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만 잘 정리해도

by 책밤

삶의 많은 부분은 반복되는 습관의 결과물입니다. 남이 보기에 번거로운 일도 그 일이 이미 습관이 된 사람에겐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심지어 때론 그 습관이 뜻밖의 행운 가져다주기도 하는데요.

때는 바야흐로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27살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취업을 할지 공무원 시험을 볼지를 두고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할 때였죠. 마침 연락이 닿은 고등학교 때 친구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기에 같이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친구는 스터디 모임도 꾸리기로 했다면서 몇몇 사람을 소개해주더군요. 일전에 글로 쓴 적도 있지만 지금의 제 아내를 그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첫 만남의 일화를 짧게 소개할까 합니다.

아내를 만난 첫날, 저는 무더운 날씨에 반팔과 반바지 그리고 슬리퍼 차림이었죠. 사실 그날의 복장을 기억하는 이유는 아내가 몇 년 뒤 첫 만남의 기억을 되짚어주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날 아내가 기억한 복장은 정확히 옷이 아니라 슬리퍼 사이로 나온 제 발가락이었습니다. ‘관리된 발가락’이라고 하면 표현이 우스울까요? 슬리퍼 차림이었지만 발톱이 잘 정리된 모습이 무척 깔끔한 인상을 줬다고 합니다. 물론 손톱도 잘 정리되어 있었죠.

저에겐 손발톱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특정 요일 특정 시간에 손발톱을 정리하는 건데요. 발톱을 유심히 살펴본 아내도 독특했지만 이렇게 손발톱을 강박적으로 정리하는 습관도 조금 특이하긴 하네요.

그날 제 발톱이 조금 길었다면 분명 아내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지 못했겠죠. 손발톱을 정리하는 사소한 습관이 제 인생의 반려자를 선물해 준 셈입니다. 결혼한 제 아내가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결혼해 보니까 자기는 손발톱만 정리하는 것 같아.” 맞습니다. 생각보다 깔끔하지 않기에 아내 입장에서는 사기 결혼이라 볼 여지도 있지만 다행히도 그날의 정리된 발가락이 행운을 가져다줬습니다.

여러분들의 사소한 습관이 쌓이고 쌓여 큰 행운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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