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목요일 오후 2시,
늘봄실무사 최종 발표가 예정된 날이었다.
발표날인 목요일 아침부터
아니 그전 날부터
아니지, 면접 보고 나온 순간부터
긴장감과 두려움,
떨어졌을 때의 상실감,
혹시나 합격했을 때 기쁨 등등
수많은 상황들과 감정들을 상상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목요일 오후 2시가 되기 전부터
사이트를 얼마나 들어갔다 나왔는지 모르겠다.
오후 2시가 넘어 2시 5분이 되었는데도
사이트에는 합격자 공고가 올라오지 않았다.
혹시 발표가 지연되는 건가?
내일 발표일 수도 있겠지?
발표일을 정확히 알아야
지금의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아
교육청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
'이제 곧 합격자 공고가 올라갑니다'
라는 답변을 듣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혼자 안방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합격자 공고가 떴고,
내 번호가 없을 수도 있으니
크게 실망하지 말자.
그렇게 스스로 되새기면서 공고문을 열었다.
내 번호가 어디 있나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떨리는 눈동자로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드디어 찾았다.
내 번호가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
합격이다!!
엄마 합격했다!!
크게 소리를 지르니 아이들이 방으로 달려와
나에게 안겨 엄마 합격 축하한다고 해 주었다.
합격 소식을 알게 된다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거 같았는데
눈물은 나지 않았고
거세진 심장박동에 손이 벌벌 떨렸다.
합격 소식을
남편과 가족들, 친구들에게 안기고
진심 가득한 축하를 받았다.
진심 가득한 축하를 받으니
내가 합격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불합격했더라면 내 상심도 상심이지만
이들의 상심도 꽤 컸겠구나.......
추진력 좋은 친정식구들이
이날 저녁에 우리 집으로 모였다.
축하 꽃다발과 케이크를 받고
이쁜 옷 사 입으라는 용돈도 두둑이 받았다.
이런 축하를 받으면서도
내가 합격자 명단을 잘못 본거 아니겠지?
이런 불안감이 들 정도로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서야 안심이 되더라.
내 번호는 있다.
그리고 핸드폰 문자로도 합격자 안내를 받았으니
이제는 빼 박 합격자 맞다!!
나는 교육공무직 조리실무사에서
교육공무직 늘봄실무사로 이직을 했다.
급여도 동일하고,
아니지 조리실무사 위험수당 5만 원이 빠지니
급여는 줄어든 셈이다.
공무원 합격도 아니고
임용고시 합격도 아니고
대단한 대기업 입사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이상을 얻은 것처럼 너무나 기뻤고
가족과 친구들도 내 합격을
나보다 더 기뻐해 주었다.
그들은 알고 있다.
5년 넘게 내가 조리실무사 일을 하는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나의 고단함과 성실함을
함께해 주었다.
그리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나에게 안타까움을 내색하면
내가 자존심 상해할까 봐
지금 잘 하고 있다며 나를 힘껏 응원해 주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질문
'나이도 젊은데 왜 조리실무사 일을 해요?'
'방학기간에 출근을 안 해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요.
아이들 어릴 때만 잠시 하는 거라 시작했어요.'
잠시 하려던 일을 5년 넘게 해 오며
그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를
격하게 응원하고 위로도 하고 파이팅도 해주면서
5년을 버티고 버티어냈다.
체력적으로 하는 일이라 몸이 고되고
오른쪽 어깨도 너무 아파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래도 조리실무사 일을 하며
내가 얻는 장점들을(시간적 여유)
포기할 수 없어 버티어 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자라났고
방학기간에 엄마 없이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 옆에서 있기 보다
방학기간에도 경제활동을 하는 게
가정에 더 이득이 되는 시간이 왔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일을 알아 보다
늘봄실무사에 지원하고 떨어지고
또 지원하고 또 떨어지고
그렇게 반복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기회를 잡았다.
어쩌면 늘봄실무사 일을 하면서
고된 업무와 새로운 환경에 힘들어하며
괜히 이직했다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
내가 잘 해낼 수도 있으니
걱정은 미리 하지 않겠다.
당분간은 합격의 기쁨을 누리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