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운 Jul 20. 2021

고2의 수험생활

코로나19로 입학식 없이 고딩이 된 2004년 생들의 하루

2020년 1월.

전 세계가 동시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죠.

이름도 생소한 바이러스 코로나19!

아이들은 반년 동안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졸업식, 입학식도 할 수 없었죠. 하루하루 확진자가 줄어들길 기대하며 실시간 울리는 재난 알림에 촉각을 세웠어요. 결국 2020년 한 해 동안 60일도 채 학교에 갈 수 없었습니다. 120년의 대한민국 학교 역사에 학생이 학교를 갈 수 없게 되는 새로운 획이 그어졌죠.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진귀 현상이 벌어졌어요. 아이들이 제발 학교에 좀 보내달라고, 학교에 너무나 가고 싶다고, 친구들이 그립다고 말하게 되었어요. 10살이 된 아들은 "학교가 제일 재미있다."라고 말합니다. 방학을 기다리고 월요일이 되면 이불속에 몸을 감추던 이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요. 아무리 비극적인 일이 벌어져도 동전의 양면성이 있는 것처럼요...


2021년이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를 드문드문 가고 있습니다. 2학기 전면 등교를 선포했지만 거리두기는 4단계로 격상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방학을 맞이하기 전 가정에서 원격수업을 하게 되었고 사실 상 미리 방학이 된 셈이에요. 그래도 초중등까지는 버틸만합니다. 그런데 고등은... 어떨까요?


저는 입시? 잘 모릅니다.

제도? 변혁에 앞장설 만큼 의욕적이지도 않죠.

그저 시국에 맞춰 집에 있으라면 있고, 온클을 도와주라 하면 도와주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2004년에 태어난 큰 아이는 국가의 혜택에서 살짝 빗겨 나 있습니다.

국가지원 양육수당 없음(2018년부터 시행)
유아학비지원 없음(2012년부터 소득에 관계없이 순차 지원 시행)
초등학교 토요일 등교(경기도 내 초·중·고·특수학교 2012년부터 주 5일 수업제를 전면 시행)
중등 교복비 지원 없음(2005년생부터 무상지원)
고등 1학년 등록금 지원 없음(2005년생부터 무상지원)
※ 2004년생이 치를 입시와 2005년생 이후 입시 제도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코로나로 온 나라가 뒤숭숭할 때 고등에 입학한 2004년생 딸아이는 입학식 없이 고1을 맞았습니다. 작년 초에는 화상 수업도 없어서 영영 학교를 못 갈 것 같은 불안감으로 곳곳에서 여러 안들이 쏟아지기도 했었죠.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되었던 딸아이는,

"엄마, 나... 신분이 없어졌어.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입학을 못해서 신분이 없네? 난 학생도 일반인도 아니야. 되게 어이없지..."

하더라고요. 웃픈 현실이죠.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를 가든 못가든 입시는 계속되고 집합 금지 명령이 떨어져도 학원은 갑니다. 이상하죠? 학교는 못 가는데 학원은 간다는 게... 학교가 멈추면 입시도 멈추고 아이들의 수험 방향도 달라져야 하는데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니 학교를 못 가서 생기는 불안을 학원에 의존하며 위안 삼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죠.




집콕 생활, 온클 수업 1년 6개월. 현재 진행형...


제 아이는 혼자 공부합니다.

학원에 못 가니 인강을 듣습니다. 스터디 카페나 독서실 이용이 안되니 창고방을 정리하고 반대편에 책상을 넣어줬습니다. 스스로 취약한 부분에 대한 보충을 인강에 배치된 같은 교과, 여러 선생님들의 샘플 수업을 듣고 자기와 맞는 선생님을 찾아봅니다. 학습플래너에 오늘의 공부계획을 세우고, 핸드폰은 거실에 두었습니다. 공부시간 집중도를 높이려 타이머를 사용합니다. 그래도 아이니까 집중했다 해이 해졌다를 반복합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인 저는 함께 맞장구 쳐주며 격려밖에 해 줄 것이 없습니다.


2020년~2021년 현재까지 1년 6개월 동안 아이가 풀어낸 문제집과 출력물


엄마의 눈으로 바라봐도 열심히 사는 아이가 대견합니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홀로 자신과 싸워가고 있는 아이는 올해 목표가 10시간 이상 앉아있기랍니다.

"엄마, 많이 생각해 봤는데 결국 오래 앉아 있는 자가 승리하는 거더라고..."

어려움 속에서, 주어진 환경은 비슷비슷한데 어떤 아이는 목표를 이루고 어떤 아이는 목표에 미치지 못하기도 합니다. 아이들 인생에서 공부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딸아이는 제 목표가 공부를 잘해보는 거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힘들지만 한 번 해 보겠다고 애를 씁니다.

"엄마, 내가 공부하는 건 재능이 없어서야.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아이돌처럼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춤은 몸치라 안되고, 그림을 자나 깨나 그려도 행복하고 그렇지는 않거든. 아무리 생각해봐도 할 게 공부밖에 없어서 지금은 공부를 해 보려고... 나중에 공부 말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는 그거 할게."

저는 아이의 생각을 응원합니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니까요...


1년 6개월 간 써 내려간 학습플래너


버킷리스트에 하고 싶은 것이 500가지가 넘었다고 이야기하는 딸아이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할 것 같은데 돈을 많이 벌려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대학을 가야 할 것 같다고,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어서 공부를 하겠다고 합니다. 이만큼 생각하는 것만 봐도 엄마로서 너무 대견합니다. 그리고 감사하죠.


뭐야? 자랑하려고 썼나??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자랑... 맞죠... 자랑할 만합니다. 공부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제 갈길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도와주고 싶지만 해줄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제 인생이고 제 스스로 걸어가야 할 길이니까요. 그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지금 이 사태가 어서 마무리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집은 거리두기 단계를 지켜도 너무 잘 지키는 모범 가구입니다.

작년부터 현재까지
가급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 한
외식 No!
외출 No!
여행 No!


정부의 지침을 잘 지켜도 너무 잘 지키려다 보니 동네 친구들이 "언니~ 안 죽어~ 밖에 좀 나와~ 이러다 얼굴 잊어버리겠어!"라고 할 정도죠.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집콕입니다. 우리 가족의 집콕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학교에 가고 싶은 이유 말이죠. 정부가 아무리 거리두기 단계를 올려도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는 계속되고 확진자는 계속해서 늘어갑니다. 마음 같아서는 정부가 나서서 강경하게 연휴가 많은 기간을 끼워서라도 "전 국민 셧! 다운!!"을 명령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리두기 고 위험 시설들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에 속하지 않는 자영업자 모두 힘겹습니다. (우리 집도 자영업자입니다.) 소상공인 지원업종에서 벗어나 소득이 없어도 지원받지 못하고 애매하게 커트라인에 걸쳐 있어서 재난지원금에도 혜택 받을 수 없는 가정이 꼭 우리 집일 만은 아닐 것입니다.


인*타를 보면 저 빼고 다들 코로나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 같아요. 저만 그렇게 느끼나요? 매일 맛있어 보이는 브런치 사진이 올라오고, 전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득 담은 갬성 사진으로 인증샷을 날립니다. 하지 말라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겁보 엄마 인 저는 실시간 올라오는 사진을 보며 부러우면서도 상처를 받죠. 즐기는 것은 자유이나 잘 지키고자 노력하는 보통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제발, 자랑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안타까움에 절규하는 제 목소리 들리시나요?

"저도 푸른 바다를 보고 싶고 비행기도 타고 싶은데 꾹꾹 참고 있는 거라고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해!"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시켜도 안 하는 것도 맞죠. 하지만 하지 않는 이유가 정부의 지침을 따르고 규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교육이기에 지킵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학령기의 청소년들이 학교에 가야 하기에 지킵니다. 옳은 행동을 할 때에는 주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머무르기 때문이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가르치고, 저 또한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 대상이 학교 선생님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불이익이 무서워 입을 다물고 뒤에서 수군대면 나아짐은 없이 마음만 죄를 짓게 됩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도 할 말 하고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다 혹시 어려움이 생기면 뒷배가 되어줄 테니 주저 말고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지 힘 있는 부모로 나서 주겠다고 말입니다.


아이들도 행복하고, 어른들도 행복한,

질서가 있고 약속이 잘 지켜지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표정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표지 사진 : 픽사베이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며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판단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오니, 읽으시다 마음이 상하셨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