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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Jun 15. 2021

나에게 너무 어려운 그것, 행정

예술전공자의 첫번째 난관-행정


취업을 해버렸다


전편에 이어 백수를 벗어나 예술가에서 사무직으로 급 U턴을 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 들어갔던 첫 회사는 작은 공연단체었다. 회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공연기획 일이었고 기존에 일하셨던 분이 출산을 하게 되며, 나를 급하게 뽑았다. 공연단체의 규모가 크지 않기에 혼자서 일하는 구조였다.


면접은 어떻게 보았고, 입사는 어찌 했는지 사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무려 10년도 더 된 기억이니 MSG를 감안하고 봐달라) 그 때의 나는 밑도 끝도 없이 컴퓨터만 잘한다는 깡다구로 공연단체에 잠시 머물게 된다.


그 당시 이미 해당 단체는 지원사업이 확정된 상태었고, 공연의 진행을 위해 후속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NCAS시스템(?)과 단어도 낯선 교부신청, 그리고 영수증을 한장한장 붙여야 하는 정산까지... 난관은 수도 없이 많고 나를 가르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경험이라고는 갓 예술대학을 졸업한 말캉말캉한 머리와 약간의 OS능력, 그리고 국악전공자의 소양으로 가지고 있는 약간의 무대지식 뿐이다.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NCAS) - https://www.ncas.or.kr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NCAS)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17개 광역문화재단이 사용하는 보조금 지원시스템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예술공모사업의 지원이 가능하고, 그 외 예산의 교부와 정산과정까지 할 수 있는 통합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2021년 현재도 무려 현역이다.)



행정, 그것은 나를 미치게 하는 일...


그 곳에 있던 사무직원은 오직 나 하나뿐이고 덜덜 떨리는 동공을 부여잡고 행정일을 시작한다. 제일 먼저 네이버 백과사전을 뒤저가며 "교부"를 찾아본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교부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후에 이 단어가 나중에야 행정언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찌어찌 교부를 위해 NCAS를 들어가 보니 기획의도, 예산을 짜서 넣으란다. 꾸역꾸역 예산을 맞춰 넣는다. 예산을 올리고 나니 인건비에 징수되는 세금을 별도의 세목으로 편성해야 한단다. 무슨소리인지 1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메뉴얼에서 세목을 검색해본다


                                                                                      X

                                                                                     


위와 같은 일이 무한대로 반복된다. 너무 좌절하지 말라, 나 역시 재단만 5년을 근무했음에도 행정은 나를 미치게 하는 미션이다.


나는 이 과정에 대하여 무작정 이해하려 하지 않고 "왜(Reason)을 함께 찾아보고자 했다.


지원신청은 국가 예산을 받기 위한 과정이니 접어두고, 그렇다면 왜 확정된 사업왜 교부신청을 해야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하고 싶은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바로 세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신청서를 썼을 때 기준이 아니라 세금을 지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예산을 조정하고, 이 과정에서 신청한 기관과의 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정을 교부신청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의 연장 선상에서 정산이 있는 것이다. 지원 받은 세금을 얼만큼 지출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목적에 맞게 썼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정산이기에 이자발생, 포인트 적립과 같은 부분을 칼 같이 회수해 내가 내는 다양한 세금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라고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무대 소품에 나오는 초꼬렛을 구매했다고 가정한다면?

Step 1. 초콜렛을 산다 →  Step 2. 증빙 사진을 찍는다 →
Step 3.NCAS를 켠다  → Step 4. 초콜렛 산 내역과 사유를 입력  →  Step 5. 증빙사진 첨부

음... 만만치 않다.


더 공포스러운 부분은 행정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변한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한시적으로 계약에 대한 이행보증비율이 조정됐다. (공기관의 계약법 상 보통 계약 체결 시 일정 비용을 보증금으로 납부하게 한다.) 이런 비율은 늘 계약자에게 유리하게끔 진행해야하기에 꼼꼼한 확인이 늘 필요하다. 그렇게에 늘 행정이 어려운 것이다.


일반 사업자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이렇듯 지원 받은 것에 대한 행정만 진행하면 된다만, 아마 이 글을 함께 공유하는 분들은 문화재단 입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만약 당신이 공공기관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면 여기서 위에 초콜렛을 사는 과정이 조금 더 번거로워진다는 것을 알면 된다. 앞과 뒤에 구입계획과 결과보고를 통해 책임자에게 보고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결재와 기안의 무한루프에 빠진다고 보면 된다

정말 하기 싫지만, 결국은 해야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아마도 행정에 대한 불성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와 기획자들의 서류에서는 정말 꼼꼼하고 잘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에 반해 심각할 만큼 기본적인 서류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다.


결국 좋든 싫든 해야하는 일이라는걸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예비 후배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아, 이 사람은 행정때문에 이런 애로사항이 있었구나...로 공감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 이후를 얘기말하자면 나는 나는 겨우겨우 공연 진행을 지원하고, 겨우겨우 정산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이후 실업자가 되었다 ^^);



그리고 받은 월급은 세전 120만원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받은 첫 월급이다.


R.I.P _ 행정하다 1년만에 낡아버린 10만원짜리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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