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one Sep 02. 2024

직원이 내 마음과 같다고 생각하면

입장 차이를 이해 못하는 격

 "우리 그냥 오늘 국밥이나 먹으러 갈까?"


 괜스레 저녁밥을 차리기 싫은 날들이 있다. 그럴 땐 간편하게 한 그릇 먹고 올 수 있는 메뉴로 국밥을 선택할 때가 많다. 뜨거운 불 앞에서 고기를 굽는 수고로움을 덜고, 따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으면 뭔가 모르게 몸과 마음의 노곤함이 풀리는 것만 같아 애용하는 저녁 메뉴이다. 국밥 외식은 식사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가격도 저렴해 경제적인데다 배도 불러 너그러운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홀에 직원이 6명 정도 되는 거 같지?"

 "주방 안에도 직원들이 제법 많아."

 "테이블이 몇 개야? 점심, 저녁 시간에 대략 4명 기준 00팀이 온다고 볼 때 하루 매출이 어느 정도일까?"

 "주방 안에 냉장고가 3대나 있어. 불 앞에서 토렴을 하는 직원에겐 인센티브가 있을까?"


  아가밥을 시작한 뒤로는 식당에 가면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테이블 수가 몇 개인지, 홀 직원은 몇 명인지, 주방 안의 구조가 어떠하고 주방 직원은 몇 명인지, 위생 상태가 어떠한지, 점심과 저녁에 몇 명의 손님이 오고 대략 매출이 얼마일지 등을 혼자 이리저리 생각해보거나 남편과 대화하면서 음식이 나오기 전의 무료함을 조금이나마 잊는다. 무엇보다 내가 유심히 보는 것은 바로 직원과 사장의 표정과 말투에서 보여지는 '태도'이다. 나는 그 태도에서 사장의 마인드, 직원과 사장의 관계, 이 가게의 비전까지도 혼자 마음대로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아가밥을 인수할 때 주방에는 직원이 두 명 있었고, 나는 그들과 함께 이어서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마치 기름과 물처럼 한 공간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선과 막이 있어 함께 할 수 없이 따로 노는 분위기였다. 우선적으로 내가 처음 시작하는 사업인데다가 모든 면에서 무지한 것이 자연스럽게 표가 나다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두 명의 직원은 오히려 나에게 여러 면들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어리숙하고 잘 모르는 사장으로 낙인 찍히고 나니 직원 역시 내 마음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오랜 시간 일하면 많은 월급을 가져가는 시급제였기 때문에 일이 늘어져 배송 시간을 못 맞추기 일쑤였고, 자신들의 기분대로 행동하니 직원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홀에서 배달 전표를 뽑고, 음식을 배달용기에 소분하고, 포장하는 일을 했었다. 주방은 전적으로 그 두 직원에게 의지해야했기 때문에 굳이 갑을 관계를 따지자면 나는 철저한 을의 입장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직원의 마음이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하지 못하고 꾹꾹 참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원에게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에 비참함까지 느낀 어느날, 나는 내 일을 하는 직원을 뽑아 홀에 두고 주방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과 기름을 섞이려면 유화제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나는 월급제를 제시했지만 직원들이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내가 주방에 들어가 더 좁은 한 공간에서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직원보다 먼저 출근해 2시간 넘게 육수를 우려내고, 고기의 살을 발라 이유식 준비를 해 두었다. 한 사람이 이유식, 다른 사람이 반찬을 만드는 동안 나는 보조 역할을 거침없이 해냈고 개수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어깨 너머로 이유식과 반찬 만드는 일을 배우면서 쉬는 날은 혼자 공부하고 연습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자리를 잡아갈 때쯤 주방에 내가 하던 설거지를 하며 뒷정리를 도울 보조역할의 직원을 한 명 더 채용했다.


 주방을 정리하고 난 뒤, 나는 다시 홀과 주방을 오가며 멀티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많아지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일도 재미있어졌다. 그 무렵 15평 좁을 공간에 여자 5명 있다보니 메인 직원 두 명의 사이가 좋지 않게 되고 번갈아 전화로 서로에 대한 헌담을 하기 시작했다. 일도 고되고 힘든데 하소연까지 들어가며 달래려니 이것 또한 고역이 따로 없었다. 결국 한 사람이 나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면서 주방에 새로운 직원들을 구하게 되었다. 결국 아가밥에는 배달 직원까지 합해 12명의 직원이 생기게 되었다.




 김승호 회장의 책에서 '회사가 10명의 직원일 때 가장 힘들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아가밥에서 일하는 직원이 9명이 되니 목소리 내는 사람이 9명인 것과 같은 꼴이었다. 안 듣고 싶어도 들리고, 들리면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이리저리 편도 나눠지고, 성격이 그래서인지 관계에 있어 마음 쓰이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직원 덕분에 내가 해 나갈 수 있다는 감사함이 커서 웬만한 쓴소리는 참고 넘어갔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빨리 움직여 제발 배송 시간을 맞춰주세요. 그리고 일이 다 끝난 뒤에 인덕션 위에 앉아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밖에서 보기 좋지 않아요. 제가 짜 놓은 시간대로 움직여서 최대한 배송이 늦게 가는 일이 없게 부탁드립니다. 남편이 cctv를 보면서 저만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다고 그래요."

 

 내가 직원에게 한 이 말은 결국 말이 문제를 만든 격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cctv 이야기는 직원에게도 매우 서운한 이야기로 들렸고, 결국 내게 주휴수당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직원 4명이 모여 나에게 이렇다 저렇다 서로 이야기를 할 때는 정말인지 외롭게만 느껴졌다. 집에 오는 길에 뼈저린 외로움으로 너무나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다 지난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주휴 수당의 개념조차 몰랐던 무지한 내 잘못임을 알고 직원들을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는 나 또한 직원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었다. 나는 내 입장에서 직원들에게 계속 커피와 점심을 사고, 개인별로 이것저것 선물을 하면서 진심의 고마움을 표현했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아가밥에 대한 열정을 잃고 회의감과 무력감, 무엇보다 외로움에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손을 놓기로 결심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 무렵 아마 나의 표정에는 미소가, 태도에는 생기가 사라졌을 것이다.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

 라는 말들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장과 직원 또한 절대 같은 마음일 수가 없다. 직원이 내 마음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착각은 직원에 대한 기대를 부르고, 기대는 결국 실망과 상처로 이어진다. 타인에게 기대를 하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홀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외로움도 외로움인지 모르고 당연한 것이라 여길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사장과 직원이 같은 마음일 수 없는 것은 사장, 직원이라는 각자 입장 차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며느리와 딸의 입장이 다르듯 사장과 직원도 그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 직원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 곳에 와서 일하는 주된 이유는 단 하나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것만 분명히 이해하고 직원을 대하면 그것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아가밥에서 일했던 직원 중에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한 분을 아가밥을 그만 둔 지 1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가밥을 그만두고 나니 사장님과 00가 가장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근데 사장님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밖에 없어요."

 "아니 모여서들 얼마나 내 욕을 했으면 그래요?"


 직원의 말에 나는 농담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지난 날 사장과 직원이라는 입장 차이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대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만 같아서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