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집에서 혼밥을 하게 되는 경우, 영상이나 책을 보는 습관이 있다. 조용한 것도 싫고 적적한 것은 더 싫어서. 밖에서 혼밥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혼밥을 집에서 하는 경우에도 극심한 외로움과 허전함이 몰려들면 주위를 시끄럽게 하던지, 집중할 무언가를 찾는다. 오늘도 아이들이 먼저 밥을 먹고 나서 나는 한참 후에야 한 숟가락 뜨려고 식탁에 앉았다. 영화나 보며 밥을 먹자 싶었고 검색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영화가 '담보'였다. 밥 먹을 때 보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전혀 몰랐다. 미리 알았더라면 밥이라도 먹고 봤을 텐데 밥 먹다가 숟가락을 자의로 놓아보긴 처음이었다.
엄마(김윤진)의 빚 때문에 딸 승이(박소이)를 급작스럽게 담보로 데리고 가는 사채업자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졸지에 아이를 돌보게 된 사채업자 두석(성동일)과 종배(김희원)는 승이와 어렵사리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불법체류자인 엄마는 중국으로 추방되고 승이는 큰아버지께 가기로 한다. 큰아버지께서 좋은 곳으로 입양을 해주기로 약속했고 그때까지 승이를 맡아달라 부탁하게 된다. 그 후 두석과 종배는 승이에게 잊지 못할 추억도 선물하고 정말 가족이라도 된 듯 따뜻함과 웃음도 선사했다. 입양 가지 말고 사채업자들과 살았으면 하고 바랐을 정도로 캐미가 좋고 재밌었다.
얼마 후, 승이는 큰아버지와 함께 부산으로 향했지만 연락이 되질 않자 염려된 두석은 승이의 큰아버지를 찾아간다. 알고 보니 큰아버지는 브로커였고 승이는 부산에 있는 룸쌀롱으로 팔려가게 된 것이다. 학교는커녕 룸쌀롱 청소나하는 몸종신세였다. 어찌나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내가 당장 그 장면에 뛰어들어가고 싶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괴팍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삐삐를 통해 간신이 연락이 다은 승이와 두석.
두석은 종배와 함께 승이를 데리러 인천에서 부산까지 한걸음에 달려온다. 애잔한 상봉이 이루어졌다. 어찌나 울컥했는지 모는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 한편은 아려왔다. 승이를 데려온 두석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을 쓴다. 두석의 눈물 젖은 노력으로 승이는 학교를 다니게 되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알콩달콩 살아간다. 딸바보면서 츤데레 아빠의 면모가 드러나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다.
어느 날, 승이의 생모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중국으로 향한다. 엄마와의 재회는 또 한 번 눈가를 적셨다. 만나자 이별이라고 하룻밤을 보내고 애틋한 이별을 맞는다. 승이 생부의 소식을 전하며 찾아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두석은 승이 생부와 승이를 만나게 해 주고 돌아왔다가 '아빠'라고 부르는 승이의 전화에 승이를 데리러 나간 뒤 실종된다.
10년간 찾아도 찾을 수 없던 두석은 뇌출혈로 인해 기억을 상실해 지금껏 만날 수 없었던것이다. 승이가 지어줬던 두석의예명 박승보와 승이의 예명 담보만을 기억하는 장면, 승이와 종배가 두석을 찾았을 때 오열하던 장면이 나의 울음샘을 자극하는 바람에 목놓아 울고 말았다. 지나간 10년의 세월이 기고하고 가엾어서, 망가져버린 아빠의 모습에, 딸아이의 분신이라 여겼던 cd플레이어까지 나를 울게 만들었다. 영화의 끝 부분, 자막이 오르며 승이의 결혼식에 두석과 함께 신부입장하는 모습으로 해피엔딩을 알린다.
요즘 세상에 있을법한 일이 아닌 다소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어느 가족에 못지않게 끈끈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잔잔한 웃음과 감동, 애틋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영화였다.
진정한 가족이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힘이 되어 줘야 하고, 역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게 응원해 주는 것이라 가르쳐준다.
'나은 정, 기른 정'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결코 쉽지 않았을 여정을 보물처럼 만들어주는 영화였고 슬픔마저도 선물 같았다. 1인가구가 늘어나고 고독사가 늘고 있는 요즘, 와해되어가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영화였다. 우연히 만난 영화였지만 꼭 만났어야 하는 영화였다. 가족이 있는 나는 이미 큰 보물을 갖은 사람이라 깨닫게 해 줬다.
함께 마주 보며 밥을 먹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감사하게 느껴지고,가족을 더욱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보석 같은 담보에게 고마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