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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Oct 05. 2024

숨 참고 또 출근해 보는 거지, 뭐

  ***

  무엇이 부서장을 미치게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승진>이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승진에 대한 희망고문>이다. 이미 한 두 번쯤 물 먹은 부서장은 독기가 바짝 올라있다. 그래, 그냥 미쳐있다고 봐야 한다. 여태껏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아, 딱 한 번 있구나.


  그런데 그 사람은 애초에 출세에 큰 뜻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직장생활 참 행복했었지. 하지만 그런 행운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

  부서장이 미쳐있는 부서의 골치 아픈 점이 하나 더 있다. 중간관리자는 더 미쳐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거의 그렇다고 봐야 한다.


  눈치챘겠지만 지금 내가 발령받은 부서가 딱 그런 이다. 그럼에도 금요일에는 잠시 짬이 나서 휴가를 냈다. 아내도 함께.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모처럼 교외로 드라이브를 갔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어찌나 시원한 지. 시골음식을 내어주는 식당에 가서 속을 편하게 해주는 비지찌개와 파전으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그런 다음에는 근처 카페에 가서 절벽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들으며 책도 읽었다.


  참 좋더라.




  ***

  그렇지만 불과 몇 시간 전, 그날 벽까지의 내 마음상태는 확연히 달랐다.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무슨 꿈이었냐고?



회사일.



  

  회사원이 잠을 설쳤다면 뻔하지, 뭐.


  한 번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하는 편이고, 미래에 생길지도 모를 일에 대한 걱정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제 퇴근 직전, 휴가보고를 할 때 팀장은 왜 떨떠름한 표정으로 <잘 다녀오라>고 했을까?그 말과 표정 중 어떤 게 그의 진심이었을까? 휴가를 미뤘어야 했나?


  아니, 아니지. 내가 왜? 해달라는 거 다 해줬잖아. 막판에 부서장이 결재 반려 놓은 게 내 잘못인가?자기가 방향을 잘못 잡은 탓이지. 그래도 괘씸죄가 제일 무서운 죄라고 했는데 눈치 좀 봤어야 했나?


  런 저런 고민들. 사람이 왜 이 모양인지 원.




  ***

  그건 그렇고 곧 하교할 딸아이를 픽업해야 했다. 카페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던 아내와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과 함께 떡볶이와 라면을 나눠먹고 나니까 졸음이 몰려왔다.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벌써 저녁 6시가 넘었더라. 잠이 덜 깬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에세이 책을 읽으며,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었다.



  이런 게 행복 아닐까?



  감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생각났다. 어렵사리 떨쳐낸 회사일 말이다.





  ***

  그런데 신기하지?


  내 마음의 자세를 달리하니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상황이 변한 건 없는데, 내가 요렇게 보니 요렇게 보이고, 저렇게 보니 저렇게 보이는 것이다.


  오늘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쉽지 않았다.



  <내 마음을 요래요래 하니까 좀 낫더라>는 말을 하고는 있지만, 그게 또 얼마나 대단한 효과가 있었겠나.


  그럼에도 괴로운 와중에 문득문득 행복다.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신도 가능한 한 행복한 하루였길 바라본다. 힘든 하루였더라도 시시때때로 좋은 순간이 있었길. 그런 간헐적 행복이 우리를 시나마 숨 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다음엔?


  숨 참고 또 출근해 보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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