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깨끗한 상태의 새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페이지 표시를 위해 책 끝을 절대 접지 않으며 책을 쫙 펼치면 남는 자국이 무서워 넓게 펼치지 않는다. 밑줄 역시 절대 긋지 않고 서점에서 처음 사온 그 상태로 책장에 꽂아두길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책을 읽는 방식도 다양하다. 나와는 반대로 주위에 가까이 두고 아무 때나 편하게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에 드는 구절에 메모나 필기를 하며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본인 소장의 책들을 어떻게 보는가는 내 권한 밖의 일이지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도서관은 가지각색 사람들이 들르는 곳이니 반납된 책의 상태도 다양하다. 빌려본 책이 오염이라도 될까 표지를 달력 종이로 싸서 보시고는 반납하시는 할아버지, 투명한 비닐 pvc로 책을 감싸서 읽고 반납하시는 아주머니(너무 예쁘게 잘 싸놓으셔서 비닐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서가에 꽂았다.)도 계시긴 하지만 대부분은 함부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책을 반납받자마자 항상 책의 상태를 체크한다. 물에 젖지는 않았는지, 볼펜으로 밑줄을 긋지는 않았는지, 커피나 국물을 엎지르지 않았는지 항상 확인한다. 책의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정도의 훼손이 아니면 대부분은 다음부터 주의를 해달라고 주의를 드리지만, 가끔 보지 못할 정도로 훼손되어 반납하는 책이면 변상을 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변상을 해달라는 요청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무료로 다 본 책을 다시 돈을 주고 사는 것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로 나오는 변명은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보는데 왜 나만 변상을 요청하느냐'와 '원래부터 이 상태였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변명이다. 이런 항의 때문에 반납된 책의 상태를 더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오염된 채 대출이 나가는 책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볼펜 낙서가 심한 책은 어쩔 수가 없지만 연필로 밑줄이 쳐있는 책들은 사서가 지우개로 직접 자국을 지운다.
밑줄은 한두 장이 아니라 책 전체에 그어져 있기 때문에 지우개질을 하다가 책 전체 내용을 파악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가끔 이용자가 내게 이 책을 소개해주려 이렇게 열심히 밑줄을 쳐놓으셨나 싶을 때도 있다.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것은 습관이라 대개 그런 이용자가 반납한 책은 전체가 밑줄이 그어져 있다. 3권의 책이 반납이 되면 3권의 밑줄을 지워야 하는 것이다.
대출반납대에 앉아 책의 밑줄을 지우고 있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는 여유로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시간 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 책의 밑줄을 지우는 거라니 사서 참 편한 직업이군이란 자조가 나오기도 한다. 그 시간에 해야 할 다른 일들은 뒤로 밀렸지만 말이다.
책이 훼손되어 돌아오는 것은 온전한 모습의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메모나 밑줄, 낙서, 음식이나 음료 자국도 그렇지만 비 오는 날에 반납된 비에 젖은 책과 자연스레 손때가 묻어 갈화 된 종이를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인쇄나 제본 상태가 조악한 책들도 많다. 몇 번 대출이 나가지 않았던 책임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쭉쭉 떨어져 나오고 가끔은 절반이 쪼개지기도 한다. 그런 책들은 스테이플러나 풀, 테이프 등으로 아무리 보수를 잘해도 금세 다시 페이지가 떨어져 나오고 그 위에 또 보수를 하면 상태는 더욱 나빠진다.
인기가 많은 책들이 훼손된 경우에는 보수나 재구입도 쉽지 않다. 예약이 걸려 있기 때문에 반납되자마자 연락을 받은 이용자가 책을 찾으러 오기도 한다. 그래서 보수가 더욱 쉽지 않다. 물론 그런 책들을 받아 든 이용자는 기분이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의 책은 공공재이다. 나만 보는 책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건네줘야 할 내가 잠시 빌린 물건이다. 내가 받아 들 때 기분을 생각하며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정 책에 낙서하는 습관을 못 고치겠다면 빌리지 않고 사서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반납된 책의 밑줄을 지우며 나는 오늘도 깨끗한 책들의 나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곳에서는 책이 갈변되지도 않고 페이지가 조악하게 떨어져 나가지도 않으며 처음 상태 그대로의 책들이 저마다의 표지를 뽐내며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