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괜찮겠지

그 말을 믿고 싶었던 나

by 우리의 모든 순간

(다시, 엄마의 자리에서)


“이상해.”


거실의 정적을 깬 건 내 목소리였다. 리모컨을 쥔 채 무심히 채널을 넘기던 남편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되물었다.


“뭐가?”


아이의 눈동자는 번쩍이는 화면의 빛을 따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아이의 작은 발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손 잡는 것도 싫어하고, 안으려고 하면 기겁을 해.”


내 손바닥만 한 작은 두 손이 나를 완강하게 밀어냈다. 마치 닿아선 안 될 낯선 것을 밀어내듯. 그러는 와중에도 아이의 눈동자는 텔레비전 화면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 허공을 맴돌던 내 손은 갈 곳을 잃고 민망하게 접혀 무릎 위로 떨어졌다.


조리원에서 돌아온 지 삼일.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아이는 단 한 번도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봐서 잠깐 서운한 거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가가 안으려 하면 아이는 몸을 비틀어 빠져나갔고, 손을 감싸 쥐려 하면 온 힘을 다해 나를 밀쳐 냈다.


그때, 화면이 번쩍이며 바뀌었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리모컨 버튼을 누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크는 과정이겠지 뭐.”


남편의 말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나는 조심스레 아이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어깨가 닿을 듯 가까운 거리. 그러자 아이는 흠칫 놀라며 재빨리 내게서 떨어졌다. 마치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 다가온 것처럼.


나는 턱밑까지 차오르는 불길한 의문을 억누르고, 애써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손을 뻗었다.


“간질간질~”


아이의 배를 살짝 건드리자, 아이는 내 손을 거칠게 쳐냈다. 작은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짜증도, 웃음도, 울음도 없었다.

그저 제 시야를 가리는 '방해되는 물건'을 치우는 듯한, 지극히 기계적이고 건조한 몸짓이었다.


“엄마가 귀찮아?”


아이의 얼굴을 마주 보려 고개를 푹 숙이자, 아이는 아예 벌떡 일어나 더 멀찍이 가 버렸다. 끝끝내 마주할 수 없는 얼굴, 텔레비전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는 맹목적인 시선.


문득 첫돌 무렵의 아이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비틀거리며 걸어와 내 품에 쏙 안기던 아이.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고 까르르 웃던 그 맑은 눈동자.


‘…….’


거실엔 텔레비전 소리만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 시끄러운 기계음에 묻힌 내 불안은 점차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나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잠들어 있는 둘째에게로 향했다.


조그맣게 오므린 손. 나는 새근거리는 둘째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얼어붙은 가슴을 파고들었다.


연년생 남매. 첫째는 이제 겨우 17개월이었다.

‘벌써… 이렇게 엄마와 멀어지는 게 맞는 걸까.’


다가가면 멀어지고, 잡으려 하면 기계처럼 밀어내던 첫째의 얼음장 같은 몸짓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그날 저녁, 나는 결국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웬일이야?”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를 꾸며 내며 짧게 웃었다.


“그냥요. 저녁은 드셨어요?”

“방금 먹었지. 너는?”

“우리도 방금 먹었죠.”


나는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과자를 의미 없이 꾹꾹 눌러 부러뜨렸다. 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바싹 마른과자 가루들이 바스러져 흩어졌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가듯 가늘게 말려 들었다.


“근데 엄마….”


나는 흩어진 가루들을 매만지며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첫째가 좀 이상한 것 같아. 원래 안 그랬는데, 표정도 없고… 요즘엔 옹알이도 아예 안 해.”


내 떨리는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담담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애들이 크면서 다 그럴 때가 있는 거지. 엄마가 자꾸 예민하게 굴고 불안해하면 아이한테 더 안 좋아.”


말문이 막혔다.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그저 애써 억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런가….”


입 밖으로 나온 순응의 대답과 달리, 내 머릿속은 여전히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며 답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을 집요하게 이어 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 애들이라고 매번 다 방긋방긋 좋겠니.”

“그렇다면 다행인데….”

“괜한 걱정 하지 말고 몸조리나 잘해.”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수화기 너머의 그 말에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믿고 싶었다. 아이 셋을 무탈하게 키워 낸 내 엄마의 경험을. '괜찮다'는 그 흔한 위로를.


전화를 끊고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아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다시 다가가 아이의 여린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재밌어?”


아이의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기울어졌다. 하지만 이내 시선은 다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 존재를 지워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요란한 불빛이 번쩍이는 거실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마치 텅 빈 것 같은 거실을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크는 과정이겠지. 괜찮겠지.”


나도 아이를 따라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화면 속 화려한 색깔들은 쉴 새 없이 바뀌고 있었고, 그 요란한 불빛 아래서 우리는 끝내 서로를 마주 보지 않았다.


바깥은 시리도록 추운 겨울이었다. 우리의 거실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화면의 소리만이 멈춤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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