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한날, 내가 무너진 날
잘 차려입은 나무 덕분일까?
눈이 부시게 맑은 하늘 덕분일까?
요 며칠, 신명 나게 기분이 좋다.
지난겨울부터 마음이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딸아이의 입시가 끝나고, 아들의 사춘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갱년기를 맞은 나의 변덕 때문이었을까?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내려앉았다.
헛헛한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했고,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이 어느 날 뻥— 하고 터져버렸다.
늘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아내, 엄마였다.
가족들의 맞춤옷이 되어주던 내가 달라지자,
가족들은 흠칫 놀랐고,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도 눈감아버렸다.
봄 햇살이 창가에 스며 거실 바닥을 채우던 어느 오후,
햇살을 등진 등줄기가 따뜻하게 데워져 나른하던 그때,
문득 찬란히 빛나는 먼지 알갱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저 부유하는 먼지인데, 왜 그렇게 찬란해 보였을까.
한참을 바라보다가
‘내 존재도 저 먼지처럼 부유하는 건 아닐까,
아니, 어쩌면 먼지보다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울컥 설움이 밀려왔다.
해가 서서히 물러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저녁,
가족들이 하나둘 집에 들어섰다.
늘 그렇듯 자연스레 저녁거리를 물어왔고,
몸에 밴 습관처럼 그들의 필요를 채우던 중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나는 왜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로만 존재해야 할까.
그게 나의 전부라면, 나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갑작스레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고,
이내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놀란 가족들의 어정쩡한 표정,
당황한 시선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치받게 만들었다.
그날, 그렇게 엉엉 울던 그 순간이
내 오십의 한날이었다.
덧.
오십의 어느 날, 이유 없이 울음이 터졌습니다.
가족의 중심에서 늘 ‘아내로, 엄마로’ 살던 나는 문득,
내 안의 이름이 사라진 걸 깨달았죠.
봄 햇살 속에서 부유하던 먼지처럼,
나도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나 봅니다.
이 글은 그날의 눈물에서부터 다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맞춤옷이 아니라,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
『햇살 속 먼지처럼』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변화를 단지 ‘갱년기 때문’이라 치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롯이 나로서 살아보기 위한 시간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나 자신으로—
그렇게 다시, 우뚝 서가는 과정을 그려보려 합니다.
함께해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