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세계에는 기준이 없었다
스스로 자(自), 닫을 폐(閉).
마음을 스스로 닫는다는, 자폐 스펙트럼.
의사들은 말한다. 자폐는 영구 장애라고.
나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영구’라는 단어가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아이의 시간을 너무 이르게 끝내 버리는 선고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무거운 이름표를 건네받는 순간, 부모의 세계는 소리 없이 주저앉는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짐의 무게를 본능적으로 직감하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18개월 무렵의 발달 검사 결과지를 다시 꺼내 들었다. 묵직한 종이 위의 활자들 사이로 드러난 명확한 결론.
‘자폐 스펙트럼 고위험군.’
그제야 그토록 나를 짓누르던, 설명할 수 없던 불안들이 비로소 이름을 얻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내 시선을 맞추며 환하게 웃어 주던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의 표정이 옅어지기 시작한 건, 둘째 출산을 위해 한 달간 아이 곁을 완전히 떠나 있었던 그 차갑고도 잔인했던 공백 이후였다.
내 품을 거칠게 밀어내고, 사람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반짝이는 장난감과 텔레비전 리모컨만을 붙잡던 시간들. 나는 그 변화의 궤적 곁에서 철저한 이방인이 되어 서성여야만 했다.
진단조차 막막해 홀로 버티던 그 시절, 나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꽉 쥐고 있었다.
'비록 평범한 한 사람의 몫을 온전히 해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홀로 설 수는 있게 하자.'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내가 쥐고 있던 많은 것을 내려놓고 굳게 닫힌 아이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수없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시절 아이의 곁엔 악인도 없었고, 누구나 경악할 만한 학대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내 아이의 문을 그토록 단단히 닫게 만든 것일까. 이내 나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작은 아이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나는 왜 아이가 당연히 스스로 사회성을 배울 것이라 착각했을까. 왜 그 작은 세계엔 아무런 상처가 없을 것이라 여겼을까. 내가 살아온 세상엔 당연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으면서, 왜 아이의 성장은 당연하다 믿었을까.
둘째를 출산하러 가던 그 새벽.
나는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고 집을 나섰다. 아이가 따라나설까 봐, 헤어지는 고통이 더 길어질까 봐. 어른들이 선택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유조차 설명받지 못한 아이에게 그 시간은 그저 폭력적인 단절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다치면 어른들은 화를 내거나, 울부짖거나, 말을 꺼내어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너무 작고 여려서 그 신호조차 어른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했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어른들은 상처에 '트라우마'나 '우울'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는 아이들의 침묵에는 어떤 이름이 붙여질까.
나는 아이의 닫혔던 시간들을 어떤 병명으로 단정 짓기보다, 그 파편 같은 시간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 마주 보기로 했다.
기억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아주 사소하고 날카로운 장면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문이 무겁게 닫히던 소리, 익숙한 냄새가 사라지던 공백,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남겨졌던 작은 하루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향하지 않던 아이의 시선과, 작은 손에 꽉 쥐어져 좀처럼 놓지 않던 단 하나의 물건.
나는 그 새벽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도망치듯 집을 나섰던 그 날을.
아이의 세계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엄마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시간을.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이는 조금씩 조용해져 갔다. 울음을 크게 터뜨리는 대신 무언가를 더 단단히 쥐었고, 시선은 점점 한곳에 고여 멈춰 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돌아왔던 날.
아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작은 손에는 익숙하게 쥐어진 리모컨이 들려 있었고, 텅 빈 눈동자는 오직 화면 속 빛만을 무심히 좇고 있었다.
나는 그 얼어붙은 작은 등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의, 그리고 아이의 잃어버린 시간은 바로 그 닫힌 문 앞의 장면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