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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Oct 30. 2022

70대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블루

 혹시나 했는데 자가 진단키트에 두 줄이 그어졌다. 영락없이 코로나에 걸렸구나 했다.

 사무실에 연차를 내고 보건소로 달려가 PCR 검사를 했다. 다음 날 ‘확진’ 통보가 왔고 7일간의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남편은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밭 옆에 자그마한 농가주택이 있어 거기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격리가 되지만 문제는 시어머님과 딸이었다.    

       

 동거가족이라 모두 PCR 검사를 했더니 며칠 전부터 목이 아프다던 딸은 양성이고 남편과 시어머님은 음성이었다. 딸과 나는 각자 방에 갇히게 되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일주일 먹을 생수와 과자, 상하지 않는 과일은 미리 각자 방으로 들여다 놓았지만 문제는 식사였다. 나와 남편은 어머님이 걱정되어 남편집이나 가까이 사는 시동생네로 가시기를 권했지만 어머님은 불편하시다면서 그냥 있겠다고 하셨다.              


 오전에 양성 통보를 받고 그날 점심부터 어머님은 작은 쟁반에 밥과 국 그리고 김치와 반찬 한 가지를 담아 방문 앞에 놓아주셨다.      


 어머님께 전염될까 봐 따로 주방세제와 수세미를 화장실에 두고 딸의 것과 내 그릇을 설거지하여 방문 앞에 내놓았다. 그 마저도 귀찮고 번거로웠다. 증세는 가벼워도 약간의 두통과 무기력증은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딸애는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프다면서 말도 못 하고 잠만 잤다.   

       

 우리는 점점 좀비가 되어갔다. 하지만 어머님은 한결같았다. 때가 되면 방문 앞에 식사 쟁반을 놓아두고 두어 시간 지나면 간식으로 과일이나 빵을 갖다 놓으셨다.     


 어머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머님만의 시계에 맞춰 행동했다. 하지만 우리 둘은 어머님의 수고를 못 느끼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미각만 둔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감정까지 둔하게 만들었나 보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격리 해제 하루 전, 여느 때와 같이 그릇을 바닥에 놓으려다 허리가 불편하신 어머님 생각이 났다. 6일이 지났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어 장갑과 마스크를 끼고 쟁반을 들고 방을 나왔다.   

  

 어머님은 식사를 하고 계셨다. 내가 나온 것을 보셨지만 걱정스러웠는지 아무 말 없이 식사만 하고 계셨다. 나는 그릇을 한쪽에 가지런히 놓고 돌아서다 무심코 식탁을 보았다.     


 달랑 김치 한 보시기와 식은 밥 한 덩이


 나와 딸애에게는 날마다 국과 새로운 반찬 한 가지를 대령해 주다시피 하신 분이 정작 당신의 끼니에는 식은 국조 차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라 멀찌감치 서서 왜 그렇게 드시냐고 했다.

.

 고개도 들지 않고 어머님은 

 “같이 먹을 때나 차려 먹지. 나 혼자야 뭐.” 그렇게 말끝을 흐리셨다.     

 아직은 오래 얘기할 상황이 아니어서 방으로 들어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늘따라 어머님의 등허리가 유난히 굽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어머님의 밝은 표정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봄인데 말이다.

 매년 봄이면 어머님은 냉이부터 시작해서 각종 푸성귀를 거둬다가 우리 식구를 먹이셨다.

 광대풀, 민들레, 방풍, 씀바귀, 하루나,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풀들이 야롱 야롱 봄 아지랑이처럼 우리 집 밥상 위에 제법 올라왔다.


 원래 육고기나 비린 생선을 드시지 않는 어머님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셨다. 하지만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채소반찬이 결코 쉬운 공정은 아니다. 당신이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날마다 캐고, 다듬고, 씻고, 데쳐서 밥상까지 올리기까지 그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봄이 지나 여름이 되고, 그리고 가을, 겨울이 되어도 어머님의 나물 사랑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나물을 만날 수가 없다. 그때는 식구도 줄고 어머님도 이제 귀찮아지셨나 보다 했는데 오늘 어머님의 식사 모습을 보면서 문득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우리 가족에게는 엄청난 일이 있었다.    

 

남편이 명예퇴직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남편은 33년째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만두라는 압력도 없고, 친절하고 성실하면 경력에 따라 승진도 하는 안정된 환경에서 지금까지 잘 생활하고 있었다.     


한때 임용시험 경쟁률이 97대 1까지 올라가 최고의 직장으로 손꼽히는 공무원. 그런 꿈의 직장을 그것도 정년이 5년이나 남았는데도 박차고 나온다는 거다. 어머님은 처음에 농담인 줄 아시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믿고 싶지 않으셨겠지.     


시어머님은 서른을 갓 넘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다. 군대에서 얻어온 폐렴이 고질병이 되어 시르 시름 앓으시던 시아버님은 두 아들만 덩그렇게 남기고 가셨다. 그 후 시어머님은 손바닥 만한 땅에 곡식을 심어 시장에 내다 팔거나 남의 집 일을 다니셨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하러 들렀던 면사무소. 하얀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워 그날부터 두 아들의 장래가 ‘공무원’이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두 아들은 공무원이 되었다.


 당신의 소원대로 모든 게 이루어지는 즐거움을 어머니는 맛보셨고 더구나 남편은 ‘지방공무원의 꽃’이라는 사무관 승진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남편은 성실하고 정직했지만 욕심이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화내고, 말리고, 달랬지만 고집을 꺾지 않는 남편과 자주 다퉜다.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어머님은 다르셨나 보다. 남편이 명퇴 신청서를 내고 들어온 날,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냉정하리만큼 눈물이 없으셨던 어머니. 일찍 남편을 보낸 아픔을 겪으셨고 혼자 힘으로 아들 둘 키우시느라 쓸데없는데 감정 낭비를 하지 않으려고 당신 만의 장벽을 굳건히 쌓아왔다. 


그런 분이 아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고 받아들여야 하는 선택만 남아있었다. 몇 달 후 남편은 몇 가지 가재도구와 필요한 짐을 싸서 농가주택으로 들어갔다. 전 주인이 심어놓은 고추를 수확하고 그 밭에 배추와 무를 심었다. 처음 농사짓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이것저것 종류는 많았지만 결실은 빈약했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 나는 어머님을 남편이 있는 곳에 모시고 갔다. 꽃이 만발했다. 민들레와 꽃잔디가 지천으로 피고 벚꽃이 흩날리는 시골길을 달리며 뒷자리에 앉아계신 어머님을 보았다.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셨는데.     


남편집에 가서도 어머님은 별로 말씀이 없었지만 이따금씩 남편을 훔쳐보면서 긴 한숨을 토해 내셨다. 직장이라고 다닐 때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폼이 나더니 그새 남편은 흰머리가 풀풀 날리고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영락없는 시골 농군이 되어 있었다.    


남편과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아직도 뭔가 서먹하다. 사실 나는 아직은 다닐만한 직장 생활로 바쁘다 보니 어머님을 좀 소홀히 대했다. 이번 코로나 확진으로 염치없게 수발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된 것이다. 완만하게 기울어진 등허리 앙상한 가죽만 남은 껍데기가 앞으로 숙여지고 앙상한 가죽만 남은 등허리가 눈에 어른거렸다.     


사실 남편의 갑작스러운 명퇴는 아내인 나도 충격이 컸지만 직장이 있고 나름 바깥 활동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잘 견뎌졌다. 그런데 어머님은 좀 다르셨다.   

  

평생 자랑으로 여긴 큰 아들, 훤칠하고 잘생기고 똑똑한 내 아들이 농사한 번 지어보지도 않고 농군으로 돌아가 벌에 쏘여가며 풀과 전쟁을 하고 간신히 건져온 푸성귀를 내밀어도 달갑지 않으셨던 거다. 그래서 어쩌면 그렇게 좋아하시는 나물을 멀리하셨는지도.    

 

나는 어머님이 다시 나물을 찾아 다음번 봄에는 남편의 농가로 가시기를 바란다. 어머님이 예전같이 봄꽃처럼 화사하게 웃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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