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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one Aug 09. 2024

이성보다 감성? 감정! 만 앞서면

= 미생

 아이들을 차에 태우면 으레 자기들이 좋아하는 곡을 틀어달라며 아우성이다. 얼마 전에도 어김없이 곡목들을 말하며 틀어 달라는데 이름조차 생소한 것들이었다. "마라탕후루"와 "티라미수케잌". 귀에 화살처럼 날아와 꽂혀버리는 가사들과 중독성 있게 반복되는 리듬이 뇌리에도 남아 수능 금지곡이 따로 없는 곡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티라미수케익은 시크하면서도 상큼한 멜로디가 내 취향인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때가 많아졌다. 왜 제목이 티라미수케익인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로 나름대로 이해를 했었다.

 '아, 티라미수케이크처럼 부드럽고 달달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노래구나!'

 소년 소녀 백서  그런 그녀 있어  Ooh You Know
 소리 없이 다가온  소문처럼 다가온 사람 
                         ........ 
 Tiramisu Cake  Tiramisu Cake  마치 넌 달콤한  
 Tiramisu Cake  Tiramisu Cake  그대의 입술과 눈동자
 Tiramisu Cake  Tiramisu Cake  마치 넌 달콤한
 Tiramisu Cake  Tiramisu Cake  점점 너를 꿈꾸네
                        ........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보 도 트듯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는 일이 생겼다. 이웃에 사는 중학생이 티라미수케익은 'T라 미숙해'라는 의미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정말인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의미라 나에겐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성격검사인 MBTI의 그 T란 말인가? 그래서 미숙하다고? 아, 사랑이라는 감정표현에 사고형 T라서......' 


 사랑에 있어서 T라 미숙하다는 노랫말과 달리 나는 사업에 있어서는 F라 미숙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조그마한 가게라 하더라도 이끌어나가다 보면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삶과도 같다. 바다 위 파도가 육지와 만나 하얗게 부서지면 그다음, 또 그다음 뒤를 따르는 파도들이 이어져 온다. 파도의 크기 차이일 뿐 파도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파도가 없다면 그것이 바다일까?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끊임없이 연이어 오는 파도에만 나의 온 신경을 쓰고 있었고, 서핑처럼 그 파도들을 타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겐 바다 전체를 볼 줄 아는 틈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의 배수구가 막혀 역류해서 물난리가 난 일, 전기가 누전되어 차단기가 내려간 일, 갑자기 직원이 나오지 않는 일, 부모님이나 아이가 아파 병원과 가게 중 어디를 가야 할지 갈등하는 일, 배송 오류가 나거나 누락이 되는 일, 식단에 맞게 주문한 상품이 조리 전까지 오지 않는 일, 이물질이 나오는 일, 직원들끼리 싸우는 일, 진상인 고객을 만나는 일, 전기 연결선에서 불이 난 일, 가게 근처 아파트 재건축 현장 때문에 쥐들이 나타난 일, 한여름에 에어컨이 멈춰버린 일, 냉장고가 고장 나 식재료를 모두 버린 일, 주문하는 플랫폼이 다운되어 고객들의 주문 사항이 없어진 일 등등 일일이 기억해 적기에도 숨 가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참으로 많았다. 단순하게 생각해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맞게 적절하게 해결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발생한 문제를 더 큰 문제로 만드는 것은 내가 감정형인 F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문제와 해결이라는 그 과정의 간극 사이에 몹쓸 '감정'이라는 녀석이 들어가 떡 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해결보다도 나의 여러 감정들이 또 하나의 파도를 만들어 나를 덮쳤다. 좌절과 절망에 바탕을 둔 감정들은 태도로 이어져 지혜롭고 올바른 해결로 나아가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풀어내지 못하고 억압된 감정들은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마음속에 남아 제일 편한 곳에서 여지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언제부터인가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집이란 공간에서 가족들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 주었다. 어느새 나는 밖에서는 지킬박사, 안에서는 하이드가 되어 가장 이중적이고 약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꾸만 스스로 더 큰 파도를 만들어 이리저리 휩쓸렸던 거 같다. 그 때 하도 감정들이 닳고 닳아져 아가밥을 그만둔 뒤에 한동안은 웬만한 일에는 눈물도 안 나던 나였다. 


  감정이라는 바둑알만 가져서는 바둑에서의 미생과 같다. 감정과 이성이라는 두 집을 가져야 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사업에 있어서는 확실히 T가 유리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어떤 사업이냐에 따라서 F가 필요한 경우도 있겠다만은 나는 선택할 것들과 해결할 것들이 더 많아지는 사업에서는 이성적인 사고가 필수적이다. 감정만 앞세우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나두면 감정과 이성의 적절한 조화성이 내 사업에도 펼쳐진다. 일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지, 내가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인지 사업을 하면서 곰곰히 따져볼 일이다.




 아가밥을 통해 나는 감정이란 녀석과 나의 민낯을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업은 나를 더 깊게 관찰하고 이해하는 발판이 되어 주었다. 감정, 생각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고, 감정과 생각이 온전한 내가 아님을 어렴풋이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또 그만큼 어리석어 배운 것들이 많은 시간이었다. 


 내가 지금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내외적으로 "조화성"에 집중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와 떠오른 방법이지만 사장은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는게 좋다. 작지만 매일 반복되는 것만큼 안정감을 주고 큰 힘을 가지는 것은 없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운동, 명상, 독서, 일기쓰기 등등의 사업 외적인 부분에서의 반복된 자신만의 루틴이 곧 자신을 지켜준다는 것을 나도 아가밥이 끝나고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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