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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낢 Oct 06. 2024

우주에 못 가본 천문학자

행성이라 부를 수도 없을만큼 작고 지구인들이 큰 관심을 쏟지도 않았던 소행성대 안의 소행성들. 그 중 대장격인 세레스는 지름이 450km에 이르며 이는 달의 1/5에 해당하는 크기로 밤하늘에 떠 있는 달 옆에 세레스를 그려보면 깜짝 놀랄만큼 존재감이 있다. 그래도 실감이 덜 나서 지면이 얼마나 될지 계산해 보았는데 이 소행성을 직선거리로 종단하면 약 1400km가 되고 이를 다시 더 쉬운 지표로 환산해 보면 서울-부산 거리의 4배 반 정도가 된다고 한다.


늦게 얻은 둘째는 걸음도 느리고 말도 느려서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 태산이었다. 18개월이 지나서야 걸음마를 시작했고 두돌이 지나서야 말을 떼었다. 아이는 말이 느린 대신 글을 빨리 깨우쳤는데 쬐끄만 놈이 광고판 글을 줄줄 읽으니 처음보는 사람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천재가 났다며 신통해 했다. 다행히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한시름 놓았지만 올해 다섯살이 된 아이는 여전히 또래보다 늦되다.


둘째의 최애 콘텐츠는 우주다. 장난감도 우주, 책도 우주, 옷도 우주, 숟가락도, 칫솔도,... 아무리 관심없는 일에도 우주, 로켓만 들먹이면 눈을 반짝이며 돌아본다. 한번은 서점에 같이 갔다가 과학책이 모여있는 섹션에서 아이가 끝도 없이 우주책을 찾아 내는 바람에 우주책만 열권 가까이 사들고 낑낑대며 돌아온 일도 있었다. 잠자리 이야기 책도 여지없이 우주책이다. 초등학생이 알아야할 우주이야기 100선 같은 도서는 어른이 읽어도 내용이 어려워서 읽어주는 어른도 잠이 솔솔 온다.


아이를 따라 우주로 떠나면 세상이 참 단순해진다. 인간이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것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광활한 우주에 관한 책은 빈공간이 대부분이다. 주석이나 설명 없이 그저 비워진 공간들과 완벽한 구형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익숙한 행성들은 어른에게도 안정감을 준다. 거의 지루하기까지 한 것들이 드문드문 나타날 뿐 우주는 고요하기만 하다.


그 안정감에 적응할 때 즈음, 까마득한 어두움 사이로 태양과 수성, 수성과 금성사이를 어물쩍 뛰어넘어서 화성과 목성사이의 '행성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소행성들을 소개한다. 그 사이에만 백개가 넘는 소행성이 있는데, 세레스, 베스타, 아이다..., 그 소행성들에 대한 대단한 발견도 거의 없어서 그저 눈으로 롹인할 수있는 각 구형의 크기에 대해 길게 설명되어 있다. 지름과 면적, 이에 대한 실감나는 예시까지 들만큼 특별히 기록할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사실 세레스는 우리가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외우던 시절에 분명 명단에 올라있었던 명왕성보다도 크다고 고백한다. 수천개의 문명이 존재하고도 남을만큼 광활한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1억 km밖에서 측정한 지름과 반지름 정도에 불과하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모여 사는 우리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팽창중인 우주를 넘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알량한 과학적 성취를 몇..개 이루었다고 해서 우주를 탐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오만이자 자기기만이다. 지구밖 어떤 문명은 혼신을 다해 전력질주 하는 인간을 보면서 숨을 참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달팽이를 만나면 그러듯이. 인체 해부도 조차 본 적 없는 수도사들이 의술을 휘두르던 시대처럼 우리는 우주 망원경 너머로 어렴풋이 관찰한 우주를 전해듣는다. 절대 성과를 확신할 수 없는 학문 분야에 평생을 바치는 과학자의 신념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어려움과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풀어 쓰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단적으로 발사된지 30년이 넘은 허블 우주망원경은 70억 지구인을 계몽할 소수의 천문학자들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창문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우주를 연구하기 위해 뚫은 바늘 구멍. 그 사이로 어렵사리 훔쳐보는 일이 얼마나 감질날지. 그뿐인가. 고고학자는 살아보지 못 한 시대를 두 손으로 땅을 파헤치며 배우고 역사학자는 한번도 마주치지 못 했던 역사속 사람들을 기록을 통해 만난다. 하지만 천문학자는 현존하는 우주를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안타까운 이들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뒷방에 눌러앉은 사업 파트너이자 반려인인 나 때문에 생업전선에 홀로 버려진 신랑은 반년째 구인 중이다. 작은 회사에서 골치아픈 일을 선뜻 해보겠다는 젊은 사람이 없어서다. 기업을 상대로 하는 마케팅 대행사는 소위 말하는 갑질에 노출되기 쉽고 소화해야하는 업무 영역이 넓어서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한다. 그래서인지 해가 갈 수록 구인이 어려워지더니 최근에는 이력서도 드문드문 들어온다. 요즘 취업생들은 마치 어릴 적 선행학습하듯 이미 여러 방식으로 세상을 간접 경험해버려서 진짜 경험을 쌓을 의지가 꺾여버린 것 같다. 꼰대. 좋좋소… 세상을 조소하는 밈들이 떠돌고 요란하게 눈에 띄는 큰 성공은 너무 자주 포장되거나 과장되어 보고된다. 그 결과 대기업은 정년보장이 안돼서 싫고 중소기업은 월급보장이 안 돼서 싫고, 국내기업은 상하관계가 극명해서 적응 못 하고 외국기업은 영어회의가 부담되고 어딜가나 마주치는 또라이 때문에 3년을 못 버티고 퇴사하고 만다. 결혼은 시월드가 부담되고 연애도 큰 관심이 없단다. 흔히 말하는 MZ세대가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만 미디어에 그려지는 젊은 세대의 모습은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거의 모든 것을 체념한 살아있는 시체같다.


하지만 모든 세대에 대한 프레임이 과장되어 전해지듯이 젊은 천문학자들은 학자답지 않게(?), 그리고 요즘 세대같지 않게 당차고 섬세하다. 비록 우주에 가보지 못 했고 아마도 이번 생에 못 가게 되겠지만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이 우주를 정복하는 꿈을 꾸면서 (물론 학문적으로) 탐사선을 보내고 자료를 분석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궤도를 수정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우리가 숨쉬는 순간에도 팽창 중인 우주의 비밀을 밝혀야 하는 그들에게 30년 넘도록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바늘구멍같은 망원경 한대와 조각조각 얻어지는 탐사정보 뿐인데도.


아이와 책을 읽으면서 적잖이 놀라는 것은 우주에 대한 설명이 우리가 고등교과 과정에서 배웠던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우주를 설명하기도 전에 태양계에 가두어 버렸던 시대와는 대조적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행성과 별들이 아닌 여백으로 안내한다. 각 행성간의 거리가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지 되짚으며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처럼 그 사이에 숨겨진 비밀이 있을지 모른다고 속삭인다. 거대한 목성과 모두가 주목하는 화성 사이,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에는 우리가 발견한 것보다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훨씬 많이 있고 그래서 우주는 신비롭다고.


늦되지만 섬세한 둘째가 우주에 빠져드는 것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우주와 관련된 책들에는 답보다 질문이 많고 이미 정답을 찾은 것보다 못 찾은 것이 더 많다. 우리는 역사가 길어질 수록 후손들에게 너무 많은 정답을 들려준다. 모든 가설에 대한 결과를 가르치고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해 더 완벽한 성공에 닿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올바른 질문들일지 모른다. 우주에 못 가본 천문학자들 처럼. 언젠가 우주에 닿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질문을 띄워 놓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들이다. 우리가 삶에서 얻은 답들은 우리 안에서만 생명력이 있다. 너무나 우연히도 그 순간 그 상황에 대한 정답일 수있었던 그 시간과 공간 조건을 벗어나면 또 다시 새로운 명제가 되어야 한다. 어떤 삶이 반복되며 어떤 사람이 똑같던가.


*여담

가끔 둘째에게 물어본다. ‘왜 우주에 가고싶어?‘ 그럼 아이는 항상 ‘외계인을 만나고싶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외계인이 어디있냐고 물으면 ’행성B2B3‘라고 대답한다. 화성이나 토성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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