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증거를 보여주어야 했던 시절, 건축은 상징이었다.
여의도의 63빌딩과 종로의 31빌딩은 한국 현대 건축사의 두 다른 좌표를 상징한다. 흥미롭게 두 건물의 위치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고가도로를 달리다 보면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도 하고, 종로구 전성시절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식민지배 점령지에서 자주적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치 상징처럼 우뚝선 31빌딩. 그리고 15년 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권력의 전폭적 지원아래 국가적 상징으로 등장한 황금빛 63빌딩. 하나는 고도 성장의 황금빛 표피를 지닌 초고층 타워로서 국가와 기업 권력의 과시적 상징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국제주의 양식을 정직하게 구현하여 도심의 질서를 새롭게 정립한 모더니즘의 표본이었다. 건축의 형태와 재료, 프로그램뿐 아니라 이 두 건물이 놓인 자리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은 서로 대비적이면서도 보완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이 두건물이 15년 남짓의 시차를 두고 세워졌지만, 그 사이에 한국 사회가 경험한 정치·경제·문화적 격동의 간극은 건축의 언어와 도시 풍경 속에서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31빌딩은 1970년에 준공되었다. 김중업이 설계한 이 건물은 한국 건축가가 국제주의의 어휘를 충실히 번역해낸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유리와 석재, 금속으로 이루어진 단순하면서도 정제된 파사드는 반복되는 모듈과 수직의 리듬을 통해 근대적 질서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건물이 종로라는 전통적 축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종로는 조선시대 이래로 한국 도시의 상징적 축선이자, 근현대사의 사건들이 축적된 장소다. 그 위에 국제주의 양식의 고층 빌딩이 세워졌다는 것은 단순한 사무 공간의 신축을 넘어 한국 사회가 근대적 질서를 시각적으로, 물리적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물론 국가적 열등감의 반발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31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31이라는 숫자 또한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층수를 의미하는 동시에, 바로 옆 탑골공원에서 일어난 3·1운동의 기억을 환기한다. 따라서 이 건물은 국제양식의 보편성과 민족사의 특수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김중업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시그램빌딩을 의식했음이 분명하다. 시그램빌딩이 뉴욕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국제양식의 전범이 된 것처럼, 31빌딩은 한국 도심에서 국제주의의 문법을 가장 정직하게 적용한 사례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종로라는 역사적 맥락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높이의 질서를 심는 작업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31빌딩은 시그램빌딩과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전자가 자본과 기술의 합리성에 의해 탄생한 보편적 전형이라면, 후자는 역사적 기억과 도시의 맥락 속에서 조율된 번역본이었다.
다만 두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첫번째는 당시 국내 기술과 자재로는 시공이 불가능 했다. 결국 일본 기업의 제작물을 사용해야 했었다. 전체적인 창호 디테일은 일본제철로 부터 수입한 제품이었다. 두번째 아니러니는 공업적으로 보여지는 이 건물이 실상은 수공예적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거야 후발 공업국가의 한계도 작동한 것이다.
반면 63빌딩은 1985년에 완공되었다. 불과 15년 사이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경험했고, 건축은 그 변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63빌딩은 대한생명 본사 사옥으로서,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기록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31빌딩도 건축당시 일본에 없는 높이의 고층건물이었다. 아무튼 63빌딩은 미국의 SOM이 기본 설계를 담당했으며, 한국의 건축가와 구조 엔지니어들이 협업했다. 63빌딩을 설계한 한국 건축사는 박춘명씨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구조적 접근을 디자인으로 해석한 분이었다. 이런 구조적 디자인의 맥락이 소멸된 현재가 아쉽기는 하다. 아무튼 63빌딩 외피는 황금빛으로 코팅된 이중 유리 커튼월로 덮였고, 이는 곧 한국의 경제 성장과 국가적 자신감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는 장치가 되었다. 강변에 위치한 이 건물은 낮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한강의 물결과 하늘을 반사했고, 밤에는 조명에 의해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각되었다. 말그대로 기념비적인 모습은 해질 무렵 강북강변도로나 올림픽대로에서 마주칠 때 실내 사무실의 불빛들의 들어오기 시작할 때, 멀리서 보면 마치 비문의 글자들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동시에 63빌딩의 형태적 특징은 지상부가 넓고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곡선적 상승이다. 이는 단순히 구조적 안정성을 위한 설계가 아니라,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국가의 야망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점에서 63빌딩은 뉴욕의 Solow Building을 닮아 있다. 솔로우 빌딩은 1970년대 초에 지어진 타워로, 곡선적으로 위로 상승하는 파사드를 통해 미드타운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에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두 건물 모두 넓은 접지부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비례를 통해 시각적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동시에 경제적 권력과 기업 이미지를 상징화했다.
63빌딩은 단순한 오피스 타워에 그치지 않았다. 전망대, 수족관, 전시 공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하며 서울 시민들에게 새로운 여가 공간을 제공했다. 이는 업무와 여가가 결합된 복합 프로그램의 선구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즉, 이 건물은 단순히 기업의 사옥이 아니라 국가적 기념비, 시민의 레저 공간, 도시의 스카이라인 아이콘이라는 다중적 정체성을 지녔다.
이렇게 보면, 31빌딩과 63빌딩은 각각 다른 시대의 한국 사회를 대변한다. 31빌딩은 아직 경제적 자원이 충분치 않던 시기에 국제주의 건축의 보편적 언어를 도입하고, 그것을 한국적 역사 맥락과 접목하려는 시도의 산물이었다. 그 안에서 건축은 근대적 질서를 정립하고, 도심의 스카이라인에 새로운 리듬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반면 63빌딩은 이미 성장의 궤도에 오른 한국 사회가 자신감을 가지고 세계와 경쟁하려 했던 시기의 산물이다. 건축은 국가적 과시의 수단이자, 기술과 자본의 총합을 드러내는 무대였다.
이 두 건물을 건축비평적으로 조망하면 몇 가지 흥미로운 대조가 드러난다. 첫째, 31빌딩은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직사각형의 단순한 형태, 반복되는 모듈, 장식 없는 파사드는 국제양식의 순수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종로라는 장소의 역사적 무게와 민족사의 기억이 은근히 스며 있다. 따라서 이 건물은 보편과 특수, 보편적 양식과 민족적 기억이 교차하는 건축이다. 둘째, 63빌딩은 과시의 미학을 보여준다. 황금빛 유리 커튼월, 63층이라는 숫자의 상징성, 그리고 한강변이라는 입지는 모두 국가적 자신감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그것은 절제가 아니라 과시, 규범의 번역이 아니라 새로운 상징의 창조였다.
그러나 두 건물은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가 건축을 통해 시대적 욕망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31빌딩은 근대적 질서와 국제적 문법을 받아들이려는 욕망을, 63빌딩은 성장과 과시, 세계적 경쟁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을 보여준다. 건축은 단순한 공간의 생산이 아니라 사회적 욕망의 표출이었고, 그 욕망은 각각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다.
이제 두 건물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31빌딩은 몇해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적 기능을 수용하면서도 원형의 절제된 비례와 리듬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현행 법상 규모축소를 피한 리모델링으로 선택한 방식이지만, 이는 근대 건축 유산을 보존하고 갱신하는 모범 사례가 되었다. 63빌딩 역시 황금빛 외피의 교체와 내부 프로그램의 갱신을 통해 단순한 오피스 타워에서 문화·여가 복합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초고층 건물이 단순히 기업의 상징에서 벗어나 도시민의 문화적 자산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프랑스의 대표적 문화시설 한국지점이 준비중이어서 새로운 변화가 기대되기도 한다.
결국 31빌딩과 63빌딩은 한국 현대 건축이 걸어온 궤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쌍생아와도 같다. 하나는 국제주의의 보편성을 번역해내며 근대적 질서를 정립한 건물이고, 다른 하나는 초고층과 황금빛 외피를 통해 성장과 과시의 상징이 된 건물이다. 그리고 두 건물 모두 시간이 흐른 뒤 새로운 의미로 갱신되며, 오늘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건축은 단순히 기능을 수용하는 그릇인가, 아니면 사회적 욕망과 기억을 담아내는 상징인가. 31빌딩은 그 기억을, 63빌딩은 그 욕망을 대변했다.
이제 한국 건축은 그 두 가지를 어떻게 화해시키고, 어떻게 미래의 도시를 형성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절제와 과시, 기억과 욕망, 보존과 갱신의 긴장 속에서 새로운 건축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31빌딩과 63빌딩을 다시 바라보며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