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전공자의 진로고민
나는 예체능을 전공하고 지금은 문화 출자출연기관에서 근근하게 살아가고 있는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개미이다.
얼핏 본다면 예체능을 전공하고 관심분야로 업을 삼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몇년 전까지 나에게도 예술가라는 정체성이 끓어올랐기에 나는 기획자도 행정가도 예술가도 아닌 사람으로 부유하고 있었다. 흔히 예술가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 부터 예체능을 우연한 기회로 접한다. 집 앞 피아노 학원에서, 합창
반에서, 미술학원에서 처음 경험하고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나 역시 우연한 기회에 에술을 접하고 평생 이 길을 걷겠다며 예술을 전공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연주를 잘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나의 세상은 전공을 결심 한 이후 180도 변해갔다. 연습실-학교-집을 반복하며 끝이 없는 연습과 레슨을 했었고 이런 생활은 꽃이 피는 계절부터 눈꽃이 피는 계절까지 챗바퀴 같이 굴러갔다.
너무 치열했던 시간들을 보낸 걸까, 나에게 남은 학창시절의 추억은 거의 휘발되어 이제는 남아있지 않다.
누구와 함께 먹었던 어느 분식점이 맛있었는지, 어떤 선생님의 수업이 너무나 졸려서 친구들과 작은 쪽지를 주고 받는 것과 같은 작은 추억까지 늘 나의 피로가 나를 잠식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최고의 암흑기를 보낸다. 나의 레슨 선생님은 "너는 XX대(지방사립대)도 못갈걸?"이라며 광역 가스라이팅을 시도했고, 오기와 독기만 남았던 나는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대학에 합격한다.
10년정도 강박과 압력에 쥐어짜이는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목표를 성취한 후 나는 불타버렸다. 아마도 번아웃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동기들은 너무 잘한다. 나만 연주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대단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나의 노력은 결국 99%가 되지 못했고, 재능 역시 발현되지 못했으며, 나의 재력도 무던한 재능을 덮을 만큼 훌륭하지 못했다. 그때의 세상은 나에게 조금은 가혹했다. 그 이후 차차 나를 작은 자취방에 가두며 반려묘와 폐쇄적을 몇개월의 시간을 흘리게 된다.
휴학 1년을 포함하여 23살, 당시 대학생 3학년인 나는 인생 최고의 고민에 빠진다.
1년 뒤 사회에 진출해야하는 미래 백수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렇게 의미없는 고민들만 나열하고 꾸역꾸역 출석체크만 하던 때에 우연한 기회로 공연기획을 접했다. 관현악 시간에 교수님께서 산학인턴 제도를 안내했고, 부랴부랴 그 자리에서 자기소개서 같은 것을 작성해서 시 소속의 국악단에서 방학기간에 단기로 산학인턴 경험을 하게 된다. 단순한 현장 업무 지원과 사전홍보, 그리고 기존에 한 공연의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중학생때 "정보의 바다탐구"대회에서 수상하고 서울시 본선까지 진출했던 경력이 있었다!
나는 행정업무가 잘 맞구나, 그렇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곳 옆에서 하겠다는 일념으로 작은 국악공연기획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내가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의 일이다.
그렇게 백수에서 벗어나 사회의 일환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