른 마음에 <퇴직>까지 운운했던 사실 말이다. <솔직히 퇴직까지도 고민했으며, 가능하다면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고백해 버린 것이다.
그래, 허심탄회도 적당히 했어야 했다.
조금 쉬다 보면 나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할만해질 거다.
다들 그렇게 살아.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애써 웃음을 지으셨다. 나의 휴직이란 별 것 아닌 이벤트일 뿐이라 믿고 싶으셨던 걸까? 시한부 이벤트가 끝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은 회복될 것이라고 말이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하지만 그만큼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라는 거, 잘 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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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개월 만의 복직이었다.
나는 출근하기 며칠 전부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들더라도 새벽에 꼭 1~2번은 눈을 뜨게 되었다. 출근 전날에는 불면이 최고조에 달했다. 기억으로는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잠들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긴장했던 걸까?
오랜만의 출근길은 놀랍게도 휴직 전과 똑같이 닮아 있었다. 전날 잠을 설친 게 무색할 만큼.
차를 몰고 집을 나서면 라디오에서는 오늘의 뉴스 브리핑을 시작했다. 근처 초등학교를 지날 때쯤 뉴스가 끝나고, 청취자와의 전화 연결 코너가 시작됐다. 청취자의 노래자랑 코너는 언제 들어도 민망하다. 그래서 잠시 다른 채널로 돌리면 인근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앞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리는 것이다.
그래,
그때도 그랬었지.
6개월 전에도 거의 똑같은 루틴이었다. 어쩌면 신호에 걸리는 타이밍까지 똑같을까. 소름 끼치는 익숙함. 웬일인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다시 출근길에 대한 거부감이 몰려왔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크게 한숨을 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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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모든 게 여전했다. 세상도, 나도.
또한 그렇기 때문에 휴직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비록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도망가는 것이지만, 그런다고 뭐가 나아질까? 의외인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할 만하더라는 것이다.
단순히 쉬었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변했기 때문에?
모르겠다. 마냥 회사와 거리를 두고 시간만 보냈다고 해서 이렇진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말씀이 영 틀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깐 쉬고 나면 또 할 만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