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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Jul 02. 2021

문화재단 취업 뿌시기

어떻게 들어왔더라...

작은 월급, 공무원도 사기업인도 아닌 문화재단에 오게 된 이유는 앞서 썼던 글을 통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오늘은 내가 재단에 오기 전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어떻게 문화재단을 입사했는지... 

그 간의 스펙과 경력을 되짚어보려고 한다.


문화재단을 고민하고 있고,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지났고, 개인의 경험이기에 감안하고 봐주기를 바란다.




경험 1. 도립 예술단 _ 산학 인턴 6개월

나의 직장 생활 첫 경험은 학교에서 연계한 도립예술단이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2학기동안 산학 인턴과정을 수료했고, 근무시간은 6시간쯤이었다. 업무는 단순업무

간단한 공연홍보, 예술단의 정기연주회 기록 엑셀 전산화, 공연 현장 업무(티켓팅, 하우스매니저) 지원했다.


약 3개월간의 직무관련 경험을 쌓았다. 산학인턴의 기회 덕분에 악기를 접어도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문화기획'분야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 필요한 역량

 컴퓨터 활용 능력 (엑셀, 한글)

 서비스 능력 (전화응대, 현장응대)

 아웃바운드 능력 (DM발송, 홍보DB리스트 업)




경험 2. 극단 / 오페라단체

두 경력을 묶어서 이야기 하는 이유는 3달 이내로 정말 짧게 근무했고, 국민연금과 같은 정상적인 고용신고가 되지 않기에 경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단체의 특징은 대표가 혼자서 모든 것을 관장하고, 급여 역시 현금 혹은 대표 개인이름으로 입금되었던 케이스다. 


계약서 체결은 물론이고, 당시에는 어렸기에 이런 부분이 불법인줄도 몰랐다.

의외로 작은 공연단체는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처럼 아예 고용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부터 시작하여, 

세금 문제로 인해 급여를 축소하여 신고하고 월급을 두번 나누어 지급하는 일명 <쪼개기>지급을 하기도 한다. 


복지는 없었다. 짧은 기간 근무 덕에 월차나 휴가 같은 부분 역시 해당이 없었으며, 이 중 어떤 회사에서는 1달 반치 급여가 입금되지 않아 고용노동부와 송사를 벌이기도 했다. 

(참고로 이 회사는 고용부에 상담하러 갔을 때 약 6명과의 노동 분쟁을 조정하고 있던 회사이기도 했다.)

그 외 대표가 화가 난다고 복사기를 걷어차 고장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더 이상 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퇴사한다.


+ 필요한 역량

 컴퓨터 활용 능력 (엑셀, 한글)

 서비스 능력 (전화응대, 현장응대)

 아웃바운드 능력 (DM발송, 홍보DB리스트 업)




경력 3. 공연단체 _ 인턴 6개월

여러 곳을 굴러다닌 끝에 4대보험에 가입된 직장은 작은 공연단체었다. 

상근하는 직원은 혼자였고, 이 단체는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위원회와 같은 예술보조금 지원을 받았던 단체이기에 이 때 공모사업에 관련한 업무들을 배울 수 있었다.  


공모신청-교부-NCAS사용-정산 과정을 배울 수 있었지만, 첫 직장이 혼자 일해야 하는 환경과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권고사직 아닌 퇴사를 하게 된다. 또르르...


+필요한 역량

컴퓨터 활용 능력 (엑셀, 한글)

 서비스 능력 (전화응대, 현장응대)

 아웃바운드 능력 (DM발송, 홍보DB리스트 업)

 홍보 역량 (공연 홍보)

 약간의 기획력 (글빨)

 약간의 회계능력 (회계정산, 기본적인 세무신고)

PIXABAY 공연 이미지소스


이 이후로 약 2년 6개월 정도 일반 소기업에 다니게 된다.

다른 직종으로 취직을 하게 된 첫 번째 원인은 급여였고, 두 번째 원인은 문화 직종에 대한 좌절감 떄문이었다.


두 번의 경험과 한 번의 취직 실패는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동종 경력과 학력 대비 적은 월급과 문화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은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무역회사 1년 반, 협회에 1년 반을 근무했지만 문화와 예술에 대한 미련은 나를 다시 문화기획으로 유턴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도 내가 전공한 문화와 예술을 경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고 발전적인 곳이 어디 있을까?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문화재단>에 대해 알게 됬다. 


운 좋게 당시 문화재단에 사업계약직 자리가 났고, 내 비록 물경력에 허당경력이여도 배우면서 다니겠다! 함께 성장하겠다는 면접과 함께 "못먹어도 고!" 문화재단에 발을 들이게 된다.




경력 4. A 문화재단 사업계약직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문화재단.

근로계약을 체결하며 타 중소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을 인정해 줬다. 덕분에 급여는 초봉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이었다. 특정 외부재원을 사용하는 사업비에 종속된 계약직으로, 사업 종료와 함께 나의 근로계약도 일몰되는 형태였다.


당시 했던 업무는 문화예술교육과 관련된 분야로 덕분에 문화계의 다양하고 네임드로 불려졌던 사람들과 첫 연을 맺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이 곳에서 처음으로 공문과 기안 같은 행정업무를 담당할 수 있었으며 출자출연기관의 잔잔바리 업무들도 배우게 된다.


즉, 전반적인 문화재단의 업무 흐름을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자 계기였으며 나에게는 큰 터닝포인트로 기억에 남은 직장이다.

 

하지만 건강상 문제로 1년 2개월 정도 근무하며 계약마무리가 된다.


+필요한 역량

컴퓨터 활용 능력 (엑셀, 한글)

 서비스 능력 (전화응대, 현장응대)

 아웃바운드 능력 (DM발송, 홍보DB리스트 업)

 홍보 역량 (공연 홍보)

 약간의 기획력 (글빨)

 운전면허 (해당 사업은 수도권 전역을 대상으로 진행해서 운전필수였다)

 약간의 행정능력 (공문, 기안, 계약 등등)

 약간의 회계능력 (회계정산, 기본적인 세무신고)



경력 5. B문화재단 사업계약직

건강을 어느정도 회복한 4개월 뒤, 새로운 직장을 찾아 헤메인다.

선택은 역시 문화재단이었다. 예전에 다닌 곳에서의 경험과 경력이 의미있다고 생각했고, 더욱 더 경험을 쌓아 다음 번에는 정규직으로 지원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B문화재단도 사업에 종속된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됐고, 이 당시 서류심사 후, 면접이 있었는데 면접에 앞서 간단한 사업 기획을 하고 PT를 제작해서 면접에 들어가 설명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렇게 입사 후 B문화재단에서 유치해 온 신규사업을 담당하며 틈틈히 한국사 자격증, 영어 점수를 취득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미친듯이 문화재단 정규직 입사지원서를 작성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필요한 역량

컴퓨터 활용 능력 (엑셀, 한글)

 서비스 능력 (전화응대, 현장응대)

 아웃바운드 능력 (DM발송, 홍보DB리스트 업)

 홍보 역량 (공연 홍보)

 어느정도의 기획력 (글빨)

 약간의 행정능력 (공문, 기안, 계약 등등)

 약간의 예산 회계능력 (회계정산, 기본적인 세무신고)

 현장 운영 능력



경력 6. C문화재단 문화사업 정규직 (현직)

미친듯이 정규직 입사지원서를 작성한지도 어언 3개월...

계속 떨어진다. 미친듯이 떨어진다. 내가 석사가 없어서 그런가? 배움이 짧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스스로 자책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 떄, 마침 운이 좋게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도입되며 이력서에 학력 기재란이 없어졌다. 나에게는 너무나 큰 기회였고, 그 이후 서류전형에서는 많은 합격을 받게 되지만 면접의 턱은 높았다.


그러던 중 C문화재단의 채용공고가 게시됐고, 1차 합격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왠걸... 서류 합격자 수가 50명이란다. (당시 130~140명이 지원했고 최종 2명을 선발했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2차 전형은 논술과정으로 진행이 되었고, 논술 현장에 도착해보니 A와 B문화재단을 다니며 스치면서 봤었던 낯익은 계약직원들 몇몇의 얼굴이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결시생도 거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논술문제를 받아들어 써내려갔다. 그렇게 논술도 끝낸 후, 5배수를 면접으로 뽑는단다. 50명중 단 10명... 내가 뚫을 수 있을까? 역시나 긴장을 안고서 결과를 기다렸다. OMG, 최종 면접 명단 10명에 들었고 최종 면접장으로 향했다.


(이 당시 최종 면접장이, 지금은 우리 사무실로 리모델링 되어 내가 일하고 있는 공간이다 껄껄)


2인 1조로 총 5팀이 면접을 보았고, 예상했던 일부 질문과 나의 경력을 조곤조곤 설명하며 잘 마무리 했다.

이제는 최종 결과만 남았다.




결과느으으으은!!!!!







면접광탈. 

홀리몰리로보카폴리....

3박 4일을 통곡했다. 내상이 너무나 컸다. 5대 1에서 광탈이라니! 내가 광탈이라니!


처음 문화재단 정규 취뽀를 준비하면서 결심한 것은 100번만 써보고 떨어지면 접자는 거였다. 이번 기회는 고작 36번째의 정규도전이었을 뿐이다. 더 좋은 자리가 있겠지, 준비가 덜 되었겠지라며 자기 위로를 하고 바스러진 멘탈을 부여잡고 B문화재단에서 다른 행사들을 추진하며 스스로를 추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발표 일주일 뒤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C문화재단인데요, 합격자 중 한 분이 임용포기를 하셔서, 예비1번으로 최종 임용되셨습니다. 근무 가능하세요?"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다. 확인하고 재차 물으니 채용확정이란다. 근무 중에 받은 전화에 화장실로 나가 대성통곡을 하며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B문화재단에서는 흔쾌히 축하의 말을 전하며 나는 C문화재단 정규직으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여러 고민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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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는 했는데 이거 정말 죽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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