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나는 타고난 올빼미형 인간이야.”라고 말하며 자기 인생에 새벽 기상은 없다고 가정합니다. 이런 변명은 개인의 게으름과 의지 부족 문제를 생물학적 특성으로 전가해, 새벽 기상을 ‘통제 불가능한 영역’으로 여기게 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타고난 생체 흐름 자체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일 수 있으나, 변화를 위한 노력은 충분히 통제 가능한 영역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제7권 제18장에서 이 변화의 필연성을 우주 만물의 본질을 통해 강조합니다.
“세상에 변화를 겁내는 이가 있을까? 변화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성취할 수 없다. 변화야말로 우주 만물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나무가 불쏘시개로 변하지 않는다면, 어찌 따뜻한 물로 목욕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몸에 들어간 음식이 다른 물질로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양분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대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 중 변화를 겪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던가? 그대 자신에게 바뀜이 필요하듯이, 만물을 지배하는 섭리에도 변화가 필수적임을 깨달아라.”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마르쿠스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꾸짖습니다. 그는 변화 없이는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을 나무와 음식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은 결국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변화의 고통을 감수하지 않겠다’라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이는 성장을 위한 양분을 스스로 거부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생체 리듬은 일부 유전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생체 시계’는 재설정이 가능한 유연한 시스템이라는 점입니다. 여러 연구 결과에서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 그리고 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멜라토닌 분비 시점을 늦추거나 당기는 등 생체 리듬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즉, ‘올빼미형’은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아닌, 변화 가능한 하나의 습관입니다.
새벽 기상의 목적은 완벽한 ‘새벽형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닌, ‘하루의 시작을 건강한 이성으로 채우는 주도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마르쿠스가 말한 ‘변화의 필연성’을 용기 있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 ‘올빼미형 인간’을 극복하고 새벽을 선택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빛’을 이용한 방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햇빛이나 전등 같은 밝은 빛에 노출되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는 억제하고 각성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합니다. 다시 말해, 새벽에 일어나 커튼을 여는 것만으로도 생체 시계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잠자리에서는 스마트폰이나 TV의 청색광을 멀리함으로써 그동안 늦춰진 생체 시계를 조정해야 합니다.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은 잠들기 2시간 전에 급격히 증가하는데, 짧은 파장의 청색광은 이 호르몬 분비를 가장 강력하게 억제하는 요소로 밝혀졌습니다.
다음으로, ‘습관의 일관성’입니다. 생체 시계를 조절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중과 주말에 차이를 두지 않아야 합니다. ‘실천의 불규칙성’이야말로 습관의 가장 큰 적입니다. 즉, 새벽 기상을 통한 성장은 일관된 수면 습관으로 자기 통제력을 높이는 일인 것입니다.
이렇듯 ‘올빼미형 인간’이라는 굴레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이 변화하듯, 생체 리듬 또한 바꿀 수 있습니다. 마르쿠스의 말처럼 변화야말로 만물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변화된 삶 속에 ‘새벽 기상’이 함께 한다면, 무한히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을 일으키는 새벽의 힘>
오래된 안방 커튼을 교체하기로 했습니다. 커튼에도 설치 방법, 햇빛 투과율, 여닫는 방식에 따라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몇 가지 후보군을 놓고 고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색과 질감의 커튼을 골랐습니다. 물론, 생체 시계를 좀 더 정교하게 조정하기 위한 ‘암막 기능’은 필수였습니다.
방안을 채우는 칠흑 같은 어둠은 두려움이 아닌 ‘안녕한 새벽’을 위한 준비입니다. 시간마저 정지해 버린 듯한 어둠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숙면을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커튼을 열며 하루의 시작을 더없는 청량함으로 채웁니다.
미국 독립 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 또한 “이 세상에서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만물은 모두 변합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깨어 있는 이성을 갖추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만약, ‘난 올빼미형 인간이라 동트는 새벽엔 까막눈이 되어버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변화라는 진리에 눈뜨지 못한 자입니다. 밤은 어둡게 새벽은 밝게 보낼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