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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혐오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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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기정 Oct 21. 2024

[산문집] 뺏겼었던 것


여름에도 입어야 했던 긴팔은 땀에 젖는 날보다 피에 젖는 날이 많았고 이 말이 거짓말이라면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이겠지. 의존할 사람이 없었나 봐, 나를 믿는데도 한계가 있었나 봐. 그래서 모두를, 나까지도 버리고 미워하기 시작했나 봐. 칼보다는 가위가 좋아, 칼은 써는데 가위는 자르니까. 보다 확실한 거니까. 한 손에 들어오는 기다란 날에 의존해. 몇 번의 왕복이 끝나면 보다 가벼워질 거야. 나를 믿는 한계를 아주 잠시나마 더 높일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내게 줘요. 당신들이 뺏어간 그걸, 내 이름이 적힌 지퍼백 안에 있는 그걸 줘요. 내가 살려면 약이 아니라 그게 필요해. 제발 가져와줘요. 내게 돌려줘요. 내가 치료될 거라는 말은 하지 마요. 믿지 않으니까. 나는 변하지 못하니까. 그러니 씨발 가져와요 그걸. 그걸. 그럴 수 없으면 죽겠으니까 씨발 가져와요 그걸.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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