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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Oct 12. 2024

세상은 넓고 참신한 빌런은 많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무서운 말

  ***

내가 잘릴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쟤도 잘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언젠가 TV에 출연한 어느 신입 공무원이 자기 직장의 장단점에 대해 한 말이다. 는 자신이 처한 웃픈 현실을 입 밖으로 꺼내 놓고 쓰게 웃었다.


  살다 보면 단 하루도 함께 있기 싫은 부류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한 사무실에서, 그것도 직속 상사로 모시며 근무해야 한다면?


  여기에 조금 더 리얼한 옵션을 추가해 볼까?


  '인간'언제 다른 곳으로 떠날지는 아무도 몰라. 조건이 있다면 그가 승진을 하거나, 이동신청을 하는 것.


  제는 보통 그런 인간들은 태생적인 무능력자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 그리하여 승진은 꿈도 꿀 수 없는 데다가(내가 그 꼴을 보고 싶지도 않고) 이 부서 업무가 자기랑 너무 잘 맞는대.



  어휴.



  안 그래도 깜깜한 내 앞날에 먹물이 한 바가지 더 끼얹어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거기에 흙탕물을 곁들인.





  ***


   그 공무원이 지금 하는 내 얘길 듣는다면 조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사이동이 자유로운 회사에도 웃픈 격언이 있다는 .


  그것은 바로,



  구관이 명관이다.



    우리 회사는 인사이동이 경직되어 있지는 않은 편이다. 따라서 보통의 공직 사회처럼 소위 '고인 물'이 썩을 지경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로 인해 생기는 뜻하지 않은 장점이 있는데, 바로 윗사람이 피곤하게 굴어도 실낱 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버텨보자. 이번에 바뀔 수도 있대."



  실제로 진상 상사가 바뀌든 바뀌지 않든 런 희망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곤 한다.


  올해가 아니면 내년에라도 떠나겠지. 아니면 말고.


  ...가 아니라 아니면 안 되는데.





  ***


  런데 요즘 들어 안타까운 점이 있다. 그러한 장점마저 점퇴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 인간만 보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수년을 버텼건만 새로운 부서장을 맞이하고 깨닫는 것은?



  세상은 넓고
참신한 빌런은 많구나.



  렇잖아도 장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회사인데 어쩌자고 이렇게 자꾸만 각박해지는 것인지, 원.


  러고 보면 날엔 정말 살기가 좋았던 걸까? 째서 그렇게 모자란 인간들이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능력이 없으면 부하직원 등골을 빼먹고, 능력이 있으면 있는 대로 부하직원 등골이 휜다. 그것이 바로 '나의 능력'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고.



  '뭐, 이런 게 다 있지?'



  나는 지금도 그런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부서장을 모시고 있다. 덕분에 주 6, 7일 근무를 3달째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어쩌면 지금 이 망나니 같은 인간을 두고도 나중에 '구관이 명관이었어' 따위의 소릴 지껄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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