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딸은 무조건 아빠를 닮는다고?

by 책밤

맞는 말 같습니다. 이건 마치 어떤 우주의 신비한 기운이 세상의 모든 첫 딸들을 아버지와 닮게 만들어 버린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빠랑 붕어빵이네”라는 말이 왜 이렇게 기분 좋은 걸까요? 물론 딸의 입장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6살 딸아이와 저는 외모는 말할 것도 없이 순간순간 나오는 사소한 습관까지 판박이인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루는 딸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댁에 들렀습니다. 어머님께서 우리가 온다는 연락을 받으시고는 손녀에게 아빠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겠다며 미리 옛날 사진첩을 찾아 놓으셨습니다. 아내와 딸과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사진첩을 펼쳐봅니다. 유치원 학예회에서 색종이로 만든 모자를 쓰고 앙증맞게 율동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가 나라니. 마냥 부끄럽습니다. 그러더니 아내가 사진을 가리키며 딸에게 묻습니다. “채원아, 누구 닮은 거 같아?” 아이는 잠시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침울한 표정으로 힘없이 말합니다. “나?......” 그 모습이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지만 저의 눈에는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우리 가족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응당 이런 딸아이의 반응을 이해할 겁니다. 그 이유인 즉. 저의 아내의 미모는 정말이지 제가 다시 태어나도 만나지 못할 그런 미모를 지녔기 때문이지요. 아내의 키는 168cm에 날씬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해 누가 봐도 미인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에 비해 저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모를 지녔습니다. 오죽하면 아내가 저의 어머니에게 “채원이가 클수록 아빠를 더 닮는 거 같아요”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긍정의 대꾸 없이 “더 크면 엄마를 많이 닮을 거야”라며 본인의 희망만을 담아서 대답하실까요.

하지만 다행히 연애시절부터 아내가 저에게 말해왔던 하나의 장점은 “오빠는 태생은 평범한데 자기한테 맞는 스타일을 잘 찾는 것 같아”입니다. 맞습니다. 전 평범한 외모를 절대 잘 나게 보이려 애쓰지 않습니다. ‘과함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라는 말처럼 평범함에 화려함을 더하면 오히려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나름 섬세한 감각으로 나의 분위기와 체형에 맞는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얼굴이 조각같이 잘난 몇몇의 사람들은 거적때기를 걸치기만 해도 모델의 느낌이 나겠지만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거적은 그냥 거적으로 소화하기에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편이었죠.

누구나 타고난 본래의 모습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남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부정하기 바쁩니다. 만약 평생을 이렇게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이 있다면 인생의 종국에 그 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세월이 지나면서 얼굴에 패이는 주름부터 다르리라 짐작해 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주름조차 얼굴의 가장 아름다운 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그려질 테죠. 하지만 늘 자신을 부정하고 불만을 품고 사는 사람은 온갖 인상을 쓰는 바람에 가장 못난 얼굴선을 따라 주름이 패이지 않을까요? 인생은 타고난 얼굴에 세월이라는 조각칼로 주름을 새기는 과정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조각의 결과물은 자신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질 겁니다.

오늘도 나를 꼭 닮은 딸아이를 안아봅니다.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딸아이가 “아빠를 닮아서 행복해”라고 말해주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