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커피회> #14. 안성 빈센트 반 커피

[커피 여행, 카페 여행]

by 브랜드숲 이미림

# 14. 이웃을 위해 대나무 울타리를 심어 주고 싶은 곳



[이 글은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하던 미팅이 '어쩌다 커피 여행'이 된 것을 기록하는 것으로

돈을 받고 적는 광고성 글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의 커피 여행기임을 알려 드립니다]





가을장마가 길어지던 9월의 첫날,

정갈한 한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인스타의 사진에 반해

안성의 빈센트 반 커피를 찾았다.


비 오는 수요일의 아침,

안성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많이 막혔고

비는 굵은 장대비를 연신 뿌려대어

그냥 집으로 돌아설까라는 고민을 거듭하다

1시간을 조금 넘겨서 카페에 도착을 했다.



카페는 안성 공도의 한적한 마을 안에 있었다.

주차장은 카페 근처에 따로 마련이 되어 있었고,

대문에 걸린 카페의 간판은

외국인이 한옥에 살면서 명패를 붙여 놓은 듯

묘한 대비를 이루게 해 주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가 한눈에 반했던 초록 잔디 너머

한옥카페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날이 맑았으면 더 좋았으련만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려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사실 이 먼 곳까지 온 이유는

한옥카페의 멋스러움도 있었지만

로스팅을 하는 카페이기도 하고

코로나 시대에 손님들이 싫어할 만큼이나

깐깐한 규칙을 적용하기에

그 까탈스러움의 안전함을 생각한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고흐를 어떻게 브랜드에 적용시켰을지도 궁금했었다.



그러나 오픈 첫 시간에 도착했던 카페는

세찬 비를 뚫고 찾아간 손님을 반기는 그 어떤 반가움도 없었고

내가 기대했던 방역의 까탈스러움도 없었다.


게다가 브랜드에서 확장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덴티티는

벽에 걸린 고흐의 그림 한 점과

판매용 원두커피에 올려진 그림이 전부라

살짝 실망스럽기도 했다.

내가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이었을까?



어쩌면 카페 문 앞에서부터 이웃 주택에 붙어 있는

불편함을 외치는 저 현수막 내용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당 넓은 한옥 건물을 카페로 만든 것은 좋았으나

카페가 상업지역이 아닌 일반 주택들 사이에 있어

이웃들의 사생활이 침해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발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는 간절함이

사진을 찍으면 죄인이 되어 버리는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오죽하면 집집마다 저런 현수막을 내 걸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되돌아 나가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비 오는 날 힘들게 찾아온 노력이 아까웠고

길 헤매고 있던 팀장님을 위해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보통 카페를 가면 사진 찍기가 바쁘다.

그러나 이곳은 그래서 사진 찍기가 참 불편했던 곳이었다.

원하는 장면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이웃 주택의 모습이 저렇게 사진에 다 담겼다.

한 장의 사진을 찍고 이웃의 주택을 과감히 다 지워 버렸다.


팀장님과 나는 말하지 않고도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사진 찍기를 멈추고 있었다.

어쩌면 가장 사진 찍기를 아낀 카페이기도 했다.



나는 카페라테를 기대하며 주문했고

팀장님은 늘 그렇듯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러나 커피를 맛보는 순간

나는 오늘의 방문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에 자랑하던 카페라테는

우유의 스티밍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라테의 하트는 금방 풀어져 버렸다.

그리고 팀장님의 아메리카노는 영 싱거워

무료 1잔을 추가해 준다는 것을 대신 샷 추가로 부탁했다.


그런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은 더 있었다.

이른 아침 그 카페에는 팀장님과 나만 있었는데

새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서 샷 추가를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려놓았던 커피를 그냥 부어 주는 거였다.

순간 우리는 할 말을 잃었었다.

이럴 거면 그냥 첫 잔을 맛있게 줄 일이지

무료로 1잔 추가해 주는 게 뭔 의미가 있었을까?



세찬 비를 뚫고 온 내 노력이 헛되었고,

먼 거리를 오느라 투자한 내 시간이 아까웠으며,

이웃이 싫어하는 손님이 된 우리가 불편했고,

기대했던 커피맛에 한참 못 미쳐서 아쉬웠다.


이웃들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현수막을 보며

대나무 울타리를 심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수요일 아침 우리들의 수요커피회는

커피 여행 이후 가장 최악의 날을 맞이 했다.


가장 안 좋았던 날씨에

가장 먼 거리에서

가장 불편했던 자리에 앉아

지우고 싶었던 커피의 기억으로 남아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당을 벗어난 골목에는

가을의 풍요로움이 가득해

담장 위의 모과와 담장 밑의 보랏빛 맥문동 꽃이

씁쓸했던 커피 여행자들의 마음을 달래 주었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선

뒷산의 뻐꾸기가 위로의 말을 건네주어

잠깐이나마 행복을 느끼고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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